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요섭 '하륵 이야기'

clint 2024. 12. 8. 06:42

 

 

옛날 아주 먼 옛날,
아주 깊은 오두막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이들은 아주 외로웠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일 밤 뒤뜰에 있는 나무님에게
자식을 갖게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님은 커다란 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성껏 알을 품었습니다.
그러자 알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하륵이었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하루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말을 가르치고 

재미있는 옛날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륵은 이슬만 먹어야했어요.
나무님이 말씀하시길 그 일에서 나온 아이는 이슬만 먹어야지
다른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거든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온 산을 돌아다니며 신선한 이슬을 따서 하륵에게 주었습니다.
하륵은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륵은 쌀밥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매일같이 이슬만먹는 것이 싫증이 났던 거예요! 
하지만 할머니는 절대로 쌀밥을 못 먹게 했어요. 
하륵은 이슬만 먹어야하는 자신이 너무 슬퍼서 울고 있는데,
그것을 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쌀밥을 먹이기로 합니다.
쌀밥을 먹은 하륵은 기분이 참 좋았어요.
그날밤 하륵은 아주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륵의 몸집이 갑자가 커져버렸어요.
그리고 하륵은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집안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밥그릇도 먹고, 식탁도 먹고, 이불도 먹고, 지붕도 먹고,
모든 것을 다 먹어치웠지만 배고픔은 멈추질 않았어요.
하륵은 집을 떠나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하륵은 세상의 모든 물건들을 다 먹었습니다.
저 하늘의 해도 먹고 달도 먹었지만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배고파서 울고 있는 하륵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하륵에게 먹히기로 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먹은 하륵은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륵은 외로움에 울다 쓰러져 누운 그의 몸은 산맥이 되고 대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물은 강물이 되어 흐르고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하륵의 뱃속에는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해도, 달도, 오두막집도, 나무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오두막집에서 예전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릴 때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하륵을 생각합니다.
이 녀석이 또 외로워서 저렇게 우는구나 하면서 말이죠.

 



신화를 소재로 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완성된 연출이 돋보이는 하륵이야기는
 2002년 서울아동 청소년 축제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배우들은 때로는 악사로, 진행자로, 인형 조종자로 여러 역을 소화하면서 
장면장면을 정성껏 이끌어 간다.
하륵을 안고 기뻐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다운 모습, 
밥을 먹게되면서 점점 배가 불러 덩치가 커지는 하륵, 
온 집안에 있는 것을 먹어치우고 이내 할머니 할아버지를 잡아먹는 장면은 
어린 꼬마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며, 그런 하륵의 배고픔을 채워주기 위해 
하륵에게 먹혀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때면 가슴에서 뭔가 뭉클해진다.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가족의 사랑이야기를 짜임새있고 아름답게 구성한 
"하륵이야기"는 어른과 아이 모두가 따뜻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연극이다. 

 



<하루이야기>에는 유쾌하고 천방지축인 악사들이 나온다.
악사들은 여러 가지 악기들로 무장을 하고 있다.
그 악기들은 버려진 것들을 재활용해서 만든 것이다.
식수통, 맥주병, 놋쇠그릇, 양은냄비, 스프레이통, 음료수캔, 과자통, 
대나무, 페인트통 등등....
이 악기들을 때리고, 흔들고, 비비고, 불고, 긁고, 떨어뜨리고 하는 
갖가지 행동들이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소리들과 원래 "악기"라 불리던 것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가락이 흘러나온다. 
이 가락을 타고 악사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니, 보여준다.
오래전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들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악사들이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은 우리의 전통 연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악사들은 가면을 사용하기도 하고 인형을 가지고 놀기도 하며, 
그림자극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옛날 시장통에서 벌어졌던 탈놀이나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형식을 빌어오기도 한다.
악사들은 꼭두각시놀음의 산받이 역할과 닮았고, 가면은 하회별신굿의 
가면과 비슷한 면이 있고, 하륵의 인형은 북청사자놀음의 사자를 떠올릴 수도 있다.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놀이터는 장터일 수도, 
마당일 수도, 사랑방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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