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소년 안데르센은
고향 오덴세 시장의 추천서를 받아 배우의 꿈을 안고
코펜하겐의 극장 감독을 찾아온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볼품없는 소년은
배우를 하기엔 못 생겼고,
작가가 되기엔 문법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독학자일 뿐이다.
극장 감독에게 소년은 자신이 쓴 일곱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운 오리새끼>, <쓸모없는 여자>, <길동무>,
<인어공주>, <프시케>, <성냥팔이 소녀>, <놋쇠 병정>으로
이루어진 7편의 에피소드가 14살 소년의 동상극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 일곱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결핍된 자아가 투영된 안데르센의 분신들이다.
세상에서 소외당 한 결핍된 자일수록
강렬한 열망과 불멸의 영혼을 꿈꾼다는
소년의 이야기는 닫혀 있던 극장감독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는 14살 소년에게 문법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소년의 후견인이 되어 주기로 한다.
그는 안데르센을 발견한 극장장 요나스 콜린,
14살 소년의 이름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불멸의 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안데르센>은 작가가 쓴 200여 편의 작품 가운데 7개의 동화를 이야기 형식으로 엮었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뛰어난 이야기꾼이었으며 그의 작품은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쓰여졌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 - <미운 오리 새끼>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태어난 오리새끼 한 마리가 다른 오리들에게 구박을 받고 집을 떠난다. 동물들은 날고 싶어하는 오리를 비웃으며 거리로 내쫓는다. 힘든 겨울도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백조를 발견한다. 그러다 문득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백조인 것을 깨달은 미운 오리새끼는 백조가 되어 높게 날아오른다.
이 작품은 못생긴 얼굴과 가난하고 비천한 환경으로 외톨이로 지내야 했던 작가의 어린시절을 그려낸 자전적 동화이다. 안데르센 작품의 대부분이 비극으로 끝나는데 반해 행복한 결실을 맺는 몇 안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상징이 담겨있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어머니가 결혼하고 2달만에 태어났으니 어쩌면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기를 바라는 상상에서 이 작품을 탄생시킨 건 아닐까?
두 번째 이야기- <쓸모없는 여자>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은 평생 세탁부로 살아야 했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추위를 이기려 술을 마시며 일하는 어머니를 위해 아들이 술을 훔치자 시장은 어머니를 쓸모없는 여자라고 비난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시장 집안의 자손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전하고 물레방아 수로에서 죽어간다. 홀로 남은 소년은 어머니가 쓸모 있는 인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 그 자체로 귀하게 존재이다. 환경의 차이로 천하고 귀함을 나눌 수 없으며 쓸모가 있고 없음으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그래서 소년은 쓸모 있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세상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유로운 여행의 길을 떠난다.
세 번째 이야기 - <길동무>
소년은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관을 땅에 묻고 홀로 여행을 떠난다. 교회에서 시체를 파헤치는 남자들로부터 시체를 구하고 다시 떠나던 중에 길동무를 만나 함께 여행하게 된다. 길동무는 여행을 하는 동안 친구가 되어 소년을 도와준다. 소년은 길동무의 도움을 받아 마법에 걸린 공주가 내는 문제를 알아맞히고 공주의 마법을 풀어준다. 결국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해 훌륭한 왕이 된다. <길동무>는 전형적인 동화의 구조를 지녔다. 마법에 걸린 공주,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평범한 주인공은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대가로 악의 무리를 물리치게 된다는 선악의 구조가 분명하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태어나자마자 침대가 없어 주워 온 관 뚜껑 안에서 자랐으며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잃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길동무가 된 죽은 영혼을 그의 아버지로 표현했다. 평생을 배우지 못한 열등감으로 괴로워했던 아버지였지만 어린 안데르센에게 시와 소설을 읽어주며 상상력을 불어넣어준 어린시절의 길동무였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야기 - 〈인어공주〉
인어공주는 15번째 생일날 바다 위를 구경하다 항해 중이던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때 폭풍이 일어 배가 침몰하고 인어공주는 바다에 빠진 왕자를 구해낸다. 인어의 모습으로 왕자 앞에 나설 수 없었던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은 얻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바다 마녀에게 주고 두 다리를 얻는다. 그러나 왕자는 벙어리가 된 인어공주가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인어공주는 인간의 영혼을 얻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바다로 뛰어든 인어공주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존재인 물방울이 되어 하늘로 솟아오르는데 그들은 '공기의 딸들 즉 바람의 정령'이다. 그들은 인어공주가 300년 동안 온갖 생물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는 일을 하면 불멸의 영혼을 얻어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해준다.
작품의 가제를 '공기의 딸들'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는 유럽의 민간 정령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인간의 영혼을 갈구하고 있다. 인어공주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오히려 영원불멸의 영혼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 <프시케>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조각가는 높은 신분의 미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와 꼭 닮은 조각상을 만든다. 아름다운 조각상을 완성하고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자 상심한 그는 조각상을 땅에 묻어버리며 잊겠노라 다짐한다. 세월이 지나 조각가가 죽고 수도원을 땅을 파던 인부들은 묻혀 있던 프시케 상을 발견한다. 지상의 것은 흔적 없이 사라져 잊혀지고 무한 속의 별만이 영원히 기억한다. 조각가는 죽고 사랑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프시케의 조각상은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여섯 번째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
새해를 하루 앞둔 밤, 한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거리를 걷고 있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소녀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긋는다. 그러자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온갖 환상이 소녀 앞에 나타난다. 그 불빛 속에 할머니가 나타나자 소녀는 자신도 그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소녀는 할머니를 계속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 남은 성냥을 몽땅 써버린다. 추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소녀는 미소를 띤 채 죽어 있다. 그러나 소녀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얼마나 축복을 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어가는 한 아이의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동화는 빈곤하게 소녀시절을 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 - <놋쇠병정>
25개의 병정인형 가운데 주석이 부족해서 외다리로 만들어진 놋쇠병정이 있었다. 놋쇠병정은 함께 진열된 인형가운데 한쪽 다리를 지켜 올린 발레리나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이를 시샘한 도깨비가 둘 사이를 방해하고 병정은 창문에서 떨어져 갖은 수난을 겪는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놋쇠병정은 바람에 날려 벽난로 불길 속으로 떨어진다. 이때 발레리나 인형도 불길 속으로 떨어지면서 둘은 하나가 되고 심장모양의 주석만 남기고 불에 타 사라진다.
이 작품의 제목은 <놋쇠병정>, <주석병정>, <외다리병정>, <꿋꿋한 장난감 병정> 등 다양하게 붙여졌다. 죽음으로 무희인형과의 사랑을 이룬 놋쇠병정의 이야기는 삶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사랑을 이루고 구원받게 되는 생의 절정을 보여준다.
안데르센은 시, 소설, 희곡, 동화, 기행문, 자서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편지와 일기를 남겼다. 19세기 작가 가운데 자신의 어린시절과 그 후의 경험들에 대해 안데르센만큼 자세히, 거듭해서 이야기한 사람은 드물다. 이 동화는 어린이뿐만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그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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