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정선 '피리소리'

clint 2016. 4. 10. 10:00

 

 

 

피리소리의 선녀는 아무 걱정 없는 천상의 삶을 버리고 피리소리의 환상을 쫓아 비참한 지상의 삶을 택한 뒤 피리동이의 사랑을 받고자 몸부림친다. 피리동이는 선녀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채 바로 곁에 있는 그 선녀를 그리워하며 인간이 된 아내를 박대한다. 인간의 모습으로 피리동이의 사랑을 얻어야할 절박한 목표가 선녀에겐 있는 것이다. 그런 선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삼신할미(천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역할)는 예서 고생하지 말고 다시 선녀로 돌아가 천상으로 가자고 하나 그 꿈과 사랑을 얻기 위해 선녀는 거절하고 고민한다. 선녀도 아니고 사랑 못 받는 아내인 나는 누구일까?....“

결국 선녀가 각고의 노력 끝에 피리동이의 사랑을 얻는다는 동화적인 드라마틱한 결말도 아니다. 피리동이는 아내와 싸우고 집을 떠나고 선녀는 그 사랑을 얻지 못해 병들고 늙어간다. 다시 삼신할미가 나타나 꿈이려니 다 잊고 천상으로 가자고 하나 선녀는 거절한다. 단지 선녀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글고 임금이 사냥을 나왔다가 선녀를 보고 왕비로 삼아 궁으로 데려가고 그녀를 찾아 떠돌던 피리동이가 찾아오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피리동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만 그 깨달음 자체가 바로 종말이 된다. 선녀와의 해피엔딩 쯤으로 끝날 즈음 임금의 명으로 쫓아온 군졸들에 의해 선녀가 대신 화살을 맞은 것이다. 질문이 질문을 낳고 진실을 찾아 헤매다가 깨닫는 순간 극이 끝나는 것이다.

 

윤정선의 희곡에서는 행위보다 존재가 더 중요하다. ‘나무꾼과 선녀이야기 설화 같은 단순함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하겠다. 선녀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다는 둘의 만남이 아무런 결실 없이 끝나지만 그 속에서 울리는 선녀의 애타는 물음과 피리동이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고뇌와 갈등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은 끝까지 읽고 나면 여운이 남고 묵직한 감동이 다가온다.

 

 

 

 

 

 

 

작가의 글

현실의 모든 속박과 지상의 삶의 모든 저주가 풀리는 곳, 옛이야기의 공간은 영원히 모든 낭만적 영혼의 안식처다. 인간의 원천적 문제들에 가장 천진한 방법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인간과 절대의 무한 세계 사이에 빚어지는 모순적 진실을 다루어 보고자 한 이 작품이 어린 날의 미소를 깔고 전개되는 것은 그러므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영원히 아름다움에 굶주린 예술혼, 피리동이의 치명적인 사랑 앞에 선녀는 물질의 현상계 속에 구상화되어 자신을 형상화함으로써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어떤 이상의 욕망(?……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을 화육한다. 모든 꿈은 현실 속에 제 모습을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현상을 넘어 순수 미에로 가까이 가려는 예술혼의 부단한 욕구와 현상 속에 모습을 드러내려는 이상의 사랑……

그러나 물질적 삶은 어디에나 개입한다. 그 속에 부단히 굴절되는 둘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 여기에 유한한 존재들의 아픔이 있다. 그리고 <인간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의 복잡 미묘한 갈등도 생겨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가 전설적 환상의 부드러움으로 감싸이는 동시에 춤과 노래의 마력으로 활력을 얻기 바란다. 소재의 편안함과 더불어 춤극, 그리고 노래극으로서 총체 예술적 효과를 살려내는 공간이 되기를....

 

 

 

 

 

윤정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사범대학 불어과에 학사편입

수학하였다. 프랑스 몽뺄리에 3대학 수학(언어학학사. 문학박사),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대학 불문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시집 우리들의 숲, 장편소설 당신께, 역서로 징표, 상징, 신화』 『베를린 시선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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