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속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다.
반 바지의 이야기는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벌어진다.
서울 한복판 종로. 이곳에서 여성이 모든 관직을 장악하는 혁명이
일어나고 모든 사회 구조가 여성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예술원 회원이자 언론인인 주인공 맹호돈은 보수 우파 신문
논설위원이며 가부장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인물. 그는 자신의 하녀를
농락하여 임신시켰다는 이유로 집에서 고문기둥에 묶여 처벌 받고 있다.
그의 아내 권세라는 자유여성협의회란 조직 일원으로 그 힘을 빌어
남편을 묶어놓고 정신 개조를 시키려고 한다.
재판을 몇 시간 앞두고 맹호돈에게 친구 변호사 여필종이 찾아온다.
그는 사회와 권력층이 변할 때마다 항상 그 권력에 아부해 출세한 인물.
여성이 권력을 장악한 이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어 여필종은 거세도
마다하지 않고 최고의 대접을 받는 변호사 자리에 있다.
그는 맹호돈의 하녀 강간 건을 변호하려 하지만 맹호돈은 이를 거부한다.
재판이 시작되고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맹호돈의 오랜 하인이자 역시 그집 가정부인 방정자의 남편인 피수동은
재판관들을 각하라고 부르며 본능적인 생존의식으로 모호한 증언을 하고
증언 도중 여자 욕실에 구멍을 뚫고 훔쳐보던 사실을 발각당한다.
방정자의 증언으로 하녀가 낳은 아이는 검둥이임이 밝혀져
맹호돈은 하녀를 임신 시킨 죄는 벗어나지만 피고용인을 간음한 혐의는
여전히 남아있다. 재판부는 맹호돈의 심성을 알아보기 위해 가족들의
증언을 듣기 시작한다.
횡설수설하며 재판과는 관계없는 딴 이야기를 늘어놓아 사위 편을
들어주는 장모,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까지
들먹이는 아들 동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외워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 하지만 못외워 엉뚱한 답으로 웃기는 그의 딸 초롱 등,
여러 인물이 재판을 일대 소동으로 몰고 간다. 그의 아내 권세라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자 남편을 근친상간과 변태성욕 등
인물로 몰아붙이지만 재판관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한다.
변호사는 변호를 통해 맹호돈을 성적으로 무능한 지식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맹호돈은 이러한 자신에 대한 변호에 반박하고,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려한다.
결국 맹호돈은 자신의 항변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집의 기둥에 묶인다.
이때 새 하녀 조숙자가 나타나 그를 풀어주고, 두 사람과 피수동은
한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도망간다. 피수동 역시 벽에 뚫은 구멍에
전전긍긍하다가 함께 도망치기로 한 것. 이들은 남성도 자유가 있는
일본으로 밀항하려 한다. 이들이 가는 곳은 진정 새 세계일까.
1978년, 파리의 아틀리에 극장에서 초연된 「반바지」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여성해방 운동과 남성 권위의 실추를 풍자, 회화한 작품이다. 핍박과 소외의 계층이었던 여성들이 혁명에 의해 권력을 장악, 모권제를 성립하여 남성우월주의를 탄압한다는 한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여,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남성들이 어떻게 대처해나가는가를 소극적인 터치로 그려내었다. 이 극은 전통적인 남성주의자인 주인공이 하녀를 임신시켰다는 이유로 고문 기둥에 묶여 처벌받고 있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주인공은 다수 비열한 면이 있기는 하나, 남성으로서, 나아가서는 인간으로서의 위엄성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호감적인 인물이다. 이 작품은 상연 당시 소수의 몇몇 비평가에 의해 내용과 극적 표현이 비속하여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문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반바지」 또한 아누이의 거의 모든 다른 작품들처럼, 오랜 기간 관객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관객의 교화에 목적이 있는 문제극, 도덕극을 철저히 거부했던 아누이에게 있어서 극작가의 최대 목표이며 영광은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제공하여, 그들을 잠시나마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극관은 「반바지」의 경우에도 명백히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아누이가 문학인이기보다는 연극인이기를 염원했고, 또한 그것을 충실하게 실천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 번안 작품은 이 작품을 번역한 오세곤이 직접 번안한 것으로 원작이 가지고 있는 프랑스 문화및 역사 등 관객이 쉽게 이해 못하는 부분을 한국적으로 바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으며 원작의 긴 공연시간도 단축할 수 있게 했다.
