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커 브라운은 1976년에 쓴<위대한 평화>를 3년 뒤 베를린 앙상블에서 초연했다. 브라운은 이 작품에서 역사상 시사하는 바가 큰 시대를 관객에게 보이고 과거사건을 현재와 비교하게 한다. 과거로 회귀함으로써 관객이 현재 문제 상황을 더 잘 파악하고 분명하게 쫓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의도에서 중국역사를 소재로 택했다. 1970년 대 사회 발전단계에 대한 작가의 각성에서 탄생한 이 작품에서는 그의 변증법적 역사-철학에 대한 견해가 돋보인다.
1971년 5월 3일 발터 울브리히트(Walter Ulbricht)가 건강상 이유로 서기장 직에서 물러나고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가 후계자가 된다. 호네커 정부 수립으로 많은 영역에서 조정과 감독이 약화될 거라는 희망이 대두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1976년 비어만의 시민권을 박탈한 사건은 정부의 무능력과 경직성을 새롭게 중명했다. 당 내부의 비평적 목소리를 조화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정부에 아주 심각한 신용 손실을 초래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첫째로, 당시 모든 사회주의적 변혁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동독정부가 사회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쳤지만, 권력기관으로서 기능하는 일보다 당 지배를 실행하고 확고히 하는 데 더 신경 썼음을 보여 준다. 둘째로, 노동 분업이 불평등 관계를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현대인이 훗날 노동제약을 좀 더 호의적이고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브라운의 이러한 의도는 1986년 그가 서독 브레멘 시가 수여하는 문학상 수상연설에서 밝힌 문학의 목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간이 천대받고, 억압받고, 버림받는, 그리고 경시되는 존재로 만드는 모든 상황들을 파괴하는 일에 관해 문학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브라운을 '몽상가'라고 비평한 사람들에게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 브라운의 주인공들이 이상적인 생각들을 다양하게 표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브라운의 인물들은<키퍼(Die Kipper)>에서 더 나은 작업 환경, 노동자의 잠재력을 드높이는 작업 시스템을 꿈꾼 것과 마찬가지로<위대한 평화〉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평등'에 대한 희망을 서술한다.
극의 둘째 장면에서 '철학자 왕'은 '후하이'에게 평등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철학자 왕 : 임금이 백성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소유한다는 것, 이것이 올바른 길의 참뜻입니다.
물론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상적인 견해들'을 관객이 단순히 믿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작품 줄거리와 과정이 지닌 이상향 적 차원은 사회에 현존하는 모순들과 대조를 이루며 그 실체를 명백히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문학적 척도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인터뷰에도 잘 나타난다.
크란츠 : 위대한 평화에 대한 이상향은 좌절되었습니다.
브라운 : 어떠한 이상향을 존중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사회의 가능성들을 인식하는 일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세계변화에 대한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브라운의 작품에서 이상향은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에 대한 올바른 답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이다. 이상향은 그에게 단지 비현실적인 것들의 표현이 아니라 자립하는 인류를 위한 방향 설정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이상향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첫째로 이상향은 목표에 도달하고 구체적인 진로를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로, 이상향에서는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대상을 특별히 명백하게 대조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브라운은 주인공의 이상향에 대한 묘사에 몰두한다.
브라운 : (…)<위대한 평화>는 환상으로부터 탈출이고, 그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이상 지향적인 내용을 단순히 공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정확히 관찰하려는 시도에서 이러한 개념이 발생했으며,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더 나은 상황을 위한 시도와 관련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주인공들의 환상적 사고방식과 비현실적 계획들은 분명 실제 모순된 노동현장 또는 사회 개선이나 수정을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작가는, 예를 들어 힘든 일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주인공의 이상적인 생각에 찬사를 보내지도 않고 그 계획을 촉진하기 위한 어떤 제안도 하지 않는다. 그는 관객에게 어떤 실제적인 이유들 때문에 등장인물이 그러한 이상적 관념들을 갖게 됐는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그에 대한 대립 관념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이상 지향적인 생각은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 노동환경에 대한 항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이상 지향적인 사고방식은 우선 그러한 환경에 대한 항의다.
이와 같이 이상과 현실을 대조하는 표현 방식은 현실의 약점과 잘못을 꼬집는 일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대조적 표현 방식에서 현재의 단점과 약점을 관객들이 빠르고 정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모순적인 현재 구조에 대한 대립물로서 ‘그 무엇'을 의미하지, 단어가 지니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작가는 '그 무엇'을 관객과 함께 찾고자한다. '그 무엇'을 추구하는 인물은 그래서 반사회적이거나, 현존하는 규칙을 부정하고 부수는 인물이어야 한다.<위대한 평화>에서는 '가우주'가 바로 이런 인물이다. 가우주는 여러 제후의 군인들에게 얼마 되지 않는 식량뿐만 아니라 아내마저 강탈당한다. 그래서 농민 봉기의 우두머리가 되어 경쟁하는 제후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고 마침내 자신이 황제가 되어 위대한 평화라는 구호 아래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가우주는 무지로 인해 올바른 평등의 의미를 실행하지 못하고 협력자 추윈의 조언에 끌려 다니기만 한다. 결국 이전 지배구조가 환원된 가운데 그는 불평등한 노동 구조를 재건하며 권력에 안주하게 된다. “권력이란 이름다운 거구나.”
극 결말부에서 뒤늦게 자신의 우매함을 깨달은 가우주는 추윈을 살해하고 상인들로부터 재산을 몰수해 궁궐 가까이에서 궐기한 자들에게 돌려준다. 봉기를 통해 획득한 가우주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궁궐 밖에서 또 다른 봉기자들이 진군해 온다. 이에 가우주가 속수무책 당하는 모습으로 막이 내린다.
브라운은 이처럼 주인공 가우주라는 인물의 농부 시절, 황제 시절, 그리고 황제 자리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한 모습을 보여주며, 올바른 평등의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관해 관객들이 인식하고 숙고하도록 자극한다. 브라운은 자신의 작가적 삶에 소재를 제공했던 동독에서, 등장인물들의 이상 지향 시도에 따른 현실 왜곡 때문에 공상가로, 망상가로, 또는 이상주의자로 비난받아 왔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방어한다.
"게다가 나는 항상 또다시 공상가 또는 망상가로 불렸다. 나는 이 비관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취한 전술은 항상 그릇된 희망들을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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