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225

움베르토 에코 '바우돌리노'

에코는 『바우돌리노』를 악한(惡漢) 소설이라 칭했다. 바우돌리노가 천하에 다시없는 거짓말쟁이,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바우돌리노가 비잔틴의 역사가 니케타스에게 자기의 모험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소설 역시 니케타스로 대표되는 진실과 바우돌리노의 거짓말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작품은 프리드리히리는 역사적인 인물 뒤에 바우돌리노 같이, 역사에 남지 않은 인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토대로 전개된다. 프리드리히의 이야기는 증명된 역사이지만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는 진짜일 수도 있고 허구일 수도 있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와 허구 사이를 왕래한다. 바우돌리노는 프리드리히의 양자가 되어 그의 곁에서 전투를 같이 하고 요한 사제의 편지를 가짜로 만들어 프리드리히가 사제의 왕국을 찾아 떠나게 한다...

좋아하는 소설 2023.02.12

움베르토 에코 '프라하의 묘지'

이 작품은 거짓의 메커니즘, 뻔한 거짓말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하며 권력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비판을 가해 온 에코가 그러한 자신의 연구와 실천을 집약한 소설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모함하는 것도, 문서를 날조하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시모니니라는 인물을 내세워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생산되고 퍼져 나가는지 그렸다. 에코의 표현처럼 《세계 문학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이자 음모의 심장인 주인공이 음모를 정당화하는 서사 방식을 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입을 빌려 갖가지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노출함으로써 출간 이후 전 유럽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 출간 직후 65만..

좋아하는 소설 2023.02.11

기욤 뮈소 '인생은 소설이다'

『인생은 소설이다』의 주인공은 작가이다. 『아가씨와 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에 이어 연속 세 번째로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세 편의 소설 모두 공통적으로 작가란 어떤 존재이고, 소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가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소설들이 미스터리와 판타지를 결합시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로맹 오조르스키는 19권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로 그가 집필한 모든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기욤 뮈소와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부모가 일찍 이혼해 어머니와 살았고, 현재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점도 유사하다. 물론 소설은 필연적으로 작가의 체험적 요소들이 녹아들 수밖에 없지만 일기나 회고..

좋아하는 소설 2023.02.10

기욤 뮈소 '내일'

《내일》은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고 있는 스릴러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만큼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플롯이 탁월하다. 기욤 뮈소 특유의 감성코드를 살리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매력 또한 여전하다. 어린 천재 해커와 와인감정사, 심장병전문의, 하버드대 교수 등 인물의 면면과 직업 분포도 대단히 특징적이고 매력적이어서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기욤 뮈소의 2013년 작 《내일》은 작가의 성공적인 변신을 널리 알리는 작품인 동시에 무엇을 다루든 빼어난 재미와 감동을 극대화하는 작가의 재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내일》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네 살 반짜리 딸을 키우며 우울하게 살아가는 하버드대 철학교수 매튜 샤피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매튜는 어느 날 벼룩..

좋아하는 소설 2023.02.08

J.D.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이 소설은 1951년에 출판되어 오늘날까지 문제작으로 남아있으며,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는 십대의 불안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아있다. 이 책은 16살인 홀든 콜필드가 겪었던 경험을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홀든은 국어(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한 뒤 명문 사립 기숙학교인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다. 홀든은 그의 부모님께 퇴학통보가 담긴 편지가 부모님에게 전달될 때까지 걸리는 며칠 간을 자신의 집이 있는 뉴욕 시에서 보낼 계획으로 뉴욕 시로 떠나며, 이 때의 72시간, 3일의 경험이 책의 주요 줄거리를 이루는데 뉴욕에서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채 서서히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이자 샐린저를 현대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좋아하는 소설 2023.02.07

마이클 그루버 '바람과 그림자의 책'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한때 영국의 유명 연출가와 연극배우 280여명이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원작자가 셰익스피어가 아닐 것’으로 의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을 정도다. 세계적인 문호이면서 삶이 베일에 쌓여 있다는 점만으로도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된다. ‘바람과 그림자의 책’(마이클 그루버 지음·박미영 옮김)은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이 존재하고 그것이 발견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라는 가정을 토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인 제이크 미쉬킨은 17세기 사람인 브레이스거들의 편지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 어느 날,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영문학 교수이자 친구인 미키 하스의 소개라며, 벌스트로드라는 영국인 교수가 찾아와 17세기에 살았던 영국인 리처드 브레이스거들의 편..

