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구음이 흐르는 가운데 햄릿이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슬픔이 채가시기도 전에 이뤄진
어머니와 삼촌과의 결혼 굿이 벌어진다.
죽은 아버지의 극락천도를 위한 '진오기굿',
혼령이 동생의 독살로 죽었다 말한다.
햄릿은 충격 속에서 갈등한다.
햄릿은 아버지 죽음을 소재로 삼촌 앞에서 연극을 공연한다.
드디어 살해 장면에 이르자 삼촌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연극은 중단된다. 마침내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확증을 얻은
햄릿은 이제야말로 행동할 때라고 생각하고 살인을 결심하지만
우연한 실수로 연인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살해한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햄릿은 영국으로 추방되고,
삼촌은 영국 왕에게 햄릿을 죽여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햄릿이 떠난 후, 오필리어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신이 이상해지고, 연못에서 익사한다.
그녀의 오빠 레어티즈는 햄릿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오필리어의 넋을 달래기 위한 '수망굿'을 하던 중 영국에서
돌아온 햄릿이 나타나고 다급해진 삼촌은 레어티즈와 함께
검술시합 중 햄릿을 죽이려는 계략을 꾸민다.
햄릿은 친구 호레이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검술시합에 흔쾌히 응한다.
마침내 검술시합일 햄릿을 죽이려고 삼촌이 준비한 독잔을 어머니가
대신 마시고, 독 묻은 칼에 햄릿과 레어티즈 모두 상처를 입는다.
모든 것이 삼촌의 음모였음이 밝혀지고 햄릿은 삼촌을 죽인다.
운명의 엇갈림 속에 어머니 삼촌, 레어티즈, 그리고 햄릿까지
모두 죽음을 맞는다. 구슬픈 무녀들의 구음.
햄릿을 위한 모든 죽어가는 '햄릿'을 위한 '산진오기굿'이 시작된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햄릿>을 뽑을 것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인간 햄릿은 가장 매력적인 인물임엔 틀림없다. 이처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이 연출가 양정웅과 만났다. 연극 <햄릿>에 우리의 굿을 도입해 복수와 음모로 가득한 인물들과 그 드라마를 한恨과 살풀이로 풀어간 이 공연은 마치 한판 굿처럼, 접신을 통한 샤머니즘의 엑스터시처럼, 어두운 인간내면의 살煞이 풀어지는 과정을 신명나는 드라마의 제의로 엮어간다. 원작에선 햄릿이 아버지의 혼령을 만나지만, 이 작품에선 무당들이 아버지의 영매(靈媒)가 돼, 억울함을 호소했다. 죽은 자를 위한 '진오귀굿'이 펼쳐지는 대목이다. 극 중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는 실연과 부친의 죽음으로 미쳐서 물에 빠져 자살한다. 이어 그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수망굿'이 등장한다. 햄릿이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즈와 검술 대결을 벌이며 독이 묻은 칼에 상처를 입고 죽어 갈 때는 ‘산진오귀굿’이 나온다. 이렇듯 햄릿의 분노와 슬픔, 죽음을 한국적이며 현대적으로 해석해 독창적이며 연극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2014년 영국 '제52회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공연' 호평을 받았고 현지 문화계 인사들이 "가장 주목했던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재구성/ 연출 - 양정웅의 글
굿-햄릿
어릴 적 울림들이 메아리처럼 점점 내 삶을 깨운다. 아버지 책장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오랫동안 내 영감의 원천이 되어 온 <김동희 굿판 사진집>은 햄릿이 굿으로 탄생하게 한 결정적 계기다. 밀어두고, 접어두고, 기다려왔던 꿈이었다. 몇 년 전 직관적으로 햄릿을 굿으로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했다. 이제 그 직관적 선택이 나를 확신으로 이끌어 간다. 햄릿을 '한이 맺히고 박힌 인물로 보는 것이 내겐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슬픔과 외로움, 고난과 상처, 절규와 몸부림..... 우리 삶에 해원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해원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시대가 저마다의 굿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임을 느낀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라도 카타르시스를, 치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김매물 만신의 진접굿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인간과 삶에 대한 연민, 공동체 속에서 한을 위로하고 풀어내고 싶은 깊은 염원,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우리들은 갈등, 혼란의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간다. 햄릿의 불안한 영혼에서 우리 모습을 본다.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울부짖고, 독설을 뿜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로부터 멀어져간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부유하며 조용히 미쳐가는 햄릿은 바로 우리의 거울일지 모른다. 우리의 조용하고 숨겨진 광기를 위로하고, 풀어주고, 품어주는 굿이 절실한 것처럼 여겨진다. 술과 음식을 차려 나눠먹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신을 부르고 망자를 부르고 또 보내고, 산자들은 웃고 울고, 어쩌면 또 연극이 존재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이제 <햄릿>을 한판 굿으로 놀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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