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근삼 '이런 사람, 허생이야기 '

clint 2017. 2. 8. 11:42

 

 

 

갓 쓰고 자전거 탄 꼴은 보기에만 어색하나 도포 입고 부르는 브로드웨이 투의 노랫가락은 보기에만이 아니라 듣기에도 어색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활감각으로 봐서 어색할 수밖에 없다. 국립 예그린예술단의 뮤지컬 드라마<이런 사람>(이근삼 극본, 최창권 작곡, 김학자 안무, 허규 연출)을 보러 간 세 사람이 공연 중에 자리를 뜬 가장 큰 이유도 도포 입은 허생원의 브로드웨이식의 창법에 있었던 것 같다. 연출이 동적인 선을 탈춤의 짓거리로 아무리 잘 연결시키고, 한국적인 주제를 염두에 둔 안무가 춤사위를 우리의 고유한 움직임으로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하더라도 뮤지컬이라는 노래와 춤의 연극 형식, 그것도 극히 미국적인 브로드웨이 투의 창법에 따라 노래하는 한국의 허생 이야기는 미국 뮤지컬의 한국판 흉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흉내를 내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뮤지컬의 주제가를 흥얼거리고 팝송의 가락을 입에 담고 고고의 리듬에 젖어 있는 경우에 그런 젊은 세대의 생리나 감각에 맞춘 알맞은 양식의 도입은 흉내를 낸 것이라고 하더라도 창조적일 수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양식을 본뜬 <이런 사람>의 소재가 한국의 고유한 것이고, 그것도 시대를 거슬러올라가는 역사물이면 양식과 소재가 서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미리 지적되어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소재 자체가 해학과 풍자를 뼈대로 한 데다가 이상과 의지 문제를 다룬 이념극의 형식을 지닐 때에는 갈등이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이 뮤지컬이 꽤 일반성을 가진 현대물이거나 내용이 풍자와 이념 중에서 어느 한 쪽으로 제한이 되었더라면 기본적인 위화감은 상당히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다.
신분과 계층의 구별이 뚜렷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씌어진 우리의 고전작품을 뮤지컬이나 오페라로 만들 때에는 문화 풍토의 차이에서, 특히 민족 나름의 고유한 선율의 차이에서 생기는 생활감각의 생리적인 반발을 어떻게 가장 적게 하느냐가 문제라 할 것이다. 말하기는 쉬워도 융합이니 조화니 하여 먹을 수도 없는 비빔밥이 쉽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투의 뮤지컬에 까닭도 없이 판소리 가락이나 탈춤 사위를 섞어 넣은 임기응변도 생긴다. 그리고 그것을 재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번처럼 소재는 소재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밀어붙이는 공연 방식의 고집은 차라리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소재로 선정된 허생 이야기의 시대배경과 음악과의 상관관계는 이 글이 다룰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다루려고 하는 것은 뮤지컬 드라마의 바탕이 되어 있는 극본이다. 극본을 쓴 이근삼은 허생이라는 중심인물의 성격이나 뜻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원작을 재구성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이근삼의 허생 이야기지 박지원의 것일 수는 없다. 이근삼 극본의 특징은 1부와 2부로 크게 나뉜, 또 열 개의 장으로 작게 나뉜 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허생이라는 인물에 씌워 놓은 그의 얄팍한 이념에 있다. 그 이념은 꿈을 실현하려고 의지를 시험하는 인간상으로 허생을 내세운다. 이 뮤지컬 드라마에는 그의 꿈, 의지, 집념 그리고 고독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그런 비극적인 상황을 뒷받침하는 희극 작법의 핵심이 풍자와 익살이라는 점에서 극본의 모순점이 드러난다. 해학극에서는 이념의 영웅상도 한낱 싱거운 만화 같은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근삼은 근본적으로 해학극인 뮤지컬 드라마에서 작은 부분들은 파르스 같은 코미디로 연출시키면서 중심인물의 행적에 대해서는 비장감이 넘치는 이념적인 인물을 그려 넣기도 한다. 