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3년 전, 인터넷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헨리 다거’ (Henry Darger, 1892-1973)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다. 나는 헨리의 인생과 그림, 그가 썼다는 소설 ‘비현실의 왕국에서’(In the Realms of the Unreal)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글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경이로웠으나, 무척 두렵고 슬펐다. 당시에는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내가 그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즉 〈핑키와 그랑죠〉는 헨리 다거라는 아티스트와 그가 쓴 소설 ‘비현실의 왕국에서’로부터 모티브를 얻고, 그것을 내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변형시켜 쓴 희곡이다.
‘비현실의 왕국에서’는 헨리 다거가 손수 타이핑한 장장 15.000 메이지 분량의 판타지 모험 소설이다. 헨리 다거는 유년기에 정신병원에서 끔찍한 학대를 당한 뒤 기적적으로 그곳에서 탈출하고, 남은 일생 동안 병원 잡역부로 일하며 이 기나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린이들의 왕국 애비엔에 ‘비비안 걸즈’ 라는 어린이 공주 7영이 있었다. 이들은 애비엔의 모든 어린이들을 노예로 삼으려는 사악한 성인 남자인 ‘존 맨리’ 와 그가 이끄는 ‘그랜델리니아’ 부대에 저항해 끝없는 전쟁을 벌인다. 전쟁에 나선 아이들은 목이 졸리고, 층에 맞고, 내장이 끄집어내지는 등 온갖 방법으로 고문당하고 끔찍하게 희생당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최후에는 승리하게 된다.’
나에게 헨리 다거의 작품은 그 자신이 유년기 때 겪었던 학대,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 대항 하는 기나긴 싸움으로 보였다. 헨리는 간혹 소설 속에 지신을 ‘어린이들의 수호자로 등장 시키는데, 실제 고문과 전쟁을 쓰고 그리는 사람은 그 자신이었다. 이것은 슬픈 모순처럼 느껴졌다.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한 인간이 느껴졌다. 그는 환상의 세계를 다스리는 주인이었음에도 일기장에는 ‘고통스럽다고 썼다. 왜일까?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또 다른 세계를 만들었는데, 그 세계가 구체화되면 될수록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고통이 생겼던 것일까 현실을 지탱하려고 만든 판타지가 종국에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빗줄이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가정이고 상상이다 헨리 다거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상상하게 되었다. 무대에 헨리라는 극중 가상의 인물이 있고, 그가 자신처럼 학대당한 아이 두 명(‘핑키’와 ‘그랑죠’)을 선택해 키우는 이야기를 실제로는 혼자 썼던 이야기가 이 아이들과 함께한 이야기였다면. 비슷한 학대를 겪은 셋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 속의 복수를 선택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한 아이는 이야기를 선택하고 다른 아이는 바깥의 삶을 선택한다면? 이들은 모두 극적인 모순 앞에 서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상상에서 〈핑키와 그랑죠〉는 출발했다. - 신채경
핑키와 그랑죠는 어릴 적 고아원 원장 '존'에게 학대당하다 병원 청소부 헨리에게 구출되어 그와 함께 살게 된다. 셋은 비좁은 집에 틀어박혀 '아이들이 힘을 갖고 복수하는 전쟁 이야기'를 써나간다. 그랑죠가 직접 존을 죽이겠다며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핑키는 집에 남아 아버지와 함께 가성의 전쟁을 이어나간다. 8년이 흐르고, 성인이 된 그랑죠가 집 문을 두드린다.
유년기가 있었고, 고통이 있었다. 그것이 실재했기에 끝나지 않은 전쟁을 벌였다. 또 다른 고통이 생겨났다. 환상을 통해 유년기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려던 한 남자. 그는 자신과 같은 악몽을 꾸던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환상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것은 뜻밖의 고통과 슬픔을 낳게 되는데...
실제 아동 학대의 피해자기도 했던 헨리 다거는 연극 ‘핑키와 그랑죠’에서 두 사람의 구원자이자 아버지로 등장한다. 핑키는 14년 동안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존과 그랜델리니아들을 무찌르는 전사로 살았다.
애비엔의 전사로, 그런 딸의 아버지로 견고하게 유지하던 두 사람의 일상은 8년 전 그랜델리니아와 싸우다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그랑죠가 나타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애비엔 왕국의 왕자였고 전설이자 영웅이었던 그랑죠는 고단하고 피폐한 모양새다. 현실의 세계에서 8년을 헤매다 돌아온 그랑죠로 인해 혼란에 휩싸이면서 이야기는 그 실체를 드러낸다. 아동 폭력이 부른 또 다른 폭력과 학대, 그렇게 폭력은 또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를 낳는다. 누군가는 핑키와 그랑죠가 되고 누구나 존과 그랜델리니아가 된다. “밖은 지옥이야. 그런데 예쁜 곳도 있어. 애비엔의 바다, 숲, 놀이공원처럼.”
갑자기 돌아온 그랑죠가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통에 혼란스러운 핑키, 설상가상 아버지가 구해다 준 다시 아이가 되는 약을 12알이나 집어삼켰는데도 생리가 터져버렸다. 굳이 밖이 아니어도 지옥은 있고 예쁜 곳도 있다. 바깥세상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피한다고 사라지거나 달라질 현실이 아니다. 존이 죽어도 존 같은 어른은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한다. 그랜델리니아들은 죽여도, 죽여도 아이들과 약자를 괴롭히며 비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무섭다고 도망만 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돼 버린다. 현실과 그 현실의 도피처가 돼주는 가상의 세계, 트라우마와 그를 감춘 또 다른 나, 이는 핑키와 그랑죠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겪는 성장 통이며 선택의 순간이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이 역시 나 스스로다. 핑키와 그랑죠는 진짜 삶을 찾아 떠나지만 현실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헨리는 여전히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남아있다. 이 역시 각자의 선택이며 스스로 책임져야할 몫이다. 연극이 끝난 후 관객 역시 혼란을 겪는다. 핑키와 그랑죠는 실재한 아이들일까? 작가와 연출의 답은 “그렇다”다. 핑키와 그랑죠로 대변되는 또 다른 학대아동 피해자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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