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한 극작가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이 보이는 칠성급 호텔에서 글을 쓴다. 또 한 남자, 극작가의 작품을 부호들에게 중개하고 그 수수료로 먹고 사는 드라마 딜러가 등장한다. 딜러는 회장님이 전설의 작품을 기다린다며 원고를 독촉한다. 전설은 침팬지도 학습을 통해 사회적 배려를 하는데, 하물며 인간은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위에 군림하는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작가와 딜러는 계약을 성사시키고, 하와이 파도를 타며 윈드서핑을 즐긴다. 파도 위에서 두 남자는 미스 하와이를 불러놓고 춤추며 맘껏 취한다. 어디선가 고물장수 소리가 들린다. 작가는 밤새 극단 연습실에서 술에 취해 꿈을 꾼 것이다. 작가는 술에 취해 너만 전설이냐? 나도 전설이다 라며, 최고가 되지 못한 심정을 한탄한 것이다.
무대 위에 놓인 두 개의 상자, 그 위로 전설이 되기를 꿈꾸는 두 남자가 동상처럼 서 있다. 한 남자는 잘 나가는 작가, 그리고 또 한 남자는 희곡 딜러이다. 둘은 자신들의 꿈과 야망을 외치며 자신의 삶과 이상을 강조한다. 둘은 정신없이 무대 위를 누비며 의자를 들고 여기저기 왔다갔다, 의자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관객의 혼을 쏙 빼 놓는다. 시작한지 5분도 채 안 돼서 땀으로 범벅이다.
서로의 고백 타임(?)이 끝나면 작가는 누워 선탠을 한다. 여기는 하와이 해변이다. 그는 어떤 한 갑부가 의뢰한 희곡 작품 탈고를 위해, 그가 제공해주는 호텔에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의 가족들도 역시 개런티로 받은 좋은 집에서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희곡 딜러가 찾아온다. 그는 어서 작업을 마무리 하자며 계약서에 사인을 부탁한다. 어마어마한 돈을 받고 작가는 작품을 계약한다. 희곡 딜러 또한 엄청난 수수료에 감사하며 둘은 기뻐한다. 하와이 해변에서의 즐거운 시간이 지나면 둘은 본격적으로 작품의 내용에 대해 토론을 나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딜러는 무엇이라도 좋다며 작가의 비위를 맞춰 계약을 성사 시키려한다. 그러나 희곡 딜러라는 직업의 설정, 거기서부터 낯설어지기 시작한 극은 조금씩 극적 현실감에 대해 의심을 하게 만든다. 희곡 딜러는 아트 딜러라는 직업, 즉 부자들이 재테크의 방식으로 그림을 사 모으는 것에서 착안하여 같은 예술에 속하는 연극 희곡 작품들을 부자들이 모은다는 설정으로 간 것이다.
조건은 절대 비공개 작품이어야 하고, 무대 위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만 알고 가지고 있겠다는 희소성에 그 가격이 높아진다. 거기에 사회 부조리를 풍자한 극이든 뭐든 상관없다며 무조건 큰 돈 주고 사겠다는 갑부, 그도 참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은 가난한 작가와 연출가에 대한 이야기라며 자신이 쓰고 싶은 극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하고, 극 속의 극으로 들어가 그들의 현실로 펼쳐진다. 어디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인가?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극은 연극계의 현실에 대해 꼬집고 있다. 가난한 지하 연습실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아내에게 줄 돈이 없어 미안한 마음에 전화마저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꿈을 멈출 수는 없다. 그 누군가처럼 나도 언젠가는 전설이 되어 이름을 남기기 위해 포기는 할 수 없다. 이러한 끈기로 무대를 누비는 두 배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젖었다. 뚝뚝 흐르는 땀방울에 마음이 측은해져서 차마 눈 마주치기도 미안할 지경이다. 그렇게 열심히 함에도,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안타까움은 너무나 빠르고 정신없이 쏟아내는 대사에 부족한 발음이었다. 어떤 부분은 배우가 하는 대사가 씹히고 날리듯 흘러나와 알아 듣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너무 서두르고 서투르게 발음하다보니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콘셉트인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동작들이나 행위들이 정신이 없고, 이동이나 사물을 분주히 옮길 때도 좀 어수선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그렇게 열정을 쏟아내는 두 배우의 열기만은 정직한 따뜻함이었다. 현실을 반영한 연극,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무대, 부조리 하고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회의 구조, 이런 것들을 재미를 주는 요소를 뺀 채 사실 그대로 꼬집어 내 놓으면 관객에게 외면 받기 쉬운 무대 위의 현실, 연극 공연계의 제작비와 제작 상황, 마치 투정을 부리듯 호소하듯 배우의 입을 빌려 쏟아져 나온다. 지하의 좁고 답답한 극장은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며 관객들은 배우들의 현실에 공감한다.
원래 연극이라는 것은 무대 위에서 질문을 던질 뿐이고, 그 대답은 각자 관객의 몫이다. 또 어떤 부분을 가슴 속에 남길 것인가 역시 관객의 선택이다. 무대 위에서 뱉어진 수많은 말들과 의문들 속에서 더 많은 새로운 질문들과 자신만의 생각의 길이 트인다면 그것으로 연극은 제 몫을 다한 것이 아닐까? 무대 위의 두 배우, 아니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수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미래가 어떻게 전설로 남을 것인가 기대해 본다.
저자 양수근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객원교수 단국대, 순천대 출강.
1970년 9월 29일 생
1988년 극단 토박이 입단. 20여 편의 연극과 뮤지컬 출연
1998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
논문 「오영진 희극연구」
2006년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논문 「일제 말 친일 희곡의 변모양상과 극작술 연구」
199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 「전경이야기」
2003년 극단 작은신화 우리연극 만들기 「홀인원」
200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35세 이하 신진예술가 선정
2011년 국립극장 창작공모 무용극 「하늘이여, 사랑이여」 가작당선
2013년 거창국제연극제 희곡공모 대상 「오월의 석류」
2015년 2인극 페스티벌 희곡상 「나도 전설이다」
2004년 희곡집1 『보물찾기』
2008년 희곡집2 『부부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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