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롤후 호크후트 '신의 대리인'

clint 2024. 9. 19. 07:12

 

 

 

1942년 8월 베를린 교황청 대사관에 독일친위대의 장교 겔슈타인 중위가 찾아온다.

그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태인의 대량학살의 처참한 정보를

대사에게 전하며 교황의 항의만이 히틀러의 이러한  테러행위를 중지시킬 수 있다고

호소한다. 마침 이 자리에 있었던 젊은 로마 귀족 출신이자 교황의 재정담당고문으로

교황과는 가장 가까운 민간인인 훤타나 백작의 아들인 리칼도 신부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튿날  리칼도 신부는 겔슈타인 중위를 찾아가 교황이 틀림없이 히틀러에게

항의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로마로 돌아온다. 리칼도 신부는 교황이 히틀러와의

정교(政敎) 협정올 파기하고 유태인 학살에 대한 공식적인 항의를 하도록 노력한디.

그러나 당시의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청의 정치적 중립과 기독교적 유럽의 안전을 위해

끝내 유태인 학살에 대해서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다.

마침내 영원의 도시 로마에서도 유태인들이 짐승처럼 끌려서 열차에 실려간다.

다만 유태인의 피가 그들의 몸속에 흐른다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죽어간다.

절망한 리칼도 신부는 스스로 유태인의 노란 성장(별)을 가슴에 달고 그들의 대열에 끼어

유태인으로서의 추방을 감수하려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대량학살 공장인인 아우슈비츠에서

리칼도 신부 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악마인 군의관 소령 닥터와 대결하게 된다.

머지 않아 나치의 총에 쓰러져야 할 리칼도 신부 를 구하기 위해 겔슈타인 중위가

상부의 명령올 가장해서 이곳에 나타난다. 그러나 리칼도 신부는 이미 순교 결심으로

끝내 겔슈타인의 도움을 거절한다. 머지않아 그의 동포와 같이 같은 죽임을 당하여야 할

유태인 야곱슨을 자기 대신 구하려 하지만 교활한 닥터에게 적발된다.

그리하여 바극의 종말은 마침내 다가온다.

 

이밖에 그 당시의 책임자들인 아이히만, 퓨리체 소령, 잘져 중위, 국무담당 구기경 등과

닥터의 손에 농락되는 헬가, 아우스비츠로 끝려가는 유태인의 젊은 학자 부부,

그리고 마침내 미치고 마는 유태인 처녀 칼로타 등 40여 명이 등장하고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펼쳐지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비극이 재현되는 것이다.

 

 

극단 자유극장 초연시 (1966년)



1931년생인 작가 호크후트는 서점을 경영하고 있는 독일의 신진작가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서가 아니라 깊은 역사 연구와 문헌을 바탕으로 하여 쓴 작품이다. 작중인물들 중에서 교황「비오」12세, 겔슈타인, 아이히만 등은 실제인물들이다. 특히 겔슈타인은 신교파의 교도로서 나치의 不義에 항거하기 위해 스스로 히틀러 친위대에 투신해 유태인 학살을 내부에서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 인물이다. 또한 작가는 주인공인 리칼도 신부의 희생 정신을 리히텐벨그 주교와 콜베 신부에서 찾고 있다.  이 두 작중 인물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는 것은 닥터이다. 그는 나치의 전형적인 인물로서 히틀러와 더불어 유태인 학살의 주동이 되었던 괴벨스의 화신이다. 나치 독일에 있어서의 유태인 탄압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많지만 이 작품 만큼 전후의 세계 문단과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작품은 없다. 1963년 봄, 서베를린에서 세계적인 연출가 엘빈 피카스톨에 의하여 초연을 갖게 되자 이 작품은 곧 단행본으로 출간 되어 불과 1개월내에 1만부가 독자의 손으로 넘어 갔다. 전후독문학사상에서 초유의 일이라는데에 더욱 큰 의의가 있다. <신의 代理人>에서 작가 호크후트는 참된 기독교정신을 구한다. 그는 그 무서운 뷸의가 유럽을 휩쓸고 있었을 때 신의 代理人으로서의 교황이 왜 외교적인 수단이나 혹은 공개 담화를 통해이 비인도적인 나치의 행위에 대항하지 않았는가를 절규한다. 물론 교황의 그러한 반항이 설혹 있었다 하더라도 과연 히틀러 정책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교황의 담화만으로도 죄없이 학살된 수백만 유대인을 위하여 도의적인 도움은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직까지 나치 치하에서의 이 문제를 교회와 교황에게 결부시켜 그 책임과의 소재를 밝혀 보려고 한 작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호크후트는 주인공 리칼도 신부로 하여금 교황을 "범인"이라고까지 부르게 한다. 그 당시 독일에서뿐 아니라 바티칸 궁전 문앞에서까지 일어났던 그 무서운 사건을 알고도 교황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작가는 깊은 회의를 품고 있다. 그리고는 "교황이 침묵을 지킨 사실"은 히틀러 정책에 동조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보고 있다. 