현대 프랑스 연극에 있어서 전통적 극작법의 대표적 작가인 장 아누이는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서 극작가로서의 그 지명도가 상당히 높은 반면, 우리나라의 문학 및 연극 애호가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희곡 작가이다. 1910년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양복재단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스위스의 뮐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누이의 삶은 온갖 연극적인 것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꼭도, 지로두, 까뮈와 같은 작가들이 희곡작품을 쓰면서 동시에 시, 소설, 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아누이는 수십 년의 작가생활 동안 오직 '연극'이라는 장르 만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철저한 외곬 연극인이었다. 가난을 이유로, 법과 공부를 포기하고 광고회사에 다니던 19세의 아누이는 우연한 기회에 당대의 유명한 배우이며 연출가인 루이 주베의 비서로 취직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가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누이가 특히 영향을 많이 받은 희곡 작가는 장지로두였는데, 1928년 샹젤리제 극장에서 상연된 「지그프리드」는 젊은 아누이에게 연극에서도 '시적인 미'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하나의 충격적 계시였다. 이를 계기로 아누이는 사실주의 기법을 탈피하고 극언어나 무대장식과 같은 극적 표현방법에 중점을 두는 연극을 지향하게 된다. 「흰 담비」(1931)로부터 「배꼽」(1981)에 이르는 50년간의 작가생 활동안 아누이는 40여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1948년에 쓰여진 「아르델」을 중심으로 크게 제1기와 제2기로 나뉘어진다. 제1 기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20세를 전후한 젊은이들로서,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절대적이고 완벽한 사랑을 최고 이상으로 추구하면서 기성세대의 현실타협적이고 순응적인 태도에 끊임없이 대항하는 인물들이다. 이상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냉혹한 현실과의 대립은 그들을 한없는 절망으로 몰고가며, 결국 현실도피의 방법으로 그들은 죽음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취한다. 제2기의 작품들은 자전적 요소가 매우 강한데,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재능있는 중년의 남자들 이다. 그들은 1기의 주인공들이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임으로써, 삶에 대해 현명히 대처해나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누이는 자신의 전 작품을 주제 및 극적 분위기에 따라 <검은 희곡집>, <장미빛 희곡집>, <반짝이는 희곡집>, <삐걱거리는 희곡집>, <무대 분장을 위한 희곡집>, <바로크 희곡집>, <비밀스러운 희곡집>, <익살스러운 희곡집> 등의 독특한 이름을 붙여 분류하였다. 아누이가 극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첫번째의 작품은 지로의 「지그프리드」로부터 그 주제를 빌어 기억상실자의 이야기를 다룬 「짐없는 여행자」(1937)이다. 1년 후 상연된 「야생녀」(1938)와 1944년 독일 점령하에 상연된 「안티고네」는 극작가로서의 아누이의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해준 대표적 성공작으로서 「짐 없는 여행자」와 더불어 모두 <검은 희곡집>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현대감각에 맞춰 개작한 작품으로 주인공 안티고네를 독일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의 상징으로 그려내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500회 상연이라는 당대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장미빛 희곡집>과 <반짝이는 희곡집>은 아누이의 작품 중 가장 시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 해피엔딩의 작품들로서, 그 대표작으로는 「도둑들의 무도회」(1938), 「레오까디아」(1940), 「꼴롱브」 (1951) 등을 꼽을 수 있다. <삐걱거리는 희곡집>에서는 부부간의 몰이해와 그로 인한 증오의 감정, 부모 자식간의 갈등과 같은 가정문제를 시니컬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아르델」(1948), 「경솔한 사랑」(1951), 「빵집 주인과 그의 마누라. 그리고 어린 조수」(1968) 등의 작품이 이에 수록되어 있다. <바로크 희곡집>은 극작가, 배우, 연출가 등 연극인 의 삶을 다룬 가장 자전적 요소가 짙은 작품들로서 「친애하는 앙뚜완 느」, 「부인을 깨우지 마세요」, 「오페라 단장」이 바로 그것이며, 특히 「친애하는 앙뚜완느」로는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밀스러운 희곡집>과 <익살스러운 희곡집>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가정,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비판. 풍자한 작품들인, 「시나리오」 (1976), 「반바지」(1978), 「배꼽」(1981) 등이 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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