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뒤렌마트 개작 '원형 파우스트'

clint 2024. 9. 15. 05:07

 

 

 

학문에 절망한 파우스트와 신에 의해 인간세상에 내던져진 메피스토펠레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을 받아 
파우스트는 학문에 대한 절망을 쾌락으로 보상받지만, 
그들의 거래는 오래가지 못한다. 
우연히 만난 파우스트와 순수한 처녀 마가레테는 서로 한눈에 반하지만, 
마가레테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자제하려 한다.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린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사주해 그녀를 얻지만 
그의 행동은 순진한 여인을 파멸로 이끌고 만다. 
마가레테와 발렌틴은 세상에 둘도 없는 오누이지만, 
마가레테에게 파우스트가 나타나면서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비극은 시작된다. 파우스트를 찾아간 대학생은 그만 파우스트인 척하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고 만다. 
순진한 학생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에 놀아나고 결국 그의 종이 된다......

이상이 뒤렌마트가 재창작한 파우스트의 줄거리다.

 

 

 

 

원래 전래되어 내려오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은 1480년에서 1540년 사이에 실제로 생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가 살았다는 15세기와 16세기 초는 유럽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로, 콜럼버스 (1451-1506)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지동설을 확립한다. 북쪽 독일에서는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고, 구텐베르크(1397-1468)가 인쇄술을 발명(1445)하여 도서들이 출판 보급된다.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넘어갈 때에는 농민 전쟁(1524-1525)과 신구 종교 갈등으로 인한 30년 전쟁이 발발한다. 불안한 시대에 점성술과 마술에 능하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프랑스에는 점성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가 등장하여 예언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파우스트 박사라는 요술쟁이가 출현하여 전설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점성술과 불노불사의 영약을 만드는 연금술사로, 고전학과 마술에 능통한 박사로 사칭하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사이비학자로 간주되면서 마술사이며 마귀의 일당이라는 풍설이 돌기도 한다. 그에 관한 실제적 전설과 가공적 전설이 1587년 슈피이스에 의해 민중 본으로 출판되어, 당시 인쇄술을 통해 널리 일반에 퍼지게 된다. 민중 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하늘과 땅의 모든 근원을 탐구하려한다. 그는 자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그는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니지만 결국 계약에 따라 사탄에게 영혼을 판 죄의 대가로 파멸하게 된다.
괴테는 1774년에 학자인 파우스트와 그레첸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여 학문과 사랑을 주제로 한 〈Urfaust 원형 파우스트〉를 썼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16, 17세기 당시의 상황에서 대학 강사로 출발하여 나이 30을 넘은 젊은 학자로 추정된다. 이 작품이 미완성 작품이라 해도 작품의 본질적인 특징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자아의 상승을 꾀하려는 파우스트의 동경이다. 인식의 한계와 사랑의 한계를 탈피하여 세계 속에서 자아를 크게 만들려다 죄를 짓게 되는 것이 파우스트이다.

 

 

 

