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봉기 '사랑이 온다'

clint 2016. 11. 12. 12:03

 

 

 

 

 

캄캄한 창고를 더듬으며 남편의 지팡이를 찾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의 욕설이 이어진다. 아내는 겨우 찾은 지팡이를 직접 건네지 못하고 맞을까 두려워 남편에게서 조금 떨어진 마루에 걸쳐놓는다. 이 부부의 삶, 가족의 삶이 어땠을지 한순간에 그려진다아버지의 학대를 버티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간 아들은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빚을 `정산`하기 위해 집에 돌아온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가득 한 아들이 앙갚음을 위해 아버지와 마주한다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회는 어쩌면 공정한 사회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고받는 것을 `폭력`이라는 사회적 악과 결부시켰다. 폭력은 또 다시 폭력을 낳는다고 했듯 아들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일 듯이 미워하면서도 결혼할 여자와 주변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끝나지 않는 가정폭력, 나아가 사회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 속에 이 악마 같은 짐승새끼를 죽이기 전에는 나 사람새끼로 살 수 없어요. 나도 정말 사람새끼로 살고 싶다고요!"

아들은 오열하듯 소리치며 아버지 때문에 자신 속에 자라게 된 짐승을 죽이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정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여자를 데리고 또 다시 집을 찾았을 때도 그 정산은 차마 이루지 못한다세 번째 여자와 다시 온 아들은 순화된 모습이다. 폭력으로의 앙갚음이 아닌 다른 방법을 택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신이 가한 폭력의 상처로 죽을 만큼 괴로워하며 발작을 일으키는 여자를 지켜보는 것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폭력적 욕구는 남아있지만 그 욕구를 진정시킬 출구를 찾은 것이다아들 뿐 아니라 부부의 모습도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다리를 절던 남편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첫 장면에서 남편의 눈치를 보던 아내는 어디가고 잔소리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남편의 뺨을 스스럼없이 툭 때릴 때 관객들은 속이 시원할 법도 한데 씁쓸한 웃음이 날 뿐이다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못 다한 `정산`을 대신 실행한다. 극의 마지막에서 검은 비닐봉투로 남편을 살인하고 자신도 나란히 앉아 자살함으로써 폭력성에 대한 깊은 뿌리를 뽑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남편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아---"를 반복한다. 우리사회 깊이 스며든 가부장성, 폭력성의 정화에 과연 어떤 고통과 인내, 사랑이 필요할까 생각하게 한다.

 

 

 

 

 

 

 

연극 <사랑이 온다>는 현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가정폭력으로 상처 입은 개인이 사회에서 타인에게 범하게 되는 폭력의 연장과 그 폭력으로 인해 치유 받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아들은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죽여 자신 안의 짐승, 즉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폭력이 폭력으로 대치된 이와 같은 대립은 해소되지 못하고 또 다른 상처를 내고 만다. 이러한 상처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고통과 대면함으로써 치유받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이는 치유는 여타의 작품과 달리 용서와 화합이 아닌 체념과 또 다른 폭력으로의 전이의 형태를 띠고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반복되는 행위로 나타난다. 다만 지나간 행위만이 마침표를 찍을 뿐이다. 이러한 행위를 인식함으로 겪게 되는 고통은 다름 아닌 극단적인 치유의 방법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폭력과 독을 성찰하고, 깊은 고통으로 그것들을 정화해 내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사랑의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배봉기

 

생년월일 : 1957.6.29

현 광주대학교 인문사회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등단 : 1981년 삼성문학상 장막희곡 흔종』

학력 :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문학석사와 박사 취득

수상 경력 :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희곡부문 신인상

1994년 국립극장 장막공모 입상

2008년 한국연극 100주년 장막공모 당선

 

1989/5, 서울연극제 흔종』, 극작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990/5, 서울연극제 불임의 계절』, 극작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05/10, 은하궁전의 축제』, 극작가, 정보소극장

2008/12, 인간의 시간』, 극작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1/11, 사랑이 온다』, 극작가, 백성희장민호극장.

2015/5, 서울연극제 물의 노래』, 극작가, 마포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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