이근삼 풍자의 중요한 목표는 정통 코미디의 목표 대상인 부자나 귀족이나 장군 같은 상류계층이 아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약자는 더욱 약자로서 희화화되고, 사회의 비참성은 더욱 이지러지면서 비참해지고, 사람의 약점은 그 인물이 약자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그의 풍자 기능은 지성을 갖춘 것이 아니라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오히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해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그의 상소리와 욕지거리의 풍자 기능을 일상생활에 연장시킬 위험이 있으나<이런 사람>에 나타난 약자의 희화화는 제1부 1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그것도 이근삼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계층, 곧 지식사회를 반영한 4장의 양반 형태에서 극도로 고조된다. 그는 무능하고 창백한 지성을 탄핵한다. 그런데 바로 그 창백한 지성이 쥐어짠 지식 전달로 생계를 꾸리며, 그런 사실 자체에 더욱 반발하는 셈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원작자 박지원 자신이 그런 모순 속에서 허생을 창조했고 그런 허생이 현대의 모습으로 이근삼의 손에 의해 재구성되면서 이념, 곧 작가의 의욕과 풍자, 곧 현실반발로 더욱 예리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근삼의 <이런 사람>은 브로드웨이 투의 가락에 실려 빠른 흐름으로 진행된다. 깊이 있는 정감 –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거쉰의 음악에 길들여진 <포기와 베스>를 염두에 두는데 – 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간적인 갈등은 아무데도 없다. 달래의 허생에 대한 연정이나 대복의 허생에 대한 헌신, 그리고 달래와 대복의 결연 같은 것은 너무 허구성이 짙기 때문에 신파투의 감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구질구질한 장면의 삽입에 견주면 오히려 원작에서 따온 사건들, 이를테면 변부자에 얽힌 사연이라든지 안성 장터의 과일 매점 소동, 도적떼의 굴복 그리고 이대장과의 논쟁 같은 대목은 예리한 반면 간략하게 처리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의 창작적인 삽입의 장면들이 오히려 군더더기에 지나지 못한다. 뮤지컬 드라마의 큰 장면을 위해서 동원된 군중 – 특히 도둑떼 – 의 처리가 극의 흐름을 고조시키는 반면 애정과 같은 사적인 감정의 노출이 정감의 표출에 실패한 이유는 도식적인 사건의 연출에 감상적인 양념까지 치겠다는 지나친 욕심이 작용한 데에 있다. 도식적으로 전개되어 나간, 그러니까 내면의 감동보다 일어난 사건을 한 장면 한 장면에서 설명하듯이 그림으로 보여주는 작품의 구성은 따라서 스스로 한계를 그었어야 했다. 그런 것이 풍자극의 특성이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이런 사람>, 곧 위대한 인물의 행적을 좇는 이 이념극은 이념과 풍자의 과녁이 이중적이기 때문에 의도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념과 의지의 사람인 허생을 풍자해 거기에서 풍기는 익살이 제도나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파급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허생은 위대한데 제도와 환경과 주변 사람들은 잔망스럽다고 풍자하는 표현방법은 이성으로 가다듬어야 할 풍자정신을 망각한 것이며, 브로드웨이 식의 음악에 우리의 고유한 정서를 겨냥하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다. 그런 혼란은 말씨에도 있다. “···나이까” “···더이다” “···옵니다” 같은 구식 어법과 함께 “했어요” “입니다” “것이오” 등이 뒤섞이고 느닷없이 튀어 나오는 특별 보너스 같은 현대어는 그것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 같은 원작을 각색해서 만들었던 오영진의 희곡에서 그 점이 두드러졌다 – 쓰이지 않은 것이라면 안일한 편의주의로 지적될 것이다.
해설자 구실의 극중 작가는 첫 등장 부분에서 꽤 치밀한 계산에 따라 나타났으며, 상황 설명이나 장면전환에 훌륭한 기능을 했다. 그러나 후반 부분으로 가면서 극중 작가를 통한 이근삼의 작가적인 안일성이 원색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하여 점차 생경한 설교나 관념론으로 바뀌어 버린다. 또한 극중 작가는 단순히 허생 같은 작중 인물의 대화의 계기나 의사전달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수동적인 위치로 떨어져 본래 지녔던 서사극적인 기능은 없어지고 이근삼의 극중에서 잃어버린 말꼬리를 잇는 편리한 수단이 된다. 특히 허생이 마지막 떠나는 장면에서 어디로 가느냐, 무엇을 하겠느냐는 평범하고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등장하는 극중 작가의 기능은 작가로서의 무능함을 입증하다시피 한다.

