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가희와 그의 여학교 친구인 나미와의 우정과 고통을 동반하고자 하는 서로의 노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미도 역시 교통사고로 남편과 세 자녀 가족 모두를 잃고 심적으로 불우한 상태로, 병원에서 정신치료 후 퇴원 즈음에 가희가 나미를 자기 집에서 같이 의지하며 지내자고 하여 나미가 가희의 집에 도착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가희의 남편인 다호는 친구가 같이 있는 게 가희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이날도 일찍 퇴근하여 나미를 환영한다. 가희는 두 아이가 있는데 교육상 좋겠다고 하여 시부모에게 애들을 보냈다. 가희가 휠체어로밖에 활동할 수 없기에 주로 집에서 뜨개질하고 나미는 책을 읽으며 서로 대화하며 지내는데... 40대인 남편 다호와는 자신의 불구인 몸을 보여주기 싫다며 관계를 거절한다고 나미에게 말한다. 가희는 남편에게 나미를 가끔 바람을 쏘일 겸 외출을 시켜달라고 부탁하여 그렇게 하고 나미를 통해 외출한 일을 얘기 듣는다. 그리고 나미에게 부탁하는 건 남편을 사랑해줄 수 없냐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온 나미와 남편을 통해 이들은 형식적으로 만났던 것이 밝혀진다. 남편은 자꾸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고 둘은 과거의 꿈을 서로 공유한다. 그러나 미래는 암울하기만하다. 그래서 꿈 지우기란 제목이 암시하 듯 서서히 예전의 꿈들이 지워지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는 항상 함께 한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여고 2S}년 때 희곡이란 걸 처음 써 보았다. 제목이 〈어머니의 숙명〉 이었는데 학교에서 공연하고 교지에도 게재되었다. 그 시절 나는 연극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도둑구경을 갔다가 들키는 날에는 정학이라는 무서운 벌이 주어지는 데도 겁도 없이 보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극장에 가곤 했다. 그런데 연극 구경을 하다 보니 직접 무대에 서고 싶어졌다. 연극반에 들어가면 연극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들어가 보았지만 마땅한 대본이 없다는 이유로 연극반에서도 공연할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직접 희곡을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나는 꼬박 일주일 걸려 이 〈어머니의 숙명〉을 완성했고 이 작품은 바로 졸업생 송별기념 공연작품으로 결정되었다. 거기에 출연까지 해서 그렇게 원했던 소원을 풀 수 있었다. 그때의 기분은 천하를 얻은 듯 부러운 것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 또 더 이상 원할 것도 없을 만큼 내게 충족감을 주었었다.
그 일로 해서 나는 더 연극에 중독이 되어 연극영화과를 갔고 스물세 살에 희곡작가로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렇게 열망했던 연극이 때로는 심한 좌절과 갈등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희곡이 독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은 문학하는 사람으로서는 큰 아픔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수필과 콩트를 많이 쓰게 되었고 그럴 때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붙박이로 자리 잡고 있는 희곡은 '왜 희곡을 열심히 쓰지 않느냐?' '희곡집도 내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고 힐책하며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려 했다.
아무튼 75년도에 첫 희곡집 《낮 공원산책》을 내고 3년 뒤인 78년 희곡선집 《아가야 청산가자》가 나온 후, 18년 민에 이《꿈 지우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 모두를 게재하지 못하는 0]쉬움이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나오는 희곡집이어서인지 기쁘기가 한량없다. 그러나 가슴앓이도 그 무게만큼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막상 책이 나오게 되니 몇 년째 희곡집을 내지 않는다고 채근하며 ≪꿈 지우기》의 장정을 예쁘게 해서 만들어 준 스승 같고 친구 같은 성춘복 선생님과 발간 비를 지원해 준 문예 진흥원이 더없이 고맙게 생각된다. 언제나 마음의 앙금으로 남아 있던 희곡집 발간이 빛을 보는 올해 5월의 훈풍은 더욱 넉넉하고 다사롭게 나를 싸안고 있다.
전옥주(田玉柱)
' 39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남. 경북여고. 서라벌 예술대학졸업.
' 62년 「현대문학」에 희곡 〈운명을 사랑하라〉를 추천받아 등단함.
저서로는 희곡집 <낮 공원산책 '75>. <아가야 청산가자>(‘78). <꿈 지우기>('96) 등과.
수필집 <하나되기 위하여 우리는>('88)과 콩트집 <꽁보리밥과 풀빵>('94) 둥이 있음.
한국문학상(‘88). 한국희곡문학상(’92) 등을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국재 팬클럽 한국본부 이사. 공연윤리위원회 무대예술분야 전문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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