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존 그리샴 '타임 투 킬'

clint 2023. 3. 1. 08:59

 

강간당한 자식의 복수를 위해 범인들을 난사한 아버지는 정신이상을 이유로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 정신이상이 의심되지만 유죄일까(Guilty but mentally ill)?

 

백인 우월주의가 특히 만연하던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주 포드 군의 작은 도시에서 길을 걸어가던 10살짜리 흑인 소녀가 술과 마약에 취한 두 백인 남자에 의해 잔인하게 폭행 후 강간당했다. 범인들은 곧 체포되지만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고 오히려 흑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보석으로 풀려날 기미였다. 재판을 받은 범인들이 구치소로 이송되는 틈을 타, 소녀의 아버지 칼 리는 딸을 유린한 두 백인을 총으로 난사하여 아버지의 정의로 복수한다. 이 사건은 흑백 간의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팽팽한 대립 속에서 백인 제이크 변호사의 변호가 시작된다.

 

 

[타임 투 킬]은 데소토 카운티에서 강간당한 12살 소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 존 그리샴(저자 이자 미시시피 주 변호사)은 재판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법정에 있었다. 피해 소녀는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gut-wrenching"이라고 증언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존 그리샴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고 한다. 재판관이 휴정을 선언했고 존 그리샴은 법정을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법정에 서류가방을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계단을 통해서 다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고 법정에는 피고인 측(범인)과 간수만이 있었다. 감정이 북받친 존 그리샴은 '총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당시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가 강간을 당한다면 과연 자신은 어떻게 할까? 라는 점에서 착안하고 당시 재판과 존 그리샴이 휴정된 법정에서 범인과 마주친 과정을 녹여낸 [타임 투 킬]은 소설 속 강간당한 소녀의 아버지이자 범인을 총으로 난사한 칼 리를 통해 응징하고 있다.

 

 

존 그리샴의 이 데뷔작은 1987년에 집필을 끝냈지만 많은 출판사에서 원고를 거절했고, 1989년 간신히 뉴욕의 Wynwood Press 출판사에서 5000부를 출간할 수 있었다. 그 후, 매년 발표한 [The Firm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The Pelican Brief (펠리컨 브리프)], [The Client (의뢰인)] 이 줄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존 그리샴은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흉악한 성폭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화두에 오르는 성폭행범 처벌 방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성폭행 당한 자식의 복수를 위해 연쇄 살인마가 되는 영화 [오로라 공주]와 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내용의 소설과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 생각났다. 성폭행 피해가 치유되고 잊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성폭행범은 피해자가 당한 피해만큼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살아있기에 살인보다 더 끔찍할 수 있는 성폭행 범죄는 어떤 처벌을 내려야 피해자를 위한, 그리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될까? 법에 의한 처벌은 이에 충분한 것일까? 충분한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영화와 같이 성폭행범에 대한 보복살인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를 이성적이지 못한 피해자 가족에 의한 폭주라고만 볼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 '법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최종적으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형법을 공부하며 이론적으로 배웠던 '사회질서를 위해 개인의 응보를 사회에 맡기는 것'은 머릿속에 글로만 남았는지, 끓어올라 넘칠 것 같은 감정이 이성적으로 통제되지 않아 발생한 보복의 결과들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된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정당방위가 좀 더 넓게 인정되는 편이다. 하지만 법을 제치고 스스로 보복 살인하는 것은 그 동기가 이해될지라도 그 행동의 결과까지 사회적으로 허용된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처벌의 가능성을 인식한 채 행동하는 것과 처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책에서는 맥노튼 규칙(M'Naghten Rule)에 의해 배심원들에게 심신상실의 상태를 주장하여 설득시킨다. 실제 행위 당시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지 않아도 배심원들이 이해하고 무죄의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심신상실이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규칙은 피고가 그의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몰랐거나 그의 행위의 본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정실질환 또는 결함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책임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Kensas, Montana, Ihaho, Uta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 이런 Insanity Defense를 허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