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황석영 '항파두리놀이'

clint 2016. 11. 9. 10:53

 

 

 

애월읍 고성리 항파두리 유적지에 가보면 본도 고유의 신당이 없다. 그 이유는 "항파두리에는 김통정장군이 워낙 세어서 신당을 모실 수 없었다" 한다. 신당은 외세에 도전하는 내부의 응집력이요, 민중생활의 중요한 기반이다. 민중의 옹호자로서 그들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고, 가난과 설움을 위무하며, 고통과 질병을 쫓아주던 신당의 부재는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신당이 없는 곳에는 장수전설이 있다. 민중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신화를 잃어버린 대신에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설을 남긴다. 전설은 역사적 인물을 민중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전설 속에서 '김통정'은 지렁이와 과부의 혼구에서 태어난다. 민중들 속에서 구전되는 '지렁이 질자질통정'이라는 김통정의 인물설명에는 징그럽고 경멸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가정을 세웠다. 지렁이나 이무기가 상징하는 불길한 징조를 외세의 침입, 그리고 정조를 지킬 수 없었던 과부의 입장을 선량하고 무지한 민중이라 한다면, 외세는 민중에게 침입하고 결탁하여 '질통정' 즉 불행을 낳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민중의 보편적 삶의 질서를 인격화한 영웅은 인간적인 신이다. 민중의 보편적인 삶의 리듬이 깨어진 자리에 존재하는 김통정은 신도 영웅도 아니다. 다만 김통정은 민중의 불행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항파두리놀이"는 이러한 차원에서 김통정을 비천한 인물로 그렸고, 반면에 현실긍정적인 민중의 삶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파악하려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연극의 공동창작 과정에서 몇가지 관점, 즉 몽고 침략자의 입장이나 고려조정의 입장, 삼별초의 입장보다는 탐라토착민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조망함으로써 역사적 위기에서의 민중적 대응양식과 그 정당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재확인하고자 하였다.

 

 

 

 

 

1. 재판마당
첫 째 - 작별거리
서장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연극의 진행은 삼별초가 전멸한 직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김통정과 촌장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서 항몽의 동반자이나 결국은 결과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민족의 중심부는 어디이며 그 원천적으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촌장으로 하여금 진술케한다.
둘 째 - 문답거리
혼도와 홍동구 그리고 김방경, 토호의 순으로 촌장에게 지루한 질문이 쏟아진다. 침략자와 투항세력이 풍자되고 있으며, 토착민의 강건한 저항의지를 나타낸다.
2. 장수마당
첫 째 - 토호거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삼별초가 쳐들어 오기 직전에 토호세력과 맞잡은 고려조정 방어군에 의해 백성들이 시달리는 내용이다. 백성들은 제주해안 주위 삼백여리에 환해장성을 쌓는 고통을 겪는다.
둘 째 - 삼별초거리
삼별초가 제주를 점령하게 되자 백성들은 그들의 군사기지화된 생활 환경속에서 문명과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각종 노역과 잡역에 시달리게 된다.
3. 축성마당
항파두리 성을 쌓는 과정을 놀이화 함.
4. 호구별성마당
삼별초를 치기 위해 추자도에 기항한 몽고 침략군들의 야욕과 속국화한 고려 조정의 비애를 풍자.
5. 싸움마당
첫 째 - 파군봉거리
항파두리를 사수하는 삼별초군. 사람으로 성을 만들고 학익진, 예진 등 진법을 참조함.
둘 째 - 항파두리거리
삼별초군이 처음으로 여몽연합군에게 패배
셋 째 - 붉은 오름거리
삼별초의 최후를 높이형식으로 표현
6. 참수마당
다시 첫째마당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서 침략자에 의해 촌장의 재판이 계속된다. 촌장에게 복속을 강요하나 촌장은 끝내 거부하다. 김통정의 자결과 촌장의 참수형이 동시 진행된다. 초혼 굿을 통하여 백성의 강건한 삶의 의지는 되살아난다.

 

 

 


<항파두리놀이>는 제주 지역의 놀이패 수눌음의 1980년도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과 제주도를 근거로 이들에 저항하던 삼별초, 그리고 그 틈새에서 고통받던 제주도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주 지역의 전통굿을 기본구조로 한 이 작품은 오랜 세월 동안 전설처럼 전해져 오다가 1988년 수눌음을 계승한 놀이패 한라산에 의해 재공연되어 제주시, 서귀포시, 서울(제1회 민족극한마당)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나기도 하였다. 극작·연출 노트(1988년 놀이패 한라산 공연) 애월읍 고성리 항파두리 유적지에 가보면 본도 고유의 신당이 없다. 그 이유는 “항파두리에는 김통정 장군이 워낙 세어서 신당을 모실 수 없었다” 한다. 신당은 외세에 도전하는 내부의 응집력이요, 민중생활의 중요한 기반이다. 민중의 옹호자로서 그들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고, 가난과 설움을 위무하며, 고통과 질병을 쫓아주던 신당의 부재는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신당이 없는 곳에는 장수전설이 있다. 민중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신화를 잃어버린 대신에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설을 남긴다. 전설은 역사적 인물을 민중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전설 속에서 ‘김통정’은 지렁이와 과부의 혼구에서 태어난다. 민중들 속에서 구전되는 ‘지렁이 질 자(字) 질통정’이라는 김통정의 인물설명에는 징그럽고 경멸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가정을 세웠다. 지렁이나 이무기가 상징하는 불길한 징조를 외세의 침입, 정조를 지킬 수 없었던 과부의 입장을 선량하고 무지한 민중이라 한다면, 외세는 민중에게 침입하고 결탁하여 ‘질통정’ 즉 불행을 낳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민중의 보편적 삶의 질서를 인격화한 영웅은 인간적인 신이다. 민중의 보편적인 삶의 리듬이 깨어진 자리에 존재하는 김통정은 신도 영웅도 아니다. 다만 김통정은 민중의 불행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항파두리놀이>는 이러한 차원에서 김통정을 비천한 인물로 그렸고, 반면에 현실긍정적인 민중의 삶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파악하려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연극의 공동창작 과정에서 몇 가지 관점, 즉 몽고 침략자의 입장이나 고려조정의 입장, 삼별초의 입장보다는 탐라토착민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조망함으로써 역사적 위기에서의 민중적 대응양식과 그 정당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재확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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