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은 2015 ‘서울연극인대상’ 연출상 수상과 2015 ‘공연과 이론’ 작품상 수상작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군사독재시절, 그 거친 역사의 격랑에 자신의 몸도 축축하게 젖어든 것도 모른 채 숨죽여 살아온 할머니. 허상만 좇으며 평생 무능하고 무책임했으며 그래서 두려운 존재였던 술주정뱅이 아버지. 일찍 세상을 떠난 장남을 가슴에 품은 채 삶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야 했던 어머니. 저항의 시절을 살다 먼저 떠난 형. 그리고 비상식과 차별과 폭력이 지배하던 시절, 이 사회의 음지에서 오로지 살아내느라 세상이 떠안기는 온갖 상처와 수모를 온몸으로 감당해내야 했던 정양과 찬숙, 현숙 그리고 문간댁, 21세기 현재에서 바라봤을 때 그들은 지나간 아련한 추억 속에 남겨져버린 인물들이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떻게 만들어 졌고, 그 의미는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고민해보는 작품이다. 1970~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중장년들이 각자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렸을 한국 현대사의 상흔과 화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연극은 지나간 시간인 1983년과 1979년, 그리고 현재의 시간이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남자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형의 기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자신이 어릴 적부터 청년기까지 살았던 옛 집을 찾는다. 남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남자는 과거의 인물들과 같은 공간에 공존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엿보기도 하고, 망자가 되어서 집을 찾아온 자신의 형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과거 속에서 남자는 3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주변의 인물들을 관조하면서 잊고 지내거나 혹은 모르고 지나온 시간과 마주한다.
극은 충격적인 사건이나 심각한 갈등을 좇는 구조가 아니라, 주인공 남자가 조우하는 과거 인물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 묘사와 디테일한 비즈니스를 찾아내어 주인공 남자가 그들을 엿보며 느끼게 될 정서적 변화를 관객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인물에 대한 세밀한 심리 묘사가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작가의 글
「툇마루가 있는 집」은 시대가 할퀴고 간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날카롭고 더러운 발톱이었고, 상흔은 흉측하다.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삶을 견디느라 기를 썼다. 문 밖으로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입을 막고 울어야 했다. 서로를 보듬어 안고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그 시절을 살아냈고, 남은 이들은 이제 얼굴에 주름만 남았다. 할머니, 아버지, 엄마, 성구, 진구, 정양, 찬숙, 현숙, 문간 댁, 최 사장… 모두 툇마루가 있는 집 대청마루에서 한 상에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흰 쌀밥에 맛난 겉절이 김치 얹어서 한 입 가득 우걱우걱 먹으면서 옛 이야기 하고 싶다.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마당 연못에는 분수가 높게 솟아오르고. - 김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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