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유정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clint 2024. 5. 7. 20:13

 

 


뼈대 있는 가문, 안동 이씨 종가집의 석봉과 주봉은 말만 
양반집 자제들이지 하는 짓은 영락없이 개차반이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석봉은 가산을 탕진한 후 백수로 살고 있으며, 
서울대 출신 주봉은 고시공부를 핑계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은 몇 년 째 안동에 발길을 끊었는데 이유는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춘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부자간의 인연을 끊은지 어언 3년, 춘배의 부고를 받은 두 사람은 
드디어 고향집으로 내려오게 된다.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연락 없이 지내던 두 형제는 
급기야 조의금 배분 문제로 다투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형제는 법률 사무소에 다니는 미모의 여인, 오로라로부터 
아버지가 숨겨둔 `당첨된 로또`에 대해 듣게 된다. 
그 날로 조문객을 내쫓고 대문을 걸어 잠근 형제는 
낮에는 로또를 찾기 위해 몸싸움까지 불사하고
밤에는 로라와 달콤한 미래를 꿈꾸며 `사랑의 라이벌`이 되고야 마는데...

 



이 작품은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난 형제 석봉과 주봉이 절연했던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안동 고향집으로 내려가 유산을 찾으면서 자연스레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일단 티격태격하는 형제의 캐릭터가 그리 멋지지 않아 낯설지 않다. 종가집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에 눌려서 동생을 시기한 형, 어릴 때부터 장남을 우선한 부모로 인해 형을 질투한 동생의 모습 때문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비교적 차분하게 극을 이끌어나가는 두 주인공 대신 조연들이 경쾌한 춤과 노래로 웃음을 선사한다. 할머니가 종부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치질을 참다가 사망하는 장면과 곧 돌아가실 것 같은 권옹의 브레이크 댄스까지... 게다가 형제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모의 여인 오로라는 능청스럽기 짝이 없다. 유혹하는 장면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면서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극은 후반에 부모의 숨은 사연이 나오면서 진지해진다. 평생을 서로 아끼며 살았던 부모의 모습과 자식에게까지 끝까지 치매를 숨기려했던 어머니의 죽음이 뭉클하다. 이를 통해 극은 형제뿐 아니라 부자간의 갈등까지 풀어내며 휴머니즘을 선사한다. 사연을 알게 된 형제는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때문이라 여겼던 오해와 원망을 내려놓는다.





작가의 메모 - 장유정
90년대 학번치고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대형 제작사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한 「맘마미아」와 같은 쥬크박스 뮤지컬을 쓰고있던 때였다. 1년간 4명 가수의 노래를 가지고 4편의 대본을 썼지만 끝내 아무것도 공연되지 못했다. 그것이 미안했는지 담당 프로듀서가 물었다. 본인이 쓰고 싶은 가수가 있었느냐고. 나는 김광석이라고 답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회는왔고 나는 몇 주간의 고민 끝에 첫 번째 트리트먼트를 썼다. 하지만 좀 더 괜찮은 거 없냐는 대답뿐이었다. 다시 도전했지만 역시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마지막 각오로 덤빈 것이 「형제는 용감했다」였다. 제작사의 의견은 예상외였다. 굳이 김광석 음악을 등에 업고 가지 않아도 승산이 있으니 순수 창작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네." 했지만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주춧돌이 되는 부자, 형제간의 갈등은 김광석의 노래와 어우러졌을 때 근사한 것이었다. 노래를 모두 빼고 줄거리만 남겨놓자 소재는 빈약하고 캐릭터는 매력 없었다. 1년 반 동안 얘깃거리가 쌓일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로또, 유산, 안동, 종갓집, 우물, 오해 등의 아이디어가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다. 도산서원, 하회마을, 농암종택, 두루 종택 등 안동으로 취재도 여러 번 갔다. 그 중 100세 드신 퇴계종택 15대손을 알현한 일은 내게 큰 자극을 주었다. 대본을 쓰는 내내 김광석 노래를 들었다. 김광석의 노래는 마치 초봄의 아침처럼 여유로우면서도 따스하다. 이 대본이 공연되었을 때는 좀 더 낭만적이고 치열하면서도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노래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언젠가는 김광석의 노래로 대본을 쓸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주인공 석봉과 주봉에게도 김광석표 희망이 깃들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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