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다카도 가나메 '갈색의 천사'

clint 2015. 10. 28. 09:20

 

 

 

 

 

1959에 발표된 이 작품은 등장인물은, 함께 할 약속을 했지만, 그 상대로부터 약속을 취소당한 토목기사와 바로 그 호텔 바의 여자 두 사람만의 연극이다.
아직 이십대 중반의 젊은이일 텐데, 작가의 숙달된 어른들 간의 분위기에서 남녀의 수작의 능숙함에, 우선은 놀랐다. 피카소에게도 자연주의 시대가 있었듯이, 이 극작가에게도 이러한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자연주의적 기법은, 이 극의 절정이 대부분 '과거'를 이야기하는 여자의 고백형식에 의해 진척되고 있는 부분에 현저하게 집적되어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백 그 자체가 여자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로서 냉정하게 다루어져, 뒤집혀진 점이다. 거기에 이미 고백형식이라고 하는 자연주의적 기법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초극하려고 하는 자세가 엿보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일까? 과학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만 갖추면 강(江)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토목기사인 남자는, 전쟁 후 부흥을 위해 과학기술 지상주의를 선택한 일본과 일본인을 대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를 들어 여자의 고백이 풀과 가위로 붙인 어설픈 투쟁이야기 밖에 없었다고 해도, 여자는, 전쟁의 피해자이고 동시에 가해자로서의 일본인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질질 끌어온,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 일 것이다. 백귀야행 하는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스스로 귀신으로 변해, 악령들의 군단 레기온같이 억지로 갈라놓아, 분열하고 부끄러움도 죄도 느끼지 못한 채로 자기를 상실한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일 것이다. 그 자신이라는 것만 되돌릴 수 있다면 심신이 하나가 되어 다시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기술 지상주의자인 남자에게는, 도저히 그 여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되돌리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하물며, 그 죄의 책임을 진다는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러한 통렬한 비판이 여기에는 다름 아닌 자기비판으로서도 담겨져 있다.


다카도 가나메(高堂 要) : 연극인, 출판인, 교육자, 종교인
1932년 일본 오카야마 현에서 출생한 뒤 1955년 도쿄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동년 극단 三期會(현 토쿄 연극앙상블)에 입단 후 삶의 마지막 날까지 극작, 비평, 출판에 전력을 다했다. 1964년 동북아 기독교협의회 위원 자격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한국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윤동주, 김동리 등에 관한 평문을 발표했다. 입교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동북아 기독 작가 회의 의장으로 일하며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적 활동에 헌신했다. 1998년에는 기독교 이념과 한국 3.1운동의 정신에 공감하는 일본의 연극인들을 규합, 3.1운동 8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극단 삼일회를 창단하기도 했다. 극단 삼일회의 단장으로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발한 공연 활동을 이어가던 후두암이 악화되어 2004년에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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