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clint 2016. 11. 11. 12:50

 

 

공지영의 소설 제목과 똑같기에 헷갈리지 말도록!

 

깊은 산속 목불상을 만드는 작업장이 배경이다.

이곳에 3, 40대 남자 세 명이 목불을 만들고 있다. 덩치 크고 말 많은 마귀와 야무진 까치의 지루하지 않은 대화가 초반을 이끌어 가고, 한쪽 팔이 없는 무명이 말 수 적게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으나 집중을 못하는 사연이 있는 듯하다.

이곳에 한 여인이 등장하면서 활기를 띠는데 미월이란 30대 중반의 여자로 곱상하고 잘 빠진 몸매지만 다리를 약간 저는 모양새다. 미월에게 잘 보이려는 마귀와 까치의 경쟁과 이후 둘이 있을 때 무명과 미월의 대화가 과거 둘 사이의 예사롭지 않은 관계였음을 나타낸다. 덫으로 잡은 멧돼지를 같이 먹고 흥겹게 놀던 중 돌연 나타나는 큰스님... 큰 스님은 살생을 한 남자 셋을 단체 기합을 주고 단단히 혼낸다. 스님을 통해 밝혀지는 이들의 과거 사연들도 고개를 끄떡이게 하고 서로 장애인이면서 어느 사창가에서 만난 미월과 무명의 얘기도 가슴 아프다. 무명은 부처상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고 그녀를 떠나 10년간 여기에서 일하던 것이고 꼭 돌아오겠다는 무명의 말을 믿고 기다리다 그를 찾아 나선 미월이다. 작품 말미에 큰스님과 무명의 난상토론도 의미 있게 와 닿는다. 그들의 화두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이다. 이는 해석이 갈라지는데 결국 큰 스님의 말대로 무명과 미월은 극적인 화해로 이곳을 내려간다.

 

201611월 현재까지 공연이 안 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전의 몇 작품을 통해 김원이란 작가를 눈여겨 본고 있다. 작품에 내공이 엿보인다.

  

 

    

 

심사위원의 평

옥랑 희곡상자유소재부문 당선작이다.

연극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연극계 안에 있는 사람들마저 공연의 어려움을 잘 알지 못한다. 옥랑희곡상을 제정해서 운영하는 옥랑 문화재단은 당선작의 공연을 반드시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요즘 연극 한 편의 제작비가 소극장 공연은 최소한 5천만 원 내외, 대극장 공연은 1억 원 정도가 든다. 옥랑 희곡상은 해마다 두 분야에서 당선작을 내고 있다. 그러므로 당선작을 공연하는 데는 최소 1억에서 2억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을 감당하기란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옥랑 문화재단이 동숭아트홀과 영화관이 있으므로 매우 풍부한 재정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옥랑 문화재단의 활동영역이 오직 연극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옥랑 희곡상의 상금과 수상작 단행본 발간 비용 이외에는 부담하기 어렵다. 옥랑 희곡상의 당선 작가는 공연하기 위해 다른 문화재단에 지원금을 신청해보지만 작품을 번번이 거절당한다. 왜냐하면 문화재단이 또 다른 문화재단의 수상자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랑 희곡 상을 수상한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다른 문화재단에 신청해서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만약 옥랑 희곡상이 없어진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다섯 손가락도 채 꼽지 못하는 희곡상 하나가 없어지는 아쉬움도 크지만, 우리에게 전통과 역사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소멸되는 상실감이 더 큰 것이다. 옥랑 문화재단은 물론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깊이 헤아려 옥랑희곡상이 계속 되는데 도움이 있으면 좋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10회 옥랑 희곡상 예심에 오른 작품은 신화·사화·설화 소재 부문운현궁 오라버니, 천년물살, 홍분(紅松), ‘청산에 살어리닷다등 네 편이었고, <자유소재 부문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진미식당, ‘Run’, 개꾼‘, 등 여섯 편이었다. 예심위원으로는 연출가 박근형, 연출가 이성렬, 연출가 최용훈 세 분이 맡았다.

본심 심사위원은 극작가 이강백과 연출가 심재찬 두 분이었다. 예심에 오른 작품들을 꼼꼼히 읽고 장단점을 검토해서 각 분야마다 두 편으로 압축하였다. <신화 · 사화 · 설화 소재 부문에는 운현궁 오라버니홍분(紅松)J 이 남았다. <자유소재 부문에도 두 편이 남았는데 개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다.

