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근호 '난 땅에서 난다'

clint 2017. 5. 4. 16:16

 

 

 

 

 

지하실처럼 컴컴한 자취방에서 작가로의 성공을 꿈꾸는 주인공은 최고의 명작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 낸 등장인물은 마릴린 몬로의 짝퉁과 포르노그래피의 주인공인 자니 박. 이들은 작가마저 통제 할 수 없는 괴팍한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다독이며 어떻게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명의 문제적인 인물이 끼어든다. 바로 주인공이 세 들어 사는 집주인. 그는 늘 군복을 입고 다니는 전직 대령 출신의 퇴역군인이다. 가문의 영광, 장군이 되지 못한 것을 평생 한으로 생각하는 남자. 작가와 등장인물의 갈등 속에 집주인 대령이 개입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는 평소 집주인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자기를 괴롭혔던 대령을 소재로 글을 쓰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대령에게 감추어진 비밀과 그의 과거를 하나씩 알게 된다. 평생 군부의 하수인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새로운 통제 사회를 만들려는 대령의 꿈을 알게 된 것. 역사를 되돌리려는 대령의 야망과 대면한 주인공은 마침내 인생 최대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난 땅에서 난다>는 작가의 외침이다. 현대의 뒤틀린 상황과 그 우위에 있는 기득권층에 대해 작가는 큰 일침을 놓는다. 관객들은 그 외침에 시원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타파를 위해 불가피 하며 올바른 눈과 귀를 가질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스릴러? 하드코어? 각 단어의 뜻은 알겠는데 서로 조합해 놓으니 도통 감이 오지 않는 느낌이다. 그리고 계몽극? 이건 새마을 운동 시대도 다 지났는데 또 무슨 시대착오적인 단어란 말인가. 하지만 연극 <난 땅에서 난다>를 이처럼 잘 표현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주인공인 작가를 중심으로 그가 창조해 낸 극 속의 캐릭터들과 현대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대령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 같다. 현대의 사회는 복잡하고 많은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이 안에서 올바른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난 땅에서 난다>는 다소 엉뚱하기도 한 스릴러 하드코어 계몽극이라는 장르의 선택으로 더 어지러운 현대사의 이야기를 꼬집는다. 작가는 극을 통해 현대 사회를 묘사 하며 통찰과 비판의 시선을 가지고 새로운 스릴러 하드코어 계몽극 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작가의 글

연극은 다양한 색깔로 존재한다. 가벼우며 즐거운 연극, 진지하고 무거운 연극,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연극. 아마도 연극의 색깔을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난 땅에서 난다>도 그렇다. 이 작품은 주제 면에서 그다지 가볍지 않고 오히려 무겁다고 봐야할 것이다. 연극의 창작자인 작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그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난 땅에서 난다>가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무엇인가 묵직한 것을 품고 있는 작품은 작품의 진정성에서 관객에게 보다 많은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난 땅에서 난다>는 내적 반성과 선언의 의미가 있다. 등단 10년을 맞이하는 작가가 돌아보는 자신의 글과 삶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선언이다. 연출가의 입장에서 <난 땅에서 난다>는 만화적인 상상력과 경쾌한 템포를 바탕으로 독특한 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전의 기회이다. <난 땅에서 난다>는 재미있다. 유쾌하며 경쾌하지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것이 작가로서 이 작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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