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생각을 잘하는 학갑선생은 오늘도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밤에 잠도 안자고 엉뚱한 생각을 하는 남편에게 부인인 간난은 바가지를 긁는다. 그때 마침 학갑선생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그것은 바로 옛날 왕들이 알에서 낳은 것과 같이 자신의 아들도 알에서 낳으면 그를 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계획 끝에 학갑선생은 알에서 나온 아이를 만들어 낸다. 그 아이는 같은 동네에 사는 오생원이 주어가 키우게 된다. 알동이를 왕으로 만들려는 학갑선생은 여러 수작을 써 알동이와 출가를 시도한다. 그리고 공주와 알동이와의 관계를 거짓으로 지어낸 참요를 부르고 돌아다닌다. 이 노래를 들은 왕은 알동이와 학갑선생을 궁전으로 부른다. 왕이 알동이를 부른다는 소식을 듣고 학갑선생은 인절미 두개와 치과에 가서 틀니를 맞춘다. 임금을 만나러 궁전으로 간 날 학갑선생은 임금의 자격을 나타내준다고 하는 이빨의 개수로 알동이와 시합하자고 한다.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던 왕은 시합을 한다. 하지만 틀니를 낀 알동이가 승리하게 된다. 그리고 알동이는 왕이 된다. 알동이가 왕이 된 후 평화로운 세상을 맞는다. 하지만 알동이가 왕이 된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학갑선생이 한 것처럼 왕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꾸민다.
기발한 신화 소재 느슨한 정치 풍자
-<임금알> 연극적 착상이 기발하다. 그러나 아이디어만 가지고 연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태영(吳泰英) 작<임금알>이 난생신화를 근거로 해서, 정치적 음모를 꾸미는 오늘의 세태를 풍자한다고 하면 기껏해야 그것은 신화의 패러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극이, 혹은 예술이 그 정도의 자유와 풍자정신도 못 드러내는 문화풍토라면 그만큼 정치의식이 굳어져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그 동안 왜<임금알>이 공연되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연극제에서도 그것을 물고 늘어져 있었던 검열당국의 좁은 소견이 한심하다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신화에서는 알에서 태어나는 임금들이 많다.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신화적 특징이 아니라 동남아일대, 더 나아가 범세계적으로 건국신화에 얽힌 ‘알’은 생명의 원초적 형태임을 말하는 것이다. 다윈적인 진화론을 증명한다 할까. 난생 신화에서는 왕권의 전통성이 의심 받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임금알>에서는 그것이 현대적 정치 풍자니까 당연히 알을 빙자한 정권인수인계에 음모가 따르게 되어있고, 정통성의 구실이 되었던 ‘알에서의 탄생’과 임금의 덕목을 증명하는 ‘이빨수’에 엉성한 희곡적 구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희곡의 구성이 엉성하다는 것은 그만큼 연극의 구성이 엉성하다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이 연극의 정치 풍자가 세심하게 계산된 것이 아니라 표피적으로 검열은 이 정도의 풍자극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치적 작태에 대한 패러디는 그것이 계산되고 작품세계 속에 내재화할 때 문제되는 것이지 드러난 상황을 두고 걱정한다는 것은 소아병적 발상임을 연극<임금알>이 증명한다. 연출 기국서(奇國敍)는 전작<빵>에서도 현실적으로 ‘빵’ 투척 수법을 동원했지만 이 작품에서도 달걀을 소도구로 사용한다. 물론 생달걀이 아니라 이 작품처럼 만들어진 플라스틱 알을 던지도록 유도된 관객들은 가짜 앞에서 탄생한 가짜 임금에게 가짜 달걀을 던진다. 그렇게 해서 이 가짜 놀이의 연극판에서는 온통 가짜들만 범람하게 되는데 이미 연극이 흉내놀이이므로 정치 풍자 또는 가짜에 대한 흉내의 짓거리에 지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유사품에 속하는 아래 위 모두 한심스러울 뿐이다. 학갑이라는 작자는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광대에게 놀아나서 알을 배고 알을 낳은 것처럼 꾸미고 알에서 태어난 것처럼 행세하는 일련의 작태는 마당극적이고 넓은 의미에서 총체극적이다. 우선 신화 소재 자체가 설화식인데다가 이야기 전개 짓거리들도 아귀야 맞든 안 맞든 개의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느슨하므로 해서 현실적으로 팽팽한 긴장의 정치 풍자는 상당히 해이된 채 관객석으로 전달된다. 우리는 연극이 너무 진지한 데 어느 정도 질려 있다. 재미라든가 즐거움을 배제한 채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메시지만 전달하려 드는 무대는 경직한 현실과 부딪쳐 소리를 낸다. 그럴 때<임금알>같은 연극놀이는 기발한 착상으로 해서 한번쯤 마당극적인 놀이를 놀고 잊혀지면 그만이다. 그것을 어른스럽지 않게 진지하게 파고드는 문제의식이 우리의 문화 환경을 점점 더 따분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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