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알렉산드르 밤필로프 '오리사냥'

clint 2016. 2. 6. 15:00

 

 

 

 

 

 

작품의 시대적 배경 : 60년대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해빙기)

흐루시초프 통치기(1953-1964)의 최대 사건이자 소련 및 세계 공산주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의 하나는 제20차 소련 공산당대회(1956)에서 스탈린의 범죄를 항목별로 폭로한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이었다.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은 소련공산당의 지도 원리와 구조에 대한 정당성은 그대로 인정하였으나, 스탈린이 행한 당원들에 대한 숙청과 개인숭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외에도 스탈린 제거를 요구한 레닌의 유서, 역사 날조, 히틀러 침공대비 실패, 소수민족의 강제이주, 유고슬라비아와의 외교단절 실책 등을 비난하였다.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한 세대 동안 우상이었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이 뿌리째 흔들렸다.(20차 당대회 이후로 소비에트의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를 ‘56년의 아이들’, ‘20차 당대회의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음=새로운 세대의 출현) 소련 내에서는 1956년 3월 스탈린의 고향인 그루지야에서의 반 흐루시초프 소요 이외에는 별다른 혼란은 없었으나 흐루시초프의 인기는 특히 지식층들 간에 대단히 상승하였다. 흐루시초프의 정책의 불연속성은 그의 집권동안 계속되는데, 결국 당내 투쟁을 첨예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반 당 집단들은 스탈린 격하운동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 두려워 흐루시초프의 축출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은 중단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으며, 1958년의 권력 장악 이후 정책적 혼동으로 자신의 인기가 하락하자, 흐루시초프는 1961년 10월 제22차 당 대회에서 훨씬 더 과격한 스탈린 비난을 공개적으로 하였다. 스탈린의 개인숭배 뿐만 아니라 중공업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을 비판하였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은 스탈린 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구조분석 없이 이행되었고, 권력유지를 위한 하나의 투쟁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25년간에 걸친 스탈린의 대량학살과 대공포정치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 질로프는 잠에서 깨어나 친구들이 보낸 조화를 받는다. 전날 술자리에 자신들을 불러 놓고는 혼자 술에 취해 독설을 퍼부어 대고, ‘시체’ 처럼 뻗어버린 질로프에게 친구들이 짓궂은 장난을 친 것이다. 오직 오리사냥을 기다리는 것 외에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공허한 영혼의 질로프는 어느 날 한꺼번에 다가온 절망과 공허함의 시작이 어디부터였는지 과거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즐겁고 가볍게만 보이는 삶의 순간 순간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아내와의 이별 후 그 작은 갈등들은 질로프의 내부에서 커다란 고통으로 폭발하게 되고 결국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살을 시도 하기에 이른다.
알렉산드르 밤삘로프’ 의 희곡 ‘오리사냥(1967)’ 은 ‘상실의 시대’에 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리사냥’은 젊은 세대의 정신적 공허와 그 고통스러운 자의식의 문제를 전면에서 다룬 작품으로, 1970년대 ‘지하공연’을 통해 관객의 큰 호응을 얻으며 이른바 ‘포스트 밤삘로프 극작’을 이끌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어떠한 것에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나 진보적이고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세대, 즉 현실세계에서 그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가 부정되었던 세대를 보여 주며 그 세대가 살아가는 ‘질로프’가 파국으로 이를 수 밖에 없는 ‘공허의 병’을 앓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리사냥’ 은 주인공 ‘질로프’ 가 정신적 공허에서 비롯된 파국과 그 결과에 대한 힘겹고도 고통스러운 인식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요한 빗소리 속에 전화가 울린다. 잠에서 깬 질로프가 전화를 받지만 수화기 너머론 아무 소리가 없다.
또 다시 울리는 전화는 질로프의 죽음을 알린다. 살아있는 질로프가 전화를 받는 상황이라니.
질로프의 주변인물들이 차례로 나와 수군수군대며 그의 뒷담화를 나눈다. "난 그와 몇년을 같이 살았지만 사랑했는진 모르겠어", "그렇게 지독한 녀석은 차라리 죽는게 나아"
회전하는 무대사이로 시간이 흐른다. 커다란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뒤로 움직인다. 과거로 흘러간다.
'알렉산드로 밤삘로프'의 희곡이 원작인 오리사냥은 질로프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한다. 친구들을 술자리에 초대해놓고선 독한말로 상처를 준 뒤 술에 취해 뻗은 죗값이다. 아내와 헤어진 질로프의 상실감과 공허함이 친구들을 불러모은 술자리에서 폭발했던 것이다. 질로프의 공허함은 어디서부터 시작한걸까?
질로프는 오리사냥말고는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에겐 어떤 일도 대수롭지 않다. 아내를 두고 애인을 만든다거나, 회사에 제출할 서류를 엉터리로 꾸며낸다거나, 아내에게 거짓말을 한 뒤 연기를 한다거나 하는 행동들은 그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대수롭지 않았던 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되어 버린다. 그 사건은 아내의 이혼선언. 아내의 진심어린 대화요구 앞에서 대수롭지 않게 연기만 했던 질로프는 아내를 잃고난 뒤 정신적 공허함을 마주하게 된다.
연극은 돌이킬 수 있고, 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해와 갈등은 아무렇지 않게 미뤄두면 풀어내기가 막연해지는 순간들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며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일들이지만 그것들은 삶에 공허함을 던져준다.

