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이 시행된 지 6개월밖에 안된 시점에서 믿을 수 없을 만치 원숙한 태도로 성매매 여성들의 ‘현재’를 다룬 작품이다.
담담한 톤의 ‘농담 따먹기’식 대사와 격렬한 갈등의 대비 속에 우리 자신의 속내까지 포함하여 아픈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이 목소리는 아직도 유효하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후 단속을 피해 업주 사내는 남동생이 조용히 살고 있는 서울 근교로 자신의 업소에 일하던 아가씨들을 피신시킨 후 도망을 다닌다. 업소 아가씨들은 조용히 지내며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업소에서와는 달리 아가씨들은 서로 감추고 지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며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가게 되고 결국 자신들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자신들의 내면과 문득 문득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철저한 억압과 착취 방식의 생활에 길들여진 나머지 그들은 처음 성매매 현장에 유입될 때처럼 어떤 용기를 낼 수가 없다. 동료들을 제외한 타인들과는 대화조차도 피하게 되고 그들에게 가해진 인격과 자존감의 파괴는 좀처럼 치유될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긴 덕분에 주위의 도움도 간혹 받지만 그들에겐 고마움보다도 불안감이 앞서기만 한다. 주위 사람들의 편협한 시선과 다수라는 이름의 단체들로부터 그들은 점점 숨기고 싶은 모습을 드러내야 하고 급기야는 모처럼만의 휴식처와 그 시간들을 내 놓아야 하는데....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공연을 보다 보면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적인 대사에 '연극'인지 '실제'인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게 된다. 그만큼 이 공연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주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담담히 공연을 보기엔 그녀들의 이야기가 너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저릿저릿해진다.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모두 같은 사람'이기에 그녀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네들이 서로를 보듬어줄 때 연출가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 어느덧 보는 이 또한 마음의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된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마음 아파하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배우들은 이미 래경, 은영, 소영, 지연이었고 관객들 또한 그녀들 자체로 보았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이야기는 가슴 절절히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공연이 끝나고 불편한 좌석과 밖의 매서운 추위에 쉽게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관객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네들이 비라던 꿈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랬으며 진구의 따뜻함과 윤미의 다정함에 마음의 불을 얻고 돌아갈 수 있었다.
2005년.12월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지상의 모든 밤들>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였다. 2006동아연극상 후보에 올랐다는 희보도 날라들어 공연장의 열기에 박차를 더하였다. 사실 이 공연이 연말 분위기에 맞게 화려하게 볼거리가 많고 공연내내 웃을 수 있는 공연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성과 따뜻함이 통했던걸까. 입소문을 타고 어린 중고등생부터 4,50대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찾아와 가슴으로 공연을 느꼈다.
27회 2006서울연극제에 공식참가작으로 선정되었고 2006 올해의예술상 수상작으로 좀 더 다양한 관객들에게 다가갈수 있게 되었다.
김낙형
76극단에서 시작된 그의 연극시대는 혜화동1번지 3기 동인, 극단 죽죽의 창단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대담한 해체와 표현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그를 주목하게 만들며 최근 이루어진 다양한 연출활동은 그가 실험적인 작품들만이 아닌 일상의 드라마와 삶의 면면을 세심하게 살피는 데에도 역량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지상의 모든 밤들>, <나의 교실>과 더불어 <맥베드>의 카이로국제연극제 대상까지 대한민국을넘어서 세계에서 우수함과 열정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성희 '호랑가시나무 숲의 기억' (1) | 2016.04.10 |
---|---|
전옥주 '꿈지우기' (1) | 2016.04.10 |
윤정선 '피리소리' (1) | 2016.04.10 |
신원선 '희곡은 잘 팔리면 안 되나요’ (1) | 2016.04.09 |
유희경 '별을 가두다' (1) | 2016.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