좋아하는 소설 2023.02.06

정명섭 '바실라'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쿠쉬나메]에서 신라 이야기가 발견되었다. 그 안에는 ‘신라’를 뜻하는 ‘바실라’가 등장하고,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쿠쉬를 무찌르며, 신라 왕 태후르의 딸 프라랑 공주와 혼인하여 훗날 페르시아를 구하는 영웅 페리둔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를 모티브로 하여 소설 《바실라》가 탄생했다. 나라를 잃고 아랍인의 왕 쿠쉬를 피해 신라로 쫓겨 온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 삼국 통일 전쟁이 한참이었던 시기, 아비틴은 김유신의 둘째 아들이자 신라의 화랑 원술과 힘을 합해 삼국 통일을 이룬다. 여기에서는 실제 역사의 한 장면인 석문 전투, 나당 전쟁 등을 소설의 배경으로 삽입하여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창작을 적절히 섞어 재미를 더했다. 한편 사랑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

좋아하는 소설 2023.02.05

브라이언 무라레스쿠 '불멸의 열쇠'

오래전 한 비밀이 있었다. 이 비밀은 우리 삶의 원천이며, 문명의 출발점이다. 한 번 경험하면 평생 잊을 수 없고, 단 한 차례로도 삶의 기본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깨우치게 해 지난날의 고통,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가져가고 현재를 기쁘게 누리도록 한다. 석기 시대부터 수천 년을 이어지며 플라톤, 소포클레스, 키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고대 그리스 로마의 수많은 구도자가 사로잡힌 이 비밀은 4세기 로마에서 자취를 감췄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종교사가이자 『세계의 종교』(The World’s Religions)의 작가 휴스턴 스미스는 이를 역사상 “가장 잘 지켜진 비밀”이라 말했다. 이 책의 작가 브라이언 무라레스쿠는 대학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고전 언어를 전공하고 월스..

좋아하는 소설 2023.02.04

F. 뒤렌마트 '약속'

뒤렌마트는 그의 추리소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약속」에서는 객관적인 결과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본디 이 소설의 전신(前身)은 뒤렌마트가 영화 연출가 라자르 벡슬러의 요청을 받아 영화 시나리오로 쓴 작품이다. 이 영화는 ‘그 사건은 화창한 대낮에 벌어졌다.’로 1958년 미성년자들에게 저질러지는 성범죄를 경고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뒤렌마트는 같은 해 이 대본을 대폭 개작해 소설로 발표하면서 이를 자신의 창작에 있어서 유미적 태도와 세계판을 개진하는 기회로 삼았다. 창작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이 소설에서 틀을 이루는 1인칭 화자인 추리소설 작가와 전직 경찰서장 H박사의 토론을 통해 펼쳐진다. 이어서 틀 속의 이야기로 소설 줄거리가 삽입된다. 따라서 이 소설의 골격을 스케치하면 다음과 같은 모습..

좋아하는 소설 2023.02.03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판사와 형리'

탐정소설의 기본 요소 및 구조는 세부적인 변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어도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러한 장르의 소설에서는 수수께끼로 대두되는 범죄가 사건의 발단을 이룬다. 이 범죄는 흔히 살인이다. 이 같은 극단적 범죄를 내거는 것으로 앞으로 전개할 수사과정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둘째,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는 보통 범행 동기가 설명되며, 따라서 범행 이전에 있었던 역사가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셋째, 사건의 합리적 해결이다. 물론 해결을 도맡은 주인공은 유능한 수사관이다. 이어 범행자들이 공공 경찰에 인도되는 것으로 사건은 막이 내린다. 뒤렌마트의 소설들은 이 같은 전통적 탐정소설의 도식과 상당 부분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사와 형리〉 발..

좋아하는 소설 2023.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