 

 

 

 

제1부
1장 어느 길가
작가가 나타나 주제가 "이런 사람"을 부르면 세곡 때문에 농토를 버리고 고향을 등지는 이농민들, 돈 먹을 욕심에 죄수를 따라가는 옥리들, 처녀들을 사고 파는 인신매매상들, 고루하고 이기적인 학자들의 행렬이 작가 앞을 어지럽게 지나간다. 이때 허생이 나타나 장안 부자를 찾는다.
2장 변부자 집
장안갑부 변부자의 생일잔치에 고관 대작들이 모여들어 변부자를 마치 임금처럼 떠받들어 아첨할 때 남루한 옷차림의 허생이 나타나 돈 만냥을 꾸어달라고 말한다. 구두쇠로 유명한 변부자는 뜻밖에 선뜻 승낙하고 하인 대복까지 달려 보낸다.
3장 과수원과 안성장터
과수원 처녀 달래는 춤과 노래로 과수원을 누비다가 품삯으로 받은 과일을 들고 안성 장터로 나온다. 안성 장터에는 각도에서 모여든 과일상들이 소리높여 외치며 과일을 사고팔 때 허생이 나타나 시세의 배 값을 주고 과일을 몽땅 긁어 모은다.
4장 변부자집과 도둑소굴
흔하던 과일이 동이 나자 값은 수십배로 뛰고 그나마 제사에 쓸 과일조차 구할 수 없어 변부자는 물론 조정에서까지 과일 난리를 겪어야 하는 판국이 된다. 결국 변부자는 제사에 쓸 과일 몇알을 구하기 위해 수레에 돈을 싣고 안성까지 가게 된다. 한편 허생은 제주도의 말총을 매점해 버린다. 갓과 감투를 구하지 못하게 된 양반들은 서민들에게 갖은 수모를 다 겪는다. 이런 기상천외의 상술로 돈을 번 허생은 변산 합죽골에 있는 천여명의 도둑 소굴로 보낸다. 허생의 계략대로 도둑두령과 그의 부인 아달치는 졸개들을 이끌고 허생의 돈을 훔치러 간다.
5장 허생의 처소
도둑 두령의 딸 샛놀이를 남장시켜 먼저 정탐을 하게 한 도둑일행은 대복의 안내를 받으며 허생이 묵고 있는 집의 돈광을 습격한다. 그러나 돈을 훔친 도둑들은 돈 무게에 짓눌려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 없게 된다.
이 때 돈이 가득 쌓인 또 다른 광속에서 엿보던 허생이 나타나 이 돈을 모두 줄 것이니 도둑질을 그만 두고 색시와 농기구를 구해서 남해에 있는 기름진 외딴 섬으로 가 떳떳하게 살자고 설득한다. 며칠 후 변산포구에는 개심한 도둑들이 각기 신부감을 구해서 합동 결혼식을 올리고 새 희망과 환희에 넘쳐 춤을 춘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허생은 흐뭇한 마음과 닥쳐올 여러가지 시련을 염려하면서 보람된 그 날을 향해서 힘차게 걸어 갈 것을 다짐할 때 막이 내린다.
제2부
6장 어느 길가와 변부자의 집
허생은 대복이와 샛놀이를 데리고 변부자의 돈을 갚기 위해서 한성으로 떠난다. 변부자의 집에서 북벌을 주장하는 장군을 만난 허생. 낡고 무기력한 예법을 고집하는 한 북벌이 불가능 할 뿐 아니라 국가의 안위마저 어렵다고 일갈한 뒤 변부자에게 샛놀이를 맡겨 사람되는 공부를 시켜달라고 부탁하고 대복이와 함께 남해 고도를 향해 떠난다.
7장 어느 길가와 바다가 보이는 정자
남해에 있는 섬으로 가는 도중, 허생과 대복이 두령이 이끌고 온 신혼부부 일행과 합류할 때 이 고을에서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사또 일행을 만나 그의 비행과 부정을 낱낱이 들추어내서 엄히 다스리고 멀리서만 허생을 사모하는 달래와 함께 섬으로 향한다.
8장 어느 고도
허생 일행이 섬에 이주해서 계절이 몇번이나 바뀌고 땀흘려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풍요로운 이상향을 이룩했다. 그동안 야성녀였던 샛놀이가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오고 먹고 남는 양식을 왜나라에 팔아 저축한 돈이 수백만냥. 허생은 후손을 위해 그 돈을 바다속에 넣기로 한다.
9장 바닷가 어느곳
파도 소리가 들리는 달밤. 허생과 대복, 달래가 오랫만에 단란한 가족처럼 얘기를 주고 받는다. 허생은 대복과 달래에게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라 당부하며 대복과 달래의 결혼을 함축성있게 권유한다. 이때 해적들이 수십척의 배를 이끌고 처들어 온다는 급보가 전해진다.
10장 바닷가의 요새
허생의 지휘에 따라 남녀노소 섬사람들이 용감히 싸워 해적들을 물리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고 호탕하고 익살맞은 두령이 승리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운명한다. 섬사람들의 슬픔이 채 가라앉기 전에 허생은 도민들에게 희망과 꿈과 큰 뜻을 가슴 뿌듯하게 안겨주고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홀연히 섬을 떠날때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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