 


이 작품에서 '오리사냥'은 작품의 제목임과 동시에 극을 이끌어가는 매개체다. 질로프 삶의 목적과도 다름없는 오리사냥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우리 삶의 소소한 일상들이다. 오리사냥을 뺀 질로프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어보이지만 그가 빠진 오리사냥은 아무 상관도 없다.
결국 질로프는 정신적 공허함을 '오리사냥'에 큰 의미를 두며 채우려 했지만 파국을 맞게 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며 고통스럽고 힘겨운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게 된다.
연극에 등장하는 소장이 가장 많이 하는 대사는 "내가 무슨 성인군자는 아니지만"이다. 작품에는 소장의 대사와 같은 맥락의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모두가 지금 닥치고 있는 상황에 많은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방어의 한 방법이다. 정신적 공허함을 방어하기 위해 공허함을 키우는 꼴이다. 그런 방어책들은 끝내 일련의 사건들이 되어 정신적 공허함을 폭발시키고 만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리는 제자리에 있는 까닭인지, 주변엔 변하는 게 많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가정을 가진사람들, 친구, 약혼녀등)의 체면에 침을 뱉어버리고 싶다는 질로프에게 친구는 이렇게 충고한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을 추악하게도 생각하지마"
질로프는 아내를 잃고 정신적 공허함의 무게에 묻혀 친구들앞에서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그 시작을 과거서부터 하나하나 곱씹어보던 질로프, 시간앞에 바로 선다. 과연 무얼 발견하게 된걸까?

 

 

알렉산드르 밤삘로프(1937-1972)

1937년 8월 19일 바이칼호의 주변 마을에서 초, 중, 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던 브랴뜨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알렉산드르라는 이름은 밤삘로프를 낳기 전에 아버지가 작가들과 대화하는 태몽을 꾸었기 때문에 위대한 작가가 되라는 의미로 푸슈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밤삘로프는 1960년 이르쿠츠크 대학 인문학부를 마친 뒤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면서 35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거의 이르쿠츠크에서 살았다. 그는 A. 싸닌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61년에 첫 산문집인「우연의 일치」를 출간했다. 그 후 단막극「창문이 있는 벌판 위의 집」을 비롯하여 장막극인「유월의 이별」(1965년), 「큰아들」(1967),「오리사냥」(1967),「천사와 함께 20분」(1970),「메뜨란빠쉬 때문에 생긴 일」(1971),「출림스크에서 보낸 지난 여름」(1972)을 발표했다. 청년 시절 밤삘로프는 고리끼 문학대학에서 공부하며 당시의 영향력 있는 작가인 로조프와 아르부조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작품은 이데올로기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생전에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이르쿠츠크 무대에서만 상연되었다. 밤삘로프는 바이칼호에서 친구들과 낚시를 하다가 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자신은 친구 대신 물에 빠져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는데 천재적인 희곡작가로서 그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그의 단편들은 유머의 옷을 입고 전혀 유머스럽지 않은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 담긴 진실은 허위와 위트와 충돌한다. 소설속의 희극성은 바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이렇듯 인간 내면의 단순성을 포착하는 밤삘로프의 시선은 풍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잔인하면서도 예리하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현대인들의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삶과 영혼의 이중성이 투명하게 비치는 시 같은 연애소설의 정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