화제작 〈슬픔과 멜랑콜리〉를 쓴 동기에 대해 박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외로운 주말 저녁, 여자 친구도 없고 벗이라고는 오로지 인터넷. 이리저리 보다가 문득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거대 거북 조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자기 종족 중에서 유일한 개체라고 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동물학자들이 번식시키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나 외로울까. 그의 고독이 가슴을 쳤다. 그리고 아직 거북 조지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럴 수가! 아니,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왜 아무도 쓰지 않은 거야! 그래서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슬픔과 멜랑콜리〉는 은하수보다 더 오래 산 거대한 거북 조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혹은 그가 들려주는 우주와 세상과 문명 그리고 인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지는 세상 모든 것을 경험했고, 모든 언어를 섭렵했으며, 인간보다 인간적이고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롭다. 하지만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다. 단 한 가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기가 태어난 모래밭에서 바디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는 것. 그러나 그에게는 죽음이 허락되지 않는다. 조지는 너무 크고 너무 느린데 세상은 너무 작고 너무 빠르기 때문에 죽음이 기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우연히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그는 한정된 인간 삶 끝에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주는 선물이다.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한정된 삶을 축복으로 주고 자신은 죽을 수 없는 존재. 조지는 신이다. 조지의 외로움은 유일한 존재, 즉 신의 외로움일 수 있다.
박본
2014년, 만 27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슬픔과 멜랑콜리」로 엘제 라스커 쉴러 신진 극작가 상을 수상했다. 2017년, 만 30세가 되던 해에는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베를린 연극제에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그뿐 아니라 2011년 발표한 「젊은 2D 슈퍼마리오의 슬픔」 이래 지금까지 발표하는 작품마다 상을 타는 신기한 작가이다.
1987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가진 박본은 대개 “한국에 뿌리를 둔 젊은 독일 극작가”라 소개된다. 그는 매우 인상적인 경력의 소유자로 김나지움을 다니던 시절 베를린 민중극장을 자주 찾았고, 2008년 민중극장에서 p14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에서 극작과 연출을 배웠다. 이후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슬라브 문학을, 베를린예술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는 동안 베를린 민중극장의 유명 연출가들 밑에서 연출실무를 익혔다. 다수의 희곡을 썼으며,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배우로서 연극 외에도 영화, TV 드라마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빠른 속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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