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보리스 슈킨 연극대학교의 L. M. 쉬흐마토프와 V. K. 리보바 교수에 의해 100여 년 동안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내용이다. 그들은 5세대에 걸쳐, 지금은 국가 전역에 잘 알려진 훌륭한 배우들이 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들이 행한 수많은 공적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이 ‘안톤 체호프가 창작한 단편들의 상연화 작업’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바흐탄고프 극장에서 체호프의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느끼고 보이고 감동을 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소설 속 희곡 속 체호프가 만들어낸 인간 유형들과 그들의 이야기, 예측을 비웃는 전개와 반전이, 번뜩이는 그의 통찰력과 재치를 증명해준다. 그런데 그러한 그의 능력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극대화되어 나타남으로써 이것을 보고 듣는 이의 오감을 단번에 쾌감으로 끌고 간다.
세상 살아가는 인간들의 다양한 면, 탐욕과 무식, 냉혹과 위선, 어리석음과 교활함 등 작가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체호프는 선한 주인공을 이상화하거나 치장하지 않는다. 또한 악한 주인공이라고 해서 어둡고 부정적으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그들이 누구이든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내면의 갈등과 현실적인 문제들, 그들은 그들이 누구이건 간에 자신 앞에 놓인 문제들을 즐기거나 불행해하거나 혹은 극복해나간다. 거기에서 체호프만의 특색이 나타난다. 치졸한 방법이든 정의롭고 적절한 방법이든 혹은 너무나 세속적인 속임수든 나름의 방법을 써서라도 삶을 긍정하며 열심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독자를 위한 선물이 있다. 체면을 던져버리고 웃게 하는 유머 감각이다.
오그네프의 첫 대사를 보면 두 사람이 만나기로 약속돼 있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 설정하자. 오그네프가 자료수집 차 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베라의 가족들과 친구가 되었고 자주 일상적으로 드나들었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늦게까지 (보통은 12시 넘겨서도 있었다) 이 집안사람들과 담화를 즐기다가 내일이 이곳을 떠나는 마지막 날이라 인사를 하고 다음날 떠날 채비를 하기위해 한시간정도 서둘러 나왔다.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다보니 베라가 보이지 않았다. 곳곳을 찾다가 마당 정원에까지 나온 거다. 베라 역시 그가 자신을 찾을 거라고 확신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삶에 대한 진보적이고 고상한 시각을 가진 오그네프를 사랑하며 일상의 환멸을 견뎌내는 처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베로츠카는 주변 환경에 불만족스러워하며 왕성한 활동을 목말라한다. 시골에 사는 그녀에게 흥미를 주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오그네프는 현명하고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다. 페테르부르크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은 그녀에게 커다란 동요를 일으키고 미래에 대한 열정을 가져다준다. 그녀는 오그네프가 하는 일이 장대하고 거룩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만약 그의 아내가 되어 훌륭한 조력자로 산다면 자신의 인생도 큰 의미를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성격은 단호하고 용감하다. 그만큼 사랑에 열정적이며 상대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
베로츠카는 시골 생활의 정서적 측면을 알고 그녀를 둘러싼 배부르고 냉담한, 그리고 저속한 사람들을 안다. 그래서 왜 자신의 영혼을 오그네프에게 바치고자 하는지, 어떻게 오그네프가 자신에게 장대한 삶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오그네프가 오늘 떠나며 이로써 결단의 순간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당황한 그녀는 참을성 없이 오그네프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고는 그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의미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그에게 떠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고요한 달빛의 선율 아래 자신과 나란히 앉은 오그네프가 수려한 말솜씨를 뽐내기 시작했을 때 베로츠카의 열망은 더욱 강해져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그만둔다. 이러한 상황은 오그네프의 대사가 진행될 때 베로츠카 역을 맡은 연기자가 다음과 같은 독백을 하면 더욱 잘 발현될 것이다. "어떻게 하지? 내가 먼저 사랑을 고백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 정말 그는 떠나고 나만 혼자 남게 되는 걸까? 정말이지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는 건가?
오그네프의 집요한 질문은 베로츠카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고 그녀는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부끄럽고 고통스럽기에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린다. 오그네프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오그네프의 놀란 눈을 보았고 고백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사랑을 고백하는 첫마디를 내뱉었을 때 베로츠카는 한결 가볍고 자유스런 느낌을 얻는다. 울며 웃다가 동시에 그녀는 열정적으로 재빨리 말을 쏟아낸다. 장면의 끝에서 그녀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오그네프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하거나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사람임이 드러난다. 무참히 거절당한 그녀는 도망치듯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반 알렉세이치 오그네프는 따뜻한 온정을 가진 단정한 사람이다. 통계학 연감이라는 자신의 작은 일에 진정으로 충실한 사람이기도 한 그는 수려한 언변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선 무력하고 쓸모없는 혁명 전 인텔리겐치아를 대표하는 소박한 인물의 전형이다. 오그네프는 베로츠카를 분명 좋아한다. 그는 베로츠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녀와의 관계에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자신의 연약한 성격을 알고 있는 그는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고, 지금 또한 마찬가지임을 애석해한다. 베로츠카의 고백은 예기치 않은 일이라 그는 매우 놀라고 당황한다. 그럼에도 그로 인해 좋은 사람이 고통 받는다는 현실에 아픔을 느낀다.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으나 반드시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만 했다. 대놓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재간이 그에게는 없었고, 그렇다고 '알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아무리 마음속을 헤아려보아도 사랑의 불꽃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베로츠카의 용감함에 놀란 그는 어느 때보다 더욱 날카로워졌고, 이내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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