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00여 년전의 조선, 외침이 없는, 근 200여 년간의 조선의 평화, 기나긴 태평성대의 나날을 고대하는 조선 백성들의 하루 하루가 펼쳐진다. 그러나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조선의 영원한 태평성대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파도의 넘실거림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온 조선의 강토를 뒤엎을 전쟁의 기운이 다가온다. 명분과 실리간의 싸움에 눈이 어두운 조선의 조정은, 전쟁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당파싸움에만 정신이 빠져 있다. 백성의 안위와 국방의 소중함도 잊은 채, 기나긴 피의 전쟁은 시작되고, 조선의 조정은 아무 대책도 없는 무능함만이 이어진다. 준비된 전쟁을 하는 일본, 아무 준비 없이 허무하게 맞이하는 조선, 명분에 이끌려 전쟁에 끼어드는 명나라, 3국의 긴긴 전쟁의 소용돌이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전쟁의 불길한 기운을 느낀 나머지, 바다를 막을 준비를 하고 있던 변방의 일개 장수에 불과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순신이다.
바다의 한 곳에서 맡은바 본분으로 냉철하게 전쟁을 맞이하는 이순신, 하지만 조선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고, 일본의 야욕을 막아내어 패퇴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앞날의 사태를 이때의 이순신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나라의 안위와 나랏님에 대한 충의만이 그에겐 유일한 전쟁의 명분이었던 것이다. 이 전쟁에서 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던 일본의 진군 속도는 이순신의 출현으로 예상외로 늦어지고, 조선 조정은 반격의 토대를 갖추면서 명나라에 망명하려던 생각을 버리게 된다. 조정은 반격의 토대를 갖추면서 명나라에 망명하려던 생각을 버리게된다.
그 사이 이순신은 전투에서 장수를 잃는 아픔을 맞게 되고, 전의를 다시 한번 되씹으며 비통한 마음으로 슬픔을 보이니. 인간적인 면이 또한 엿보인다. 조선은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지만 굴욕만 당하고, 전쟁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조선을 배제한 상태로 명분과 실리를 찾는 일본의 소서행장과 명나라 심유경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밀담을 나눈다. 전쟁이 끝날 것처럼 보였으나 막판 밀담이 발각되어, 긴 소강상태의 평화 아닌 평화는 끝나니 그것이 정유전쟁이다. 승승장구하던 이순신은 그를 시기하는 인물과 조정의 안이한 대처로 곤경에 빠지고, 정유재란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파직되어 모진 고초를 겪으나 장수로써의 의연함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백의종군한다. 한편, 수군 전체를 맡은 원균은 냉철히 판단하지 못하여, 전술의 실패로 조선 무적함대의 위용은 일순간 전멸하게 된다. 사태가 이쯤 되자, 조정은 다시 이순신으로 하여금 수군을 맡게 하고 이순신은 그동안 자기를 믿고 따르던 장수와 병사를 생각하며 비통한 마음으로 적을 섬멸할 것을 결심한다.
한편, 전쟁을 일으킨 풍신수길이 죽자 전쟁은 끝나가고 일본과 명나라는 다시 한번 밀담을 나누며, 이순신을 회유하려 하나 이순신은 나라를 이렇게 만든 일본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한 명의 적도 살려보낼 수 없다고, 끝까지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다 마침내 적탄 맞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접는다
"내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의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공 한 분의 힘. 바로 그것에 의함이라." (조선 정조대왕의 충무공 묘비문(墓碑文) 중)
어디 정조뿐인가.
육당 최남선은 "오호 순신이여. 순신 이전에 순신이 없고 순신 이후에 순신이 없도다.
이순신은 초인이니 인(人)의 화(華)요 지(地)의 영(靈)이다" 라고 칭송하고 있다.
'물살 거친 노량 앞바다. 억센 쇠 작살이 솟구쳐 오르고 붉은 불길에 타오르는 화전이 바다를 가르듯 스쳐가 꼽힌다. 수백 척의 왜선 앞에서 이순신은 북채를 거듭 내리치며 적을 박살내라고 독려하고…. 마침내 왜군이 스러져 갈 무렵 장군은 "이 원수들을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으련만" 이란 마지막 소망을 부하들에게 일러주고 순국한다.
이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이 그의 순국 4백 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재현된다. 이 국립극단의 연극에는 이순신의 영웅적인 면만이 아니라 고통과 번민의 갈림길에서 고뇌했던 인간적 면모를 깊이 있게 그려낸다. 임란 당시 주변국과의 역학관계를 드러내는 데도 힘을 기울인다. 총 1백 명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대작으로 무대에는 총 4척의 거북선. 판옥선. 왜선이 동원된다.
작가의 글 - 이길융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 왜적을 물리치고 전사하여 그 시신을 안치했던 고금도 본진 묘당 앞 해에 바다 안개가 끼는 날이면 거북선이 나타난다는 그 지방 전설이 있습니다. 고금도가 고향인 나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거북선을 보기 위해 안개가 바다에서 밀려오는 날이면 묘당으로 달려가 소나무 숲속에서 징구어 보다가 날을 새는 적이 종종 있어 집에 돌아오지 않는 자식들을 걱정한 부모님들께 꾸중을 들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거북선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습니다. 그런 데다 중국의 박물관과 일본의 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도자기를 구경하다가 중국의 도자기에 그려진 용의 발가락이 5개, 이조 도자기에는 4개, 일본 도자기에는 3개가 그려진 것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추적하던 끝에 사적(史籍)에 없는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관한 희곡을 구상하다가 거북선의 노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 온전한 용 발가락도 거북이 발가락도 가진 거북선이 국립중앙극장의 무대에 의연히 나타나 우리의 자존심을 되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일류 국가 배우들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공연을 하여 이순신 장군의 400주년을 추념한다니 당시의 선조들의 넋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게 되는 것 같아 한없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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