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소윤정 '배이비'

clint 2024. 1. 3. 06:20

2024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 - 최진아 극작가(극단 놀땅 대표장우재 연출가(대진대 연기예술학과 교수)

올해는 최근 현실 문제를 다루는 경향이 약해졌다. 대신 그 안에서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었다. 인정투쟁, 고령화, 극단적 범죄,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 등은 여전했고 물질, 사물, 꿀벌, AI, 식물, 냄새 등 포스트 휴머니즘의 영향으로 보이는 것과 아예 어떤 범주로도 묶이지 않으려는 듯 땅에서 구름을 찾거나 시간을 부정하는 시도 또한 보였다. 이런 경향에 대해 사회에 관한 관심이 약해진 것일까, 고민해 보았다. 어쩌면 문명과 인류에 대한 불신이 배어 있는 것도 같았다. 또 무대에서 구현하기 힘든 희곡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희곡의 메타포는 타 문학과 영상 매체의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 어느 정도 실제 구현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그것 자체가 관객의 심상을 자극하는 문학적 매개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물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격렬하게 움직인다거나 차원을 이동한다 해도 이는 행위 수준을 넘어 인간의 어떤 사회성 행동을 심상하게 하는 문학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SF라 분류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유행하는 담론을 단지수준에서 극화한 것은 소재주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보여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희곡에서 새로운 메타포를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닐지 생각되었다.

‘지구 정원’, ‘프로그래머’, ‘영의 자리’, ‘클라우드 나인’, ‘너의 냄새등의 작품들이 당선작이 될 수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은 보습학원을 배경으로 강사와 14세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배이비를 응원하기로 하였다. ‘배이비흔들리는 교권이라는 흔한 이슈 드라마로 보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단지 이슈 탐닉으로 풀지 않고 사회생물학적 힘의 논리가 어떻게 작용하여 그러한 현상이 반복되는지 살핀 것이 좋았다. 비록 작가가 의도만큼 잘 구현했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현실 사회문제를 볼 때 도덕이나 당위를 벗어나 동물들이 하는 사회성 행동의 생물학적 관점을 새롭게 끌어들일 가능성이 보여 이를 높이 사고 싶었다. 이제 새로운 관점으로 보되, 그것을 잘 녹여 현실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데 쓰는 것은 어떨까.

 

 

당선소감 소윤정 (1973년 전북 남원시 출생. 고려대 동양사학과 졸업)

긴 시간 동안 연극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글쓰기는 장롱면허처럼 다가왔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장롱면허를 가지고 길을 나선 저는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극작가협회 창작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희곡이라는 길로 용기 내어 나설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작가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처음엔 무엇을 써야할 지 막막했지만 돌이켜보면 제 안에서는배이비라는 글을 통해 사람에 대한 저의 의문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배이비는 저에게질문이었고도전이었습니다. 무대를 그려나가는상상이었고 글을 쓸 수 있다는즐거움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만 있던 질문이 허공을 치며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큰 메아리로 돌아오니 기쁩니다.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우려될 만큼 분주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쓰기는 그 시간을 건널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미래를 장담할 순 없겠지만 열심히 글 쓰며 나아가겠습니다.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항상 저를 응원하는 친구 병옥씨와 아이들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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