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이르기를 자업자득이라 하였다.
이제부터 기기묘묘한 이야기를 하나 할 터이니 잘 들어보라.
현해탄 건너 일본에 성은 분(糞)이요 이름은 삼촌대(三寸待)란 놈이 살고
있었는데 현지 발음으론 ‘좆도맞대’라고 하며 아주 욕심이 많은 놈이었다.
삼촌대의 에미 아까끼고 또끼고 여사 이르되 삼촌대의 애비는 8·15 때,
할애비는 3·1운동 때, 고조는 동학혁명 때, 비조는 임진왜란 때
모두 조선에서 똥 때문에 죽었다.
이때 나라에서 똥 싸는 것을 금지하는 령을 내리니, 좆도맞대가 끙 소리만 내어도
에미 아까끼고 여사가 미개인이라 욕을 퍼부었다.
좆도맞대는 똥을 참으며 조센징의 ‘조’자만 나와도 지랄을 하였다.
삼촌대가 깃발을 앞세우고 기생포식 염가봉사 한국관광에 나선다.
좆도맞대가 서울을 휘이 둘러보고 요정으로 간다.
삼촌대가 일본도 걸려 있는 요정에서 기모노 입은 기생들과 논다.
가라오케에 맞춰 투자 합병 합작 간섭 주접을 떨면서 논다.
삼촌대가 기생관광 풀코스 하이라이트에서 난장판으로 놀다가
똥구멍을 쥐어잡고 이순신 동상으로 간다.
좆도맞대가 이순신 동상 위에서 그동안 참았던 똥을 싸지른다.
죽은 조상의 이름을 부르며 똥을 누자 군국주의 똥, 순양함 똥, 온갖 똥이
다 나오고 이를 본 친일파들이 향기롭다 말한다.
삼촌대가 눈 똥을 공돌이 공순이 학삐리 농사꾼들이 치운다.
날아가던 조선 참새가 삼촌대에게 똥을 싸고 삼촌대는 그 똥에 미끄러져
동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렇게 망한 자가 어디 분삼촌대 한 놈뿐이랴.
어딘가에 풀 수 없는 똥의 비밀이 있을지도…….
임진택의 창작 판소리 <똥바다>는 대대로 조선 땅에서 똥 때문에
죽은 어느 일본인 가문의 자손이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잔뜩 먹기만 하고
똥을 참았다가 관광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입국, 실컷 여자들과 놀아난 뒤
드디어 이순신 동상으로 기어올라가 참았던 똥을 내싸지르다 그만
새똥을 밟고 미끄러져 자기가 싸놓은 똥바다에 떨어져 죽는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창작 판소리인 이 작품은 1985년 임진택에 의해 만들어져
전국을 순회하는 한편, 베를린 제3세계 문화예술회 참가,
미국 12개 도시 순회(1987) 등 세계를 돌며 공연됐다.
원작은 김지하의 담시 <분씨물어>를 극본화 했고
이 작품은 일본의 새로운 정치·경제·군사적 침략을 신랄하게
풍자·비판하는 작품으로, 표현이 매우 직설적이고 때로는 초현실적이지만,
전통 판소리의 내적 율격과 표현법을 성공적으로 현대에 적용한 작품이다.
원작에는 장단이나 악조의 표시가 없으나 임진택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판소리의 어법과 장단에 맞게 다듬어서 작곡을 하였다.
특히 작사와 작곡의 분업을 통해 창작 판소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된다. 원작과 판소리 모두 1970년대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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