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소포클레스 원작 존 바턴, 케네스 카벤더 재창작 '엘렉트라'

clint 2023. 2. 16. 09:09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정부(情夫)에게 복수함으로써 정의를 세울 있었던 것은, 고집스럽고, 집착적으로 불릴 만한 엘렉트라의 정신성이다. 상대주의가 팽배하여 정의를 가늠하는 것이 어려운 현대인들에겐 그녀의 모습은 집착적이거나, 비정상적으로까지 보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녀의 정신성이 빛난다. 비천함과 숭고함을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운명을 삶의 조건으로서 인정하고, 당당히 마주하게 해주는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 담겨 있다.
[엘렉트라] 서막과 등장하는 오레스테스의 도착을 알리는 이야기로 시작하며, 복수의 계획과 엘렉트라의 탄식이 제시된다. 아가멤논의 죽음과 복수에 대한 엘렉트라와 그녀의 여동생 크리소테미스의 대화가 제시되고, 아가멤논 살해에 대한 엘렉트라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논쟁과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엘렉트라의 절망이 제시된다.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의 대화 장면으로 구성되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대화 장면으로 구성된다. 종막에서는 구체적인 복수가 진행되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가 살해된다.

 


소포클레스는 [엘렉트라]에서 아가멤논의 죽음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 그리고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복수를 이와 같은 정교한 플롯 구조 속에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엘렉트라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비타협적이고, 반성적인 사유 능력이 약하다. 그러한 성격적 결함 때문에 그녀는 가문에 내린 저주와 맞서야 하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근본적으로 선한 인간이며, 한순간도 천박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긴 해도 사고와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인물이며, 육친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여성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며, 인간으로서는 불가해한 힘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것이 이성의 영역 밖에서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마다의 운명을 짊어진 관객들의 삶을 위무함과 동시에 그것에 당당히 마주할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 배경과 고대 그리스 3 작가의 엘렉트라

 

<엘렉트라>라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탄탈로스 가계를 먼저 더듬어 봐야 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탄탈로스 가계의 사람들이며 이 인간들의 평화와 복수, 필연적으로 내려지 는 벌, 정의와 사랑으로 해결되는 과정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탄탈로스의 손자인 아트레우스 왕은 그의 동생 튀에스테스와 왕위 계승을 위해 암투를 계속했다.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처를 유혹한다. 이에 분노한 아트레우스는 틈을 보아 튀에스테스의 아들 둘을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내어 국을 끓여 튀에스테스에게 먹인다. 이 사실을 안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를 죽이고, 아트레우스 의 아들 아가멤논이 그를 살해한다. 아가멤논과 그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는 오레스테스라는 아들과 엘렉트라, 이피게니아, 클리소테미스 세 딸이 있었다.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우스의 처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하자 저 유명한 트로이전쟁이 터지는데,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출범하기에 앞서 신에게 도전했던 조상 탄탈로스때문에 분노한 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첫째 딸 이피게니아를 희생물로 바친다.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고, 10년간 트로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왕비는 튀에스테스의 아들인 아이기스투스의 정부가 된다. 아이기스투스는 아버지를 죽인 아가멤논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보다가 그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아내를 유혹한 것이다. 아이기스투스와의 사랑을 위해 왕비는 어린 오레스테스를 포키스의 왕국으로 보낸다. 그 후 트로이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온 아가멤논을 죄 없이 살해당한 이피게니아의 복수를 하기 위해 정부 아이기스투스와 짜고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아가멤논의 죽음으로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그의 정부에 대해 증오와 멸시의 불을 일으킨다. 동생인 오레스테스가 성장해서 아폴론 신으로부터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는 신탁을 받고 돌아왔지만 아직도 어머니를 죽인다는 사실에 주저하고 이에 엘렉트라는 강력하게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하도록 재촉한다.

어머니를 죽인 가책 때문에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세 여신들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그러다 오레스테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빼앗아 오면 아테나 여신에게서 그를 용서해주겠다는 신탁을 받고 여신상을 찾아 타우리케로 오는데, 거기서 그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해 여사제가 된 누이 이피게니아를 만난다. 많은 시련을 겪은 뒤, 오레스테스와 이피게니아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고향인 미케네로 돌아가고, 탄탈로스 가의 저주도 이피게니아의 희생적인 행동을 통해서 용서를 받게 된다. 이것이 탄탈로스 가의 비극이야기이다.