뒤렌마트는 괴테가 대학생 시절에 쓴 〈원형 파우스트〉를 1589년의 민중본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로 보완하고 거기에 자신의 창작력을 보태어〈Goethes Urfaust 괴테의 원형 파우스트〉를 썼다. 뒤렌마트의 개작에서는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 대해 전지적 지식을 가지고 파우스트의 행위를 독자에게 비판적으로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제 1장에서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의 출생과 학업에 대해 청중에게 미리 소상히 설명한다. 즉 그가 “세계인, 의학박사, 천문가, 수학자로 자처하면서, 방랑하는 학생이나 부랑자나 점쟁이들과 교류하며, 성서는 뒤로 하고 신앙심이 없는 방탕생활을 했다”고 독자에게 미리 보고함으로써 줄거리에 대한 소외효과를 가져온다. 민중 본에서의 필자가 독자들에게 신자들에 대한 사탄의 영향력을 경고하고 치유하려는 좋은 의도에서 파우스트 박사에 관해 보고한다. 이에 반해 뒤렌마트의 개작에서는 그 내용은 유사하지만, 세계의 무질서와 혼동을 야기 시킨 악마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와 그의 신앙 없는 생활태도를 성서적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파우스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마법의 책을 들고 황홀해 하는 순간, 메피스토는 파우스트 몰래 666/0 이라는 숫자를 재빨리 칠판에 써놓는 점은 뒤렌마트의 새로운 착상이다. 잠시 후 파우스트는 이 공식을 발견하는 순간 기적을 본 듯 기뻐하며, 이것을 하나님이 썼을까? 자신이 혹 신인가? 자문하기도 한다. 메피스토가 써놓은 자연과학 공식에 홀리는 대학자의 모습은 독자가 보기에 어리석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메피스토가 해부대에서 일어나 파우스트와 악수하며 서로 서로 소개하는 모습은, 관객이 연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의식하게 한다. 개작에서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계약을 맺는 장면에서 쌍방이 서명을 하는데, '신학박사' 파우스트라는 신분과 '루시퍼의 부하' 메피스토라는 신분 대립이 이들의 상호 적대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루시퍼는 대천사였으나 그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대적하다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묘사는 괴테의 〈원형 파우스트〉에서, 약조한 것을 한두 줄 쓰고 한 방울 피로 서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메피스토의 태도와 대조적이다. 메피스토는 이와 같은 파우스트의 서명에 대해 “올바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한 가정의 대표자가 아니라, 악마와 같이 행동할 준비가 된 것이다. 파우스트는 지옥과 천국을 알고자 욕심을 내고, 달에 대해 그리고 가장 고귀한 나라와 지상의 왕국들에 대해 알려고 욕심을 냈다” 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메피스토가 극중에서의 자신의 역할과는 거리를 두고 사건을 서술하는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현상은 관객이 당혹감을 갖게 한다. 민중본의 경우, 악마를 따라 행동하는 자는 그의 유혹에 넘어갈 것이고 당연히 그 응보가 뒤따를 것이라고 필자가 독자들에게 경고하려는 의도에서, 파우스트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반면, 개작에서는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의 행동에 대해 비판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또한 개작에서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서 “파우스트는 매일 부유한 삶을 살았고, 하나님이나 지옥이나 악마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육체와 영혼이 함께 죽어 없어지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다." 라고 말함으로써, 악마인 자신이 변장하여 주인공에게 악영향을 끼치고는, 자신의 영향을 받은 파우스트의 잘못된 행실을 관객에게 비판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즉 동일한 등장인물이 해설자와 연기자로 역할이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드라마의 대사도 서사적인 부분과 드라마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대화와 해설의 서로 다른 요소가 섞일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과거에 일어난 일과 현재가 합성되어 그로테스크 현상이 일어난다.

 

 

 

개작의 경우 그레첸과 파우스트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마가레테는 “당신은 기독교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라고 말하며 빨래를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빨래를 바구니에 담아가지고는 퇴장하는 모습은, 그들 대화의 내용 진지성에 비추어 그로테스크 하게 작용한다. 괴테의 〈원형 파우스트〉에서 그들의 데이트 장면 이 정원에서 낭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성당〉 장면에서는 악령이 주교의 옷을 입고 변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습은 민중 본에서의 경우와 유사하다. 개작에서의 색다른 점은 주교로 변장한 악령이 마리아 상 뒤에 숨어서, 때로는 그녀의 얼굴에 손을 얹는 행위 등은, 그녀의 영혼을 죽이려는 악령의 정체성을 보다 생생하게 드러낸다.
마가레테의 고통이 극대화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가레테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영원을 주장하는 분이 하나님임을 확신하는 점은 괴테의 〈원형 파우스트〉에서와 같다. 그녀는 비록 법에 의해 처벌 받지만 자신의 고통에 메피스토가 관여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에게 속해 있음을 확신하며 하나님에게 자신을 의탁한다. 이 마지막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메피스토로 인한 그녀의 고통은, 그 동안의 그녀의 교리적인 신앙심이 한 단계 성숙되어 성화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녀는 죽으면서도 메피스토가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영적으로 둔감한 상태에 있는 파우스트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괴테의 〈원형 파우스트〉의 경우, 이 마지막 장면이 감옥에서 일어나는 반면, 뒤렌마트의 개작에서는 단두대 장면으로 바뀐다. 마가레테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불행에 외부적인 힘, 즉 메피스토 악마의 힘이 작용을 했음을 간파 하고 영원한 심판주인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에 모든 것을 맡기고 보다 높은 '질서와 은총'에 희망을 거는 모습은 〈원형 파우스트>에서와 개작에서 유사하다. 개작에서 마가레테는 공포를 극복하고 구조물 맨 위로 올라가, 말뚝을 붙잡고 머리를 그 위에 올려놓는다. 이어 형리가 도끼를 내려뜨린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자신이 처한 이 세상에서의 불행 앞에 굴하지 않는 용기 있는 인간으로서의 뒤렌마트의 주인공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을 직접 시연해 보는 작가 뒤렌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