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근호 '살인교습'

clint 2016. 11. 10. 18:47

 

 

 

한국청부살인단기속성반에서 출장단기속성반을 개원하다. 단기속성반 살인교습에 학생 하나가 기웃거리며 들어온다. 학생은 그곳에서 그토록 자신이 존경했던 불광동 쓰메끼리 도끼 살인사건, 몸부림 카바레 복부인 납치 생매장 사건의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창조! 창조! 창조적 살인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전설의 킬러이자 출장단기속성반 선생이 제자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창조적 살인! 살인의 장르 중 하나라도 무단표절 및 무허가 사용 했을 경우 처절한 피의 응징을 받게 됨을 직접 확인시켜 준다. ‘우리 선생님들이 창조적인 살인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대가리에 쥐나도록 새빠지게 노력한 것을 잊어선 안 된다’며 살인의 저작권, 지적재산권을 각인시킨다. ‘저작권 보호는 이 나라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라는 말은 남의 것을 눈 하나 깜빡 안하고 도용하는 요즘 사람들을 비방하는 듯하다.
살인에도 창조적 살인이 있다?! 과연 그 창조의 고지는 어디까지인지, 상상보다 무서운 살인의 세계에 한번 미끄러져 내려가 보는 것이 어떨지!

 

 

 

 

 

 작가의 글/차근호
'살인교습'은 잔혹 풍자극이다. 이 작품이 화살을 겨누고 있는 대상은 현재 한국 문화계의 뜨거운 감자인 저작권과 외국문화의 개방과 수입이다. 이 작품에 잔혹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살인 교습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 교습은 이 작품의 풍자성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지적재산권인 저작권의 보호는 창작자의 생활과 창작의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창작자의 왕성한 창작활동은 곧 이 사회의 문화적 풍요로움과 직결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표절, 작가의 승인 없는 작품의 인터넷 게재, 무단 공연 등이 도둑질과 같은 불법 행위라는 사실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장 작업자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저작권의 의미와 그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 물론 이 작품이 잔혹 풍자극인 만큼 가능한대로 계몽적인 색깔은 배제하고 극의 상황 안에 녹아나도록 노력했다.
이와 함께 외국문화의 개방과 무차별적인 수입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문화는 경제논리와 시장논리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발전은 스크린 쿼터라는 보호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화는 한 국가, 한 민족의 정신이다. 정신은 무역이나 상업을 통해 거래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위정자들이 세계화를 운운하며 정신을 담고 있는 문화를 일개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 상황은 매우 우려할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 작품이 저작권과 세계화란 담론에 떠밀려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의 문화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풍자하는 촌철살인극(寸鐵殺人劇)이 되기를 기대한다.
'살인교습'은 극단 나모(Namo)가 처음으로 발표하는 작품이다. '살인교습'은 내년에 예정되어 있는 극단 나모의 창단기념공연인 '우리는 땅에서 난다'의 예비작업이다. 이 작품이 극단 나모의 발걸음에 든든한 토대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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