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4회 서울연극제에서 4개 부문(대상, 연출상, 신인연기상, 희곡상)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 작품이다. 연출 정범철. 극발전소 301.
도시 외곽의 중국음식점 만리향.
한때는 방송국 맛 집으로 선정되며 손님이 우글대던 곳이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첫째 아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파리만 들끓는 곳으로 전락한다.
유도선수인 셋째 딸이 운동도 그만두고 배달 일을 도우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꼴통 취급 받던 둘째 아들은 가출을 해버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적장애가 있던 막내마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리는데…
그리고 5년 후, 장 보러 나간 어머니가 시장에서 막내를 목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랜만에 모두 모인 가족.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이제는 막내를 직접 찾으러 나가겠다며 짐을 싸는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 사라진 막내를 위해… 그리고, 가족 모두를 위해 가짜 굿판을 계획하게 되는 삼 남매. 가짜 굿판을 준비하며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몰랐음을 깨닫게 된다. 엄마는 아들을, 아들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그리고 이들 모두는 먼저 가신 아버지를... 차마 서로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각자의 아픔, 슬픔, 상처들이 모두 다 담긴 한바탕 쇼가 시작된다.
“이리로 오라, 내 몸이 비었으니, 이리로 오라, 빈 몸이 여기 있으니. 장군님이 오시오! 장군신만 오시오!”
작품은 동네에서 작은 자장면 가게를 운영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자장면 집 이름은 만리향. 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자장면 집이지만 어쩐지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영 찾지 않는다. 유학파 큰아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만리향 자장면 맛없다’고 온 동네에 소문이 깔렸기 때문이다. 빈 가게만큼이나 평소에도 서로에게도 텅 빈 마음으로 대하는 만리향 가족들. 어느 날 어머니가 시장에서 집 나간 막내를 봤다며, 꼭 찾아야 한다면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가당치 않은 이야기라고 말하는 가족들은 어머니의 치매기를 의심하지만, 반면 어머니의 허한 마음이라도 달래주자며 굿판을 벌이기로 한다. 어머니가 원했던 용한 무당은 세상을 뜨고 없기에 가짜 무당을 불러와 가짜로 굿판을 벌이기로 했다. 가짜 굿판을 벌인다는 것 자체에서, 현재 이 가족에게는 막내를 찾는 것보다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한 일임을 보여준다. 모두가 막내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을 막내를 찾는 과정 속에서 만리향의 가족들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재능에도 없는 요리를 맡았던 첫째와 오랫동안 집을 나가 생사 확인만 겨우 되던 둘째, 두 오빠의 냉전 사이에서 엄마의 말벗이 된 준 셋째와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 큰 며느리 등 모두가 마음과 머리를 맞댈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가족의 실종과 죽음, 배다른 형제의 이야기 등 이 시대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담아내지만 방식은 결코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모든 중요한 이야기와 사건들은 무심하게 내뱉어지고 있으며,
그 무심함 덕분에 관객들은 더욱 묵직한 무언가를 가져가게 된다.
좌충우돌 시끄러운 형제들 사이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는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눈에 띄고 또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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