왕비가 남편을 죽이게 된 데에는 십 년을 독수공방해야 하는 처지에 사촌시동생인 아기기스투스와 정을 통하고, 살아서 승리하고 돌아 온 남편이 귀찮은 존재이기도 했고, 또한 아이기스투스가 자기의 복수에 왕비를 이용했다는 까닭도 있었다. 그러나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그것이 아니었다. 이 극 가운데서 모녀의 대화로도 알 수 있지만, 맏딸 이피게니아를 트로이 원정의 길에서 풍랑을 면하기 위하여 아버지 아가멤논이 희생으로 바친 데 대한 어머니의 원한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로는 아가멤논이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사랑한 일이 아내의 복수심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특히, “너를 기른 것은 나다라고 젖가슴을 풀어 헤치며 목숨을 구걸하지만 아가멤논을 죽인 죄로 친자식들에게 목숨을 빼앗기게 됐을 때, 코러스가 나와 애탄에 찬 대사를 던지는 장면은 이른바 그리스 비극의 생명이라 할 '극적 아이러니'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엘렉트라는 살해당한 아버지에 대한 애착, 그것에 비례해서 어머니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증오, 질투, 현재의 자기 처지에서 비롯되는 씻지 못할 굴욕감. 이 모든 것이 생생하고 인간적으로 나타난다. 엘렉트라는 가장 절망적인 인간상이다. 엘렉트라의 세계는 이상과 상상과 정감의 세계이다. 현대로 오면서 엘렉트라는 심리분석을 통해 연구되면서 이후 많은 작가들이 엘렉트라의 이야기를 작품화 했다.

엘렉트라를 중요한 인물로 취급하여 극화 한 최초의 인물은 아이스킬로스다. 아이스킬로스는 탄탈로스 가계의 비극을 극화 하면서 죄는 인간의 교만에서 나오고, 거기에 대한 벌은 정의의 나타남을 표현하려 했다. 아이스킬로스가 비극의 창시자였다면, 그것을 완성시킨 이는 소포클레스였다. 아이스킬로스의 사상적인 특징은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면, 소포클레스의 관심의 초점은 인간 본성의 고찰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심리에 대한 깊은 관찰을 볼 수 있다. 또한 비극의 완성자라 불릴 만큼 극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룬 전곡의 형식의 띠었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와는 달리 엘렉트라를 극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남자들의 세계와는 다른 여자의 사랑과 갈등을 그렸다.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러서는 아이스킬로스의 종교적인 명상의 세계라든가, 소포클레스의 심리적인 세계를 벗어나, 매우 합리적이며 사실적인 특징을 갖게 된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는 언제나 사람을 자연의 법칙과 묶어서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은 운명이라는 크나큰 힘에 눌리고 마는 희생자였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서로 엇갈리는 것이 있어 그것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앞의 두 작가는 비극다운 근원을 신의 섭리에다 두고 있었지만, 에우리피데스는 그것을 사람 사이의 관계로 끌어 내린 셈이다. 오히려 그의 그런 노력이 그리스 비극의 비극 다움을 죽이는 결과가 되었을지라도 이야기를 가장 논리적이고 신속하게 진행시킨 것은 에우리피데스이다. 또한 에우리피데스는 앞선 두 선배 작가들의 작품들보다 진일보하여 엘렉트라를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여성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가장 현대적인 느낌을 갖게 하며 엘렉트라의 행동에 타당성을 주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엘렉트라를 다룬 작품이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세 작가에게 다 있기는 하지만, 같은 얘기를 가지고도 이 세 작가가 각각 제 나름의 새로운 극적구성을 보여 주기에 얼마나 고심하였는지 그 작품들을 비교해서 읽으면 족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그들은 주어진 소재를 어떻게 소화하느냐, 그것을 어떻게 극적으로 전개하느냐, 극적 효과를 어떻게 거두느냐에 그들의 독창성의 세계가 있었고, 이러한 세계는 오늘에 이루기까지 그리스 극만의 영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극의 형식적인 아름다움도 거기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문예 작품을 낳은 시대나 그 사회상이나, 그 밖에 그 작품에 따른 여러 조건들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역사의 변천이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은 그 변천 속에서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스 문학이 250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흐른 현대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바로 그 점에서 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