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막지한 여자<撥婦)>는 1925년 상무인서관이 출판한 《극본회간(劇本睡刊)》 제1집에 실렸던 작품이다.
작품은 ''남자라면 세 명의 아내와 네 명의 첩은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환경에서, 여자는 과연 어떠한 도덕관을 가져야 하고, 사람들은 부녀자들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를 제기하고 있다. 작품에서는 인물간의 갈등을 통해 남자를 위주로 하고 여자를 부속품으로 여겼던 구도덕을 부정하고, 과감하고 견강한 여자 주인공 소심이 봉건 예교에 강력하게 반항하고 투쟁하는 바를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1922년에 창작이 되었는데, 같은 해에 홍심에 의해 무대화되었다. 당시 홍심은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에 반대하였던 바,<무지막지한 여자>와<종신대사>두 작품을 같은 날 공연하여,<무지막지한 여자>는 남자 역은 남자가, 여자 역은 여자가 맡게 하고,<종신대사>는 남자가 여장을 하도록 하여, 남녀 합연(合演)의 우수성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하여<무지막지한 여자>는 중국 화극사상 남녀가 합연을 한 최초의 시도였던 작품이다.
작가소개
구양여천(1889~1962)은 원명이 입원(立袁)이고, 호는 남걸(南杰)이다. 호남(湖南) 유양(測陽) 사람이다. 일찍부터 일본에서 유학하였다. 1907년에 춘류사(春柳社)에 참가하였고 일본에서<혹노 유천록>,<열혈(熱血)>을 공연하였다. 귀국 후,문사 극단을 조직, 남경(南京)과 장사(長沙) 등지에서 화극을 공연하였다. 뒤에는 또 신극동지회를 조직하고, 남국사에 참가하여 화극운동을 창도하는데 열성을 다 바쳤다. 구양여천은 중국 화극운동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이며, 영화를 개척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1926년 상해에서 민신 영화사가 생기자마자 그는 여기서 편집을 맡았다. 그는 영화 시나리오<옥결빙청(玉潔冰淸)>,<천애가녀(天涯歌女)>,<삼년이후<三年以後)>등을 창작하였다. 그는 또 전통 戯曲을 계승하고 개혁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1906년부터 취미로 경극을 배우다가 1915년에는 정식으로 경극 배우가 되었고, 뒤에는 매란방(梅蘭芳)과 병칭될 정도로 유명해져서 마침내는 "남구북매(南歐北梅)”라 불리게 되었다. 1932년부터 1933년 겨울까지는 유럽을 돌면서 연극을 관람하였다.
1935년에는 공산당의 영도 하에 영화계에서 활동, 신화<新華) 연화(聯華) 명성(明星) 영화사에서 영화감독을 맡았고 또<신도화선(新桃花扇)>,<청명시절(淸明時節)>,<소령공(小伶工)>등의 영화 시나리오를 창작하였다. 항전기간 중에는 중화극단을 조직하여 4편의 대형 화극<양홍옥<梁紅玉)>,<어부한(漁夫 恨)>,<도화선>.<신옥당춘(新玉堂春)>등을 창작하여, 민족의 영웅을 가송하고 한간과 매국노를 통렬하게 비난하였다.
항전 승리 후에는 영화 시나리오<막을 수 없는 봄빛>,<약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로다>,<연애의 길>(하연과 합작) 등을 창작하였다.
해방 후에는 중국 문학예술 연합회 부주석, 중국 희극가 협회 부주석, 중국 무도 공작협회 주석, 중앙희극학원 원장, 중앙실험화극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공연 경험담을 담은<내가 연극을 하고부터>, 예술논문집 《일득여초(一得餘抄)》, 화극극본<혹노한>경극 극본<도화선(桃花扇)>등을 써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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