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창단 20주년을 맞은 연우무대가 특별 기획 작품으로 김태웅의 데뷔작이다.
“파리들의 곡예" (김태웅 작.연출)는 "파리처럼" 길 위를 떠도는 약장수 일행의 삶을 통해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단장 길달수, 그를 도우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만수와 덕삼, 단장과 차력사의 성적노리개인 곱단이. 단장은 노름에 빠져 행패를 부리고 만수와 덕삼은 단장을 처치하고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곱단이는 차력사의 아이를 배고 단원들의 축복 속에 그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차력사는 그런 곱단이와 자식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려 하고 무리한 차력을 하다가 그만 칼에 찔려 죽게 된다. 상황이 막판에 몰린 듯하자 단장은 돈만 챙겨 도망간다. 반년 뒤 다시 만난 만수와 덕삼, 악사도 죽었고, 보호소에서 정신이상이 된 곱단이를 면회온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찾아 또 떠난다.
폭력, 권력, 자본 등의 현실논리는 허위지만 필연성을 지닌 채 인간을 옥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은 눈물겨운 투쟁을 멈추지 않고 고단한 삶에서도 사랑과 생명은 잉태된다. 희망인가 절망인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하는 어둠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연출가의 말처럼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광기 우연 허위 권력의 횡포로 가득 찬 사회 속에서 파리같이 하찮은 인간들의 삶을 통해 『이 세상은 과연 살만한 곳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파리처럼 하찮은 소소한 인간들의 떠돌이 삶을 통해 점차 비인간화돼 가는 인간사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낸다.
김태웅
휘발성 레파토리들이 난무하는 한국 연극계에서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기는 쉬워도 극작가로는 어렵다. 연출가는 곧 최전방의 작가로 우대받는 국내 연극판에서 명 연출가라는 월계관을 극구 반납하는 사람이 있다. 극작가 겸 연출가 김태웅. 화제작 여러 편을 연출했으면서도 ‘나는 연출가가 아니다’라는 김태웅의 거부권 행사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막상 (희곡을) 써놓으면 내 밑그림대로 하고 싶은 욕심에 연출까지 맡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극작가로 한정짓는 그의 겸양 속에는 더 큰 포부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창작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지향하는 것. 이를 위해 그가 만든 극단이 ‘우인’이다. ‘우인’은 옛날에 실존했던 궁중광대라는 뜻. 광대적 삶을 추구하고 고민하는 그는 지난 2001년 궁중광대의 삶을 다룬 연극 「이爾」를 쓰고 연출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는 동아연극상, 서울공연예술제 희곡상, 올해의 베스트 4 등 주요 연극상을 석권했다. 1997년 연우무대의 「파리들의 곡예」로 데뷔한 그의 두 번째 작품은 이른바 출세작이 됐다. 이후 386세대의 고민과 비판의식을 담은 「풍선교향곡」과 「불티나」 「꽃을 든 남자」에 이어 「즐거운 인생」을 선보인다. 작가 김태웅은 놀이를 잘 짜는 사람, 즉 플레이 메이커 play maker라고 정의된다. 「이」의 아크로바틱한 광대놀이, 「불티나」의 치고받기 식 대사법이 「즐거운 인생」에서는 음악놀이로 변주된다. 예컨대 ‘권태’를 아카펠라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연출가와 배우와 관객이 어울려 노는 게 연습이고 공연이 된다. 말장난, 성대모사, 흉내 내기, 재담, 음담패설 등 언어유희를 통해 시정을 풍자하고 정치적 비리를 고발했던 조선 시대의 ‘소학지희 笑謔之戱’의 정신은 「이」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다. 요즘 개그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연극들의 말장난은 영 지저분하다는 그는 이번 작품도 ‘웃기는 하지만 속이 쓰릴거다’고 장담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연극장이는 ‘고통 속에서도 놀이정신으로 삶을 긍정하고, 사회적 굴레에 저항하는 광대’인지 모른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 졸업생 1기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달빛 유희』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철학적인 성찰의 결과물을 명제로 강요하지 않고 놀이로 바꿔내는 데 그의 장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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