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이 이별한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지만 스탄과 오드레는 가장 잔인하고 난폭한 말을 융단폭격처럼 상대방에게 쏟아 붓는다. 마침표도 없고 쉼표도 없고, 논리와 이성이 무너져 버린 연인의 중언부언이 한참 이어진다. 파스칼 랑베르는 남녀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사적인 표현을 그대로 긴 모놀로그에 담았다. 문학적 수사를 걷어낸 거칠고 때론 잔인한 이 언어가 화려한 껍질에 가려져 있던 사랑과 이별의 속살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스탄과 오드레가 극장 안에 들어서고, 스탄은 “끝이야”라는 말로 길고 긴 모놀로그를 시작한다. “헤어지자” 한마디 말고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지만 아니다. 스탄은 온갖 잔인하고 난폭한 표현들을 복부에서부터 끌어내 오드레에게 쏟아붓는다. 스탄의 공격이 무려 50분 동안이나 이어지고 난 뒤 드디어 오드레가 반격한다. 스탄이 내뱉었던 말들을 다시 고스란히 그에게 돌려보내며, 거칠고 무시무시한 언어를 예리하게 별러 스탄의 온몸에 비수처럼 내꽂는다. 어떤 이별이 이보다 더 잔혹할 수 있을까, 한바탕 전쟁을 치른 두 사람은 극장을 나서면서 상대에 대한 사랑도 완전히 닫아 버린다. 하나였던 세계도 이로써 완전히 분리된다. 알고 보면 처음부터 너무 달랐던 둘은 그 차이에 매혹되어 연인이 되었다. 사랑하는 동안 서로 많은 것을 약속했고 둘의 눈빛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고 상대방을 자신의 일부처럼 여겼다. 이별은 그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다. 모든 걸 속속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한순간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어 있는 것, 서로를 향하던 눈빛이 방향을 바꾸는 것, 함께한 약속이 무의미해지는 것, 이 모든 변화를 깨닫고 결국 인정해야 하는 것이 이별임을 스탄과 오드레의 긴 모놀로그가 말해 주고 있다.
"다 끝났어!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 사랑이 생명을 품은 존재라면, 그 사랑이 끝을 맺는 이별의 순간은 처참한 살인 현장과도 같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그저 온몸으로 버티며 한때 존재했던 행복이 사그라드는 현실을 지켜봐야 한다. 연극 `사랑의 끝`은 2011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돼 전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안된 화제의 작품. 프랑스의 극작가 겸 연출가인 파스칼 랑베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녀 관점에서 냉혹한 헤어짐의 순간을 그렸다.
무대엔 두 사람이 있지만 대사를 쏟아내는 건 언제나 한쪽이다. 120분의 공연 전반부에선 지현준이 선공에 나서고, 후반부는 문소리의 반격으로 채워진다. 배우들은 꼿꼿이 서서 50페이지 분량의 대사를 남김없이 소화한다. 그들이 외치는 독백 외에 별다른 동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연인을 향해 죽일 듯 쏟아내는 속사포는 충분히 잔인하고 파괴적이다. 듣는 사람도, 내뱉는 사람도 탈진할 만한 `언어 전쟁`이 이어진다.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남녀를 보고 있자면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붕괴 현장을 보고 있는 듯하다. 둘 사이에 존재했던 `사랑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버리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그들은 그간 담아왔던 말 중에 가장 아픈 말로 상대방을 찔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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