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김경주 시인의 시집에 실린 동명의 제목 시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에서 출발한 희곡이다. 시극은 일반적인 희곡의 전개와 달리 시적인 언어와 알레고리적 전개를 통해 드라마를 구성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시극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2006년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을 시작해 국내 무대에 여러 차례 공연되었으며, 일본에서도 매혹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희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시적 질감을 채우고 언어를 비우고 그곳에 침묵의 질을 배치하며 독특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시극 작품이다. 불구로 태어나 가정과 사회에서 천대를 받던 아들 늑대가 이 세상에 자기 울음소리 하나 남기고 사라져 가는 이야기로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우화적이며 부조리한 작품이다. 먼 미래,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 인류는 인간과 늑대가 공존한 공간에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자해공갈단 우두머리로 몸과 새끼를 팔아 삶을 연명하고 있는 엄마, 두 팔 없는 아들 늑대 이야기이다. 결핍과 가난, 소수, 소외층을 상징하는 사람들, 늑대인지 사람인지 모호한 주인공들은 사람과 짐승의 경계에서 ‘불구’인 ‘병신’으로 살아간다. 결국 이 작품은 존재와 삶의 근본적인 ‘부조리’에 대해 말하며 부조리, 소통 불가, 혼란 등 우리 삶의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악순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극작가로서 김경주가 직접 정리한 줄거리는 이렇다.
1막. 엄마 늑대의 돈을 훔쳐 밖을 떠돌던 아들 늑대가 두 팔이 없이 돌아온다. 어머니는 도대체 팔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물어보고 아들은 어머니가 임신 중에 먹은 살모사 때문에 팔이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집 나가서 만나게 된 여자 이야기와 앞으로 무슨 짓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둘은 말씨름을 한다. 무능한 자신과 공장에서 두 팔을 잃고 그 보상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다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즈음에, 엄마 늑대가 낳은 새끼 늑대들이 배고픔에 낑낑거린다. 아들은 갑자기 창밖을 향해 긴 울음을 토해낸다. 그리고 엄마 늑대의 품안으로 파고들어 젖을 빨기 시작한다. 2막. 다시 찾은 엄마 늑대의 집, 아들은 다른 사냥감을 물고 등장한다. 엄마는 새끼 늑대를 판 돈을 세며 좋아하다가, 아들의 방문에 당황한다. 하지만 아들이 사냥터에서 개처럼 일하다가, 주인 몰래 훔쳐온 사냥물에 마냥 신이 난다. 아들의 무용담을 듣다가 기쁜 마음에 사냥물을 확인하던 중 엄마는 놀라움에 휩싸인다. 그건 다름 아닌 예전에 집을 나가 떠돌던 남편 늑대였던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에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어머니는 늑대를 냉장고에 잘라 넣고 감추려 한다. 이때 등장하는 임신한 아들의 여자 ‘쥐’ 와 먼 미래에서 온 경찰들. 집은 발칵 뒤집히고, 아들은 경찰에 끌려가기 전, 어머니와 마지막 성교를 나눈다. 자신이 떠나고 나면 먹고살 길 없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생계수단인 ‘씨’를 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에게 끌려가는 아들. 아들은 긴 울음을 토해내고, 엄마는 밑을 닦다가 자궁 깊은 곳에서 울리는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3막. 아들이 떠나고 난 후, 집은 이제 아들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 ‘쥐’가 차지하게 된다. 눈을 잃은 엄마 늑대는 앵벌이를 하며 돈을 벌어오고, 아들의 여자는 엄마를 생계로 구박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여자는 출산 시기가 훨씬 넘었는데도 뱃속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가 두렵기만 하다. 아들의 여자는 엄마 늑대를 밖으로 내보내고, 벽장 속에서 살모사가 든 병을 꺼내 마시려 할 즈음, 엄마 늑대가 소리치며 등장한다. “그 아이는 아들의 우주야. 난 아들과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졌어. 보여…… 보여.”
김경주는 1976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M.F.A) 전문사 과정(대본 및 작사 전공)을 공부했다.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등단 후 몇 년간 고스트라이터로서 활동하며 야설 작가와 카피라이터, 독립영화사 등의 직업을 거치며 여러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 한국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시인 중 한 명이며, ‘현대시를 이끌어갈 젊은 시인’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시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6년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낸 후 순수문학에서는 드물게 30쇄를 찍으며 대중과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시집으로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이다’ ‘한국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시집’이라는 평단의 평과 함께 ‘미래파’라는 새로운 문학운동을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현재 자신의 스튜디오 ‘FLYING AIRPORT’에서 시극실험운동을 하며 연극, 음악, 영화, 미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전방위적인 작업을 확장해오고 있다. ‘2009 세계델픽대회(문화예술올림픽)’ 국가대표로 선정되어 언어예술부문 경연대회 시극 부문 최종 본심에 진출했고 미국, 프랑스, 스웨덴, 멕시코 등에서 꾸준히 작품이 번역되고 있다. 시집으로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고래와 수증기』 등이 있고, 산문집 『패스포트』 『밀어』 『펄프극장』 『자고 있어, 곁이니까』 등 다수의 저작물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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