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하수민 ‘새들의 무덤’

clint 2024. 12. 8. 14:56

 

1막

2020년 새벽녘 폐허가 된 옛 집터.

오루는 바다 넘어 새섬을 바라보다 아장아장 걷는 새끼 새 한 마리를 만나게 되고,

홀린 듯 새끼 새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과거와 기억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1968년 세낙마을 공터

오루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수학과 외삼촌인 수필을 만난다.

수필은 아버지 수학에게 마을 사람들 목숨을 앗아간 악운이 깃든 돼지 목을

찌르라고 하지만, 수학은 한사코 거부한다.

1976년 세낙마을 선착장

종숙은 학생운동을 하다 도망 온 성규를 살리기 위해, 판수와 수필에게

새섬으로 배를 몰아달라고 조르지만, 판수와 수필은 산 사람은 새섬에

갈 수 없다며 완강하게 거절한다.

1980년 세낙마을 먼 바다 배 위

지주인 수필은 세낙마을을 항구로 만들고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제석 굿을 하고,

자신의 대를 이를 오루를 위한 씻김굿을 하는데,

머리 위에 올린 넋이 올라가지 않자 굿판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2막

1988년 서울 창신동

군대 제대 후 서울로 이주한 오루는 창신동에 정착한 판수,

귀녀와 한 집에 살며 허드렛일을 한다.

어느 날 오루는 판수에게 자신도 월급 받고 싶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지만,

판수는 날아가는 새는 총에 맞고 잠자는 사슴은 총에 맞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1997년 서울 창신동

오루와 배손의 봉제공장은 일감이 줄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은행원은 공장 압류를 진행하려 한다. 압류를 한 달만 미뤄달라고 애원하는

오루와 배손에게 은행원은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직원 태봉의 해고를 요구한다.

오루가 고민하는 사이, 은행 압류 절차는 강행되고 만삭인 배손의 진통을 한다.

2014년 경기도 안산 포장마차

이혼한 오루와 배손이 술을 마시고 있는 사이, 여고생이 된 딸 도손이 들어오고,

도손은 오루에게 천사의 날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2020년 해질녘

여전히 오루 곁에 있는 새끼 새. 오루는 이제 집에 가라며 새를 날려주고,

새는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루는

새섬에서 날아오는 새들과 함께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본다.

 

 

 

 

새들의 무덤은 딸을 잃은 아버지 오루가 새를 따라 여행하게 되면서, 한국 현대사에서 파멸되어가는 아버지에 대한 연대기와 이제는 가장 강렬하고 소중한 것이 되어버린 딸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희망을 꿈꾼다. 딸을 잃은 아버지 오루가 새끼 새를 만나 새섬을 이동하면서 자신이 잊고 지내던 과거와 애틋한 기억을 여행하는 이야기로, 1막에서는 오루의 과거를 통해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60-80년대의 진도 어촌마을의 전경을 그려내고,

2막에서는 1988-2014년의 서울 근교를 배경 삼아 이제는 가슴속에만 존재하는 오루의 딸에 대한 기억을 들여다본다작품은 오루의 과거와 기억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되새기면서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딛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글 - 하수민

날씨가 흐린 날, 집안에 있기가 답답해 밖으로 나섰는데 그때 문득 죽은 사람들을 품고 있는 커다란 새를 닮은 섬이 떠올랐습니다.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몇 해 전 목격한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새들의 무덤 새파란 죽음을 금새 삶의 에너지로 포옹하는 그 힘에 휘둘려 신명으로 솟구치는 진도 씻김굿 서문에 있는 황루시 선생님의 말처럼, 연극만이 가진 허구의 방식으로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지를 고민하며 써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희망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로 마무리되기를 바랬습니다. 그 희망은 과거로 돌아가는 희망 이 아닌,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는, 빛이 되는 희망의 바람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희망이 늘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새들의 무덤」은 반세기에 이르는 우리의 과거가 한 인물의 기억을 통해 신기루처럼 무대 위에 나타났다 사라져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과거를 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역사와 기억이다. 둘은 다른 개념으로 정의되어 왔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라는 선형적 시간축을 전제로 성립하지만 기억은 현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맥락을 형성한다. 역사는 과거의 재현이면서 동시에 현재와의 끝없는 대화로 규정된다. 반면 기억은 어떤 무언가를 떠올리거나 잊지 말아야 할 이유와 가치를 우선시한다. 대부분의 역사가 실증과 고증을 토대로 서술되어 왔다면 기억은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소환되거나 이야기되어왔다. 역사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리라면 기억은 주관적이며 가변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역사와 기억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관념은 최근 도전받기 시작했다. ‘기록’될 수 없거나 ‘기록’되지 않은 ‘기억’의 힘에 대한 놀라운 발견 덕분이다. 세계사적 사건들을 온몸으로 경과해온 사람들의 기억이 때론 그 어떤 자료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말해주거나 증명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하게 과학적 근거에 힘입은 변화들이기도 하다. 역사가 영웅서사라면 기억은 민중과 개인의 서사라고, 이렇게 단정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어쨌든 최근 우리의 관심은 영웅서사에서 민중과 개인의 서사로 옮겨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극단 즉각반응의 ‘현대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기획된 「새들의 무덤」은 역사가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기억의 주체는 ‘오루’라는 한 개인이다. 사고로 딸을 잃은 오루가 고향의 바닷가 새섬을 찾아가게 되고, 제대로 날지 못하는 어린 새에 이끌려 느닷없이 과거의 기억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우리의 과거는 오루의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쳐 신화적 으로, 때로는 제의적 형식으로 소환된다. 1막은 진도의 새섬을 배경으로 어린 오루의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막은 창신동과 안산을 배경으로 성년이 된 오루와 그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1막의 어린 오루가 의지와 무관하게 수동적으로 기억에 이끌려 다니는 존재라면 성년이 된 2막의 오루는 의지적으로 기억 속의 자신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이든 성년이 되었든 느닷없이 찾아온 오루의 기억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을 ‘살았던’ 오루의 개인서사는 우리의 서사로 확장된다. 작품을 지배하는 이미지는 새와 새섬이다. 새섬은 죽은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금기의 섬이다. 금기는 지키려는 자들과 깨려는 자들의 갈등으로 오히려 지속되고 강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금기는 결코 조우할 수 없는 ‘집합적 허구’ 내지는 상징적 구조다. 사회적 갈등과 위협, 불안은 그것을 통해 봉합되고 사회적 질서는 다시금 유지된다. 금기를 위반하거나 들여다본다는 행위는 사회의 실체적 모순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깨는 행위와도 같다. 물론 그런 행위에는 고통과 충격이 수반된다. 새섬에 가고자 했던 극중 오루의 고통처럼. 오루가 발견하는 것은 ‘불균등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모순이라는 구조적 문제다. 그런 점에서 오루의 딸 도손의 죽음은 개인적 불행과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다. 기억으로 소환된 50대 중반 오루의 일대기는 곧 역사가 우리의 집단적 기억으로 옮아오는 순간에 다름 아니다. 극중 마지막 장면처럼 날개를 다친 어린 새가 다시 날아오르고,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성도기, 길말리’들이 훨훨 날아오를 날이 언제쯤일까? (드라마터그 이성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