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지선 '구멍'

clint 2020. 11. 4. 08:28

 

 

'구멍'은 갑지기 알 수 없는 이유(지반 침하)로 어린 아이와 아내를 잃고 인생에 구멍이 난 한 가장의 균열을 담고 있다.

2020 서울 '단막희곡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상실의 슬픔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이 돋보이며, 연극적 메타포를 보편적 언어로 표현해낸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평가했다.

 

갑작스러운 싱크홀 사고로 순식간에 가족을 잃게 된 남자를 상주가 되어 상을 치르면서도 눈물을 전혀 흘리지 않는다. 그는 평상시처럼 출퇴근할 정도로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런 그를 본 장인 장모는 그에게 핀잔을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그 '구멍'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휴식을 권유 받고, 얼마 안 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자신의 일상이 '구멍'나 무너지게 되자 비행을 일삼게 된다. 그러다가, 편의점에서 구입한 평범한 생수가 이상한(?)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곳곳에 악성 민원을 제기하여, 편의점주와 장인 장모를 괴롭힐 정도로 아주 심각하게 집착하게 된다. 그 이후, 남자는 그 사건 이후 이해 불가한 사건, 그것을 일으킨 구멍에 대해 비로소 이해하면서 오열한다.

 

 

 

 

작가의 글 - 김지선

<구멍>은 아이가 뱃속에서 발길질할 때 써 내려가, 점프하고 뛰어 노는 두 돌쯤 퇴고를 마치고 응모한 작품입니다. 아이의 탄생과 성장이 함께한 이 작품의 당선이 제겐 더없이 소중한 의미를 갖습니다. 저는 <구멍>이란 작품 속에 슬픔을 이겨내 결국 삶을 이어가고, 생을 연장하는 인간만의 강인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정민이 글을 읽을 수 있을 때, 꼭 말해주려 합니다. 여기, 구멍이 있다고... 그러나 강인해서 아름다운 우리가 결국 여기 있다고...

불현듯 찾아온 어떤 슬픔 앞에서 옴짝달싹 못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무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그 일 앞에서 당연했던 일상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습니다. 일상은 당연한 게 아니었지요.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실은, 얼기설기 짜인 삶이란 것 위에 아슬아슬 걸쳐져 있는 것들에 불과했음을. 삶은 정말 알 수 없는 것 투성입니다. 불현듯 찾아온 전염병으로 모두가 당연한 것들을 빼앗긴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이어지고, 생은 연장되고 있습니다. 슬픔을 받아들이고, 마음껏 슬퍼하는 것. 그렇게 또 한 번 이겨내는 삶 인간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얘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시절이 찾아왔지만, 그래서 더더욱 인간이, 샘이, 삶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지금입니다.

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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