 



<신의 대리인>은 서방세계의 가장 높은 교회의 권위를 지닌 교황이 유태인 박해와 체포에 대해서 단 한번도 진지하게 그것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나치의 범죄에 공범자 내지는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제를 내포하고 있다. “교황 비오 12세라는 인물이 문제가 되고 있고, 그의 도덕적 공동죄 내지는 나치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이행된 유태인 학살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이 작품의 주제는 유태인 박해가 아니라 카톨릭 교회의 수장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물론 교황에 대한 비난은 하나의 예로서 “고소는 모든 개인, 즉 인간적인 의무를 행하지 않은 자에 대한 외침이며'' 다른 모든 침묵의 동조자들에게 가해지는 비난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 격론의 대상이 되었던 내용은 바티칸이 제3제국 시대때 유태인 박해와 학살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교황은 공개적인 항의를 통해서 유태인의 삶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교황은 정치적 이유에서 그러한 항의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고소가 제기된다. 다시 말하면 3막까지 에서 이 작품은 이에 대해서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사료와 반박들을 싣고 있는데,

1) 교회는 유태인 학살을 막아내기에 충분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2) 바티칸은 1942년 또는 1943년에 이미 집단수용소의 참상에 대해서 보고 받았다는 것,

3) 바티칸은 히틀러를 유럽에 퍼져가는 공산주의를 막는 버팀목으로 간주했다는 것,

4) 바티칸은 교회의 정치적 역할을 그 도덕적 의무보다도 더 중요하게 간주했다는 점에서

작가 호흐후트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이 작품에 대한 논쟁들은 바티칸이 과연 도덕적 외무로서 히틀러 정권의 유태인 박해에 대해서 항의를 실제로 표시했었는가? 항의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또는 어떤 이유에서 교황은 침묵했는가? 비오 12세는 호크후트에 의해서 진실에 가깝게 묘사되었는가?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에서 분명한 결론은 나올 수가 없었고, 호크후트가 수집하고 제시한 상세한 증거자료는 원칙적으로 증명될 수도 없고 반박될 수도 없는 그런 역사적 자료였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의도는 과거 역사의 올바른 이해와 극복을 위한 문학의 사회적 기여였던 것이었다. 

 



역사적 사건 묘사에 있어서 호크후트는 각 인물들의 양심적 갈등과 그들의 도덕적 결정의 결과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상주의자와 실용주의자의 갈등 전형이 호크후트 드라마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데 <신의 대리인>에서는 이 전형이 작품 끝까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용주의자 편에는 제1막의 교황대사, 제2막에서는 추기경 그리고 제4막에서는 특히 교황이 그 편에 서있다. 호크후트의 교황에 대한 묘사의 센세이션하고 쇼킹한 관점은 바로 이 작품의 전반부에서 최고의 도덕적 권위를 지닌 인물을 마침내 현실적인 정치가로서 폭로한 점에 있으며 교황의 결정이 종교적, 도덕적 원칙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경제적, 정치적 고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점에 있다. 교황과는 반대로 겔슈타인과 리칼도는 도덕적 법칙의 대표자로 등장하고, 그들은 정치현실과 타협함이 없이 기독교 이상을 옹호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호크후트의 <신의 대리인>은 레싱의 드라마 <현자 나탄>을 오늘의 시각에 맞게 쓴 작품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작가 호크후트는 보수적이고 부분적으로 고전 비극이나 성격극처럼 전통적 드라마 형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신의 대리인>은 폐쇄 형식의 드라마로서 도덕적 양심의 자유와 책임을 특정한 개인이 지는 것으로 주제가 집중되어 있는데 호호후트는 역사의 결정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 역사적 맥락의 연관성을 기록 자료에 의거해서 작품화한 것이었다. 게다가 “갈등과 과국 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고전적 극 구성, 대칭적 장면 연결과 환상적 효과를 야기하는 줄거리 전개와 대화 전개는 환상극의 고전적 극작술을 연상시킨다. 특히 많은 비평가들은 제5막에서 아류문학적 효과들 (예를 들면 헬가와 절대적 악의 상징인 의사 사이의 성관계), 흑백논리 (예를 돌면, 의사와 리칼도라는 허구적 인물을 통한 악과 선의 대비), 제4막의 감상적 효과들(이태리계 유태인의 로마 교황청 앞에서의 체포)의 혼란스러운 혼합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은밀한 연출자로서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호모사피엔스 연구가인 의사이며, 그는 아우슈비츠를 호모사피엔스 연구를 위한 실험실로 삼고 있다: 작가 호크후트는 이 의사라는 인물을 '절대적 악의 화신'으로 만들어내었으며 그럼으로써 리카르도와 변증법적 반대인물로 내세웠다. 허무주의자이자 탈도덕주의자인 악의 화신 의사는 이상주의자이자 도덕주의자인 리카르도와 완전히 대립되는 인물인데, 제5막 2장에서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우는 그는 순교의 길을 택한 리카르도에게 계약을 맺자고 한다. 리카르도가 순교할 수 없도록 로마로 되돌려 보내는 대신, 히틀러 정권의 몰락을 아는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약제의는 두 사람의 극단적 대립의 절정인 것이다. 즉 의사는 리카르도의 마지막 도덕적 회생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철저한 악의 전형으로서 최고조에 달하여 있다. 여기서 의사와 리카르도는 악과 선을 대표하는 허구적 인물이며, 특히 리카르도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구현하고 도덕률과 현실의 괴리에 주의를 기울이게끔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는 인물이다. 다시 말하면 실존인물 교황 바오12세의 경우처럼 현실에서는 도덕적 권위를 지닌 위대한 인간성의 상징인 교황을 통해서 인간의 고결함과 도덕성이 구현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허구 인물로 그 이상이 구현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호흐후트는 허구적 인물 리카르도를 통해서 인간은 책임질 줄 아는 행동을 의무로 삼아야 한다는 작가의 인식을 투사하고, 인간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호크후트의 작품들은 본질적 의미에서 강한 논쟁과 정치적 경향을 지닌 도덕극이다. 그 시점은 항상 현재이며, 그럼으로써 우리 시대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책임지는 개인에 대한 명제의 유효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호크후트 Rolf Hochh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