운현궁 오라버니는 마치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조용한 연극을 연상시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의도적으로 극적 사건을 배제하면서 치밀한 묘사를 통해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 장점이라면, 단점은 역시 그것이 히라타 오리자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매우 매력적이다. 우전 소재가 일제에 의해 찬탈당한 대한제국의 황족 이우(고종황제의 손자이며 의친왕의 아들)를 극화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일제 식민지 초기의 근대적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우는 대가 끊어지게 된 홍선군의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운현궁의 주인이 된다. 친형인 이건과는 달리 일본이 정해준 일본 황족과의 혼인을 완강히 거부하고 박영효의 손녀와 결혼하였다. 또한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일본 군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은밀히 독립운동을 도모하였으며, 이것이 발각되어 일본으로 소환돼 히로시마 원폭으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한 비극적 인물이다. 이 작품은 이렇듯이 드라마틱하고 매력적인 인물과 운현궁이라는 특수 공간, 이방자 등을 포함한 왕족의 생활 동 독자와 관객을 사로잡을 요소들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그러한 요소들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일상성의 구체적 표현,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거리두기, 구체적인 사실들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표현 등, 작가의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홍분은 남성·여성을 한 몸에 지닌 양성인 소재를 흥미롭게 다룬 작품이다. 세조실록에는 양성인간의 기록이 수차례 등장한다. 여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비구니나 양반집 부녀자를 희롱했던 양성인간을 세조가 장애인이라며 특별사면해주는 기록도 있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를 택해 세조라는 역사적 인물과 겸이라는 작가의 상상이 만든 양성인간을 등장시켜 아주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건의 필연성이 부족하고,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다소 피상적이라는 것이 결점이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 끝에 운현궁 오라버니신화 · 사화 · 설화 소재 부문의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현장에 입회한 옥랑 문화재단의 직원이 당선작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이름을 공개하였다. 운현궁 오라버니를 쓴 신은수 씨는 몇 해 전에도 최종심에 오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이기도하다자유소재 부문은 심사가 순탄하지 않았다. 예년에 비해서 응모작들의 수준이 높은 것 같지 않고, 서로서로 비슷하였다. 약간씩 소재만 다를 뿐 독창적인 작가의 발상과 표현이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서 개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끝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개꾼은 동장인물의 성격구축도 무난하며 장면의 연결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극이 시작되어 얼마 가지 않아 결론이 뻔하게 보이는 점이 유감이다. 그리고 투견이 벌어지는 장소의 긴박감이 어떻게 무대 위에 표현 가능한가, 그 점도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이러한 점들을 보완한다면 개꾼은 좋은 작품이 될 소지가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작가의 공력이 느껴지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갈등 구조가 단순하다. 또한 장황한 대사들이 극의 진전을 방해한다. 본심 심사위원은 개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중에서 고심 끝에 후자를 당선작 아닌 우수작으로 뽑았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것은 오직 때리기 위함이 아니다. 좀 더 노력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옥랑 문화재단은 응모자의 이름을 나중에야 공개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쓴 작가는 김원이다. 김원은 몇 해 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당선자이다. 이번 옥랑 희곡상당선자들은 공통점이 있다. 이미 단막희곡에서 둘 다 실력을 입증하였다. 그리고 장막희곡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과정에 있다. 옥랑 희곡상이 신예극작가들에게 바로 그러한 통과점이 되는 것을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한다. 두 극작가의 앞날에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예심위원 -박근형, 이성렬, 최용훈

본심위원 -이강백, 심재찬

 

 

당선소감 : 김원 

복잡한 서울을 떠나 문경으로 갔다그곳에 있는 동안 글에만 전념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짐과는 다르게 풀리지 않는 머리와 잡념들로 나는 매일 무너졌다. 일 안 하는 놈은 쌀 한 톨 입에 넣어선 안 된다농부가 피땀 흘려 키워낸 곡식은 노동을 이겨낸 자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므로골통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빈둥거리는 나 같은 놈은 밥을 먹어선 아니 되는 것이다그렇게 다짐했지만,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남의 과수원에서 몰래 사과를 따 먹는 나를 나는 경멸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 경멸의 계절을 보낸 나의 변명거리이다무조건 놀고먹은 건 아니에요, 이렇게 글도 썼어요. 라고 그럴듯한 변명을 내세워보지만, 결국엔 쥐구멍만 찾고 있다나같이 게으른 놈이 상을 받게 되어 부끄럽다. 글을 더 열심히 써야겠다밥숟가락 드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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