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흥우 '조신의 꿈'

clint 2016. 11. 9. 10:48

 

 

 

<조신의 꿈>은 불교설화<조신>을 원천으로 삼은 희곡이다. 꿈속의 사건으로 시작되어 꿈을 깨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그림액자와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신’ 스님의 꿈이 액자 속의 그림이라면, 꿈에서 깨어나 깨우침을 얻고 불도에 정진하리라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이 액자의 틀이다. 꿈속의 이야기는 속세와 지옥에서 일어나는 삶의 업보를 말하기 위한 장면들이라면, 꿈을 깬 이후의 장면은 불교적 깨달음의 시공이다.
꿈에서 '조신'은 화랑 왕굴의 약혼자인 달례 아씨를 애절히 사랑한다.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갈망한 조신은 달례와 함께 도망을 가서 서로 사랑하며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세속적 삶의 질곡 속에서 항상 고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적 의지와 세속적 감성의 분주한 갈등은 사천왕들과 악귀들에 의해 시종 무대화된다. 하지만, 세속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조신은 자신의 도피처를 밀고한 친구 해광스님을 죽이며, 달례는 조신을 죽이려던 왕굴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속세의 삶은 감미로움이 아니라 결국엔 모두의 불행으로 끝난다. 세속적인 삶의 논리가치를 좇으며 살아온 결과 모두 죽어 지옥에 떨어졌다. 그러나 지옥에서조차 모두 자신의 잘못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죄를 지어놓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몽매함이 강조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그 논리는 다소 엉성하지만, 세속에서의 삶은 모두 부정된다. 불교적 세계관에서 속세의 모든 삶이 부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뮤지컬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의 논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니다. 다양한 리듬과 템포를 지닌 음악과 율동의 앙상블, 그것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볼거리가 연극적 상호교감의 기재이다.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의 아름다운 선율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동국대학교 개교 8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극<조신의 꿈>은 가장 동국대학다운 레퍼토리 선정이었다. 이미 지난해에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자체적인 개교 기념연극 ‘고연전’이라는 대학의 축제극을 벌였을 때 전혀 축제극답지 않은 레퍼토리 선정에 불만이었던 우리는 비로소 대학이 가진 성격의 일부를 극화 속에 융해시킨 동국대학의<조신의 꿈>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조신(調信)의 이야기는<삼국유사>에 나오는 불교적 예화(例話)와 선교의 표본이다. 삶이란 꿈이요, 셰익스피어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연극이다. 따라서 연극이 꿈이고, 꿈이 연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꿈 한번 꾸고 득도하는 조신 같으면 누가 꿈꾸지 않으랴. 꿈꾸는 대신에 연극 한 번 하면 그것이 꿈꾸는 삶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연극을 통해서도 득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조신의 꿈>을 통해 우리의<삼국유사>가 그려 놓은 연극의 한마당을 높이 평가한다.

현실적으로<조신의 꿈>은 김흥우(金興雨) 극본에 김효경(金孝經) 연출이고, 미술 홍순창, 장치 제작 동대 연영과, 안무 강만흥, 음악 김덕수 그리고 사물놀이가 참여하였다(1985. 6.3-18, 문예회관 대극장). 남가일몽(南柯一夢)처럼 덧없는 한때의 부귀영화가 조신의 경우에는 덧없는 사랑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부귀영화만이 아니라 사랑도 덧없는 것이므로 인생 자체도 덧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이 연극으로 보이고 꿈으로 간주되는 연극 또한 덧없다. 그런 덧없는 인생을 연극을 통해 의미부여를 하는<조신의 꿈>은 몇 가지 연극적 기능을 통해 불교의 선교적인 의미와 연극예술의 미학적 기능이 서로 교류함으로써 이 땅의 종교적 선교의 방법론에서, 그리고 선교수단으로서의 연극론에서 뜻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조신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그것은 불교적인 교훈과 선교의도 때문에 극적인 요소가 제거된다. 그러나 작가나 연출가는 그 제거된 극적인 요소를 어떻게 무대에 살려 내느냐에 재능을 쏟는다. 그리하여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세계와 종교적 회심의 극점에 불을 댕기는 극본과 연출은 단순하고 소박한 줄거리에 활력소로서 불교음악적 요소와 군무 형식을 도입하는데 그 군무 자체가 불교적 선교 목적에 적합하면서 연극적 효과면에서도 기여한다. 안무는 세 타입으로 구별된다. 하나는 색도를 경계하는 에로스의 미학인 요녀들의 춤이고 또 하나는 사천왕의 춤, 혹은 12나한의 춤으로 힘차고 계도적이다. 세 번째는 지옥의 아비규환을 형상화한 발푸어기스<(파우스트)>의 난장 장면이다. 물론 그 외에도 조신이 꿈속에서 행방을 숨기기 위하여 동료였던 해광 스님을 죽일 때도 해광의 분신들이 어울리는 장면이 있다. 이런 군무 형식의 집단성은 득도에 이르는 개인적 해탈과 대응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동시에 그 집단은 개인의 성향도 결코 단선적일 수 없는 복합적인 함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출 김효경이 설정한 안무의 장면들은 가장 불교적이면서 연극적이다. 막이 오르면 탱화의 투사 속에 베일 저편은 요녀들의 춤판이다. 그것은 색정에 사로잡힌 조신의 번뇌를 말하는 것으로, 무대배경에 섬세하게 변화되는 주명과 함께 연극 진행이 극히 심리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실 꿈은 심리현상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사건이 거의 없다. 어쩌다 달례(이현정, 더블 캐스트-정수정임예진) 아씨를 연무하게 된 조신(정상철, 더블 캐스트-김동완)이 그녀와의 결합이라는 이룰 수 없는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함께 출분, 긴 세월을 숨어 살다가 그의 거처를 알게 된 해광(손호익, 더블캐스트-이덕화 외) 손에 죽음을 당하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업보와 윤회의 꿈 같은 인생살이를 훤히 꿰뚫어 보는 낙산사 용선스님(김무생, 더블 캐스트-정진고인배)의 서민용 설법과 예화 이상일 수 없다. 득도는 어쩌면 심리적인 초월일 것이다.

따라서 김흥우 극본은 조신의 행적을 삼국유사 이야기만큼도 전개시키지 않고 심리적 처리로 군무 형식화했다. 그렇게 되면 줄거리를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사건이 없으므로 연극적으로 재미가 없어진다. 원전에 의하면 40여년을 함께 산 조신부부는 5남매를 두고 재미있게 살다가 아이도 죽이고 병들고 가난해져 결국 남가일몽 가운데 온갖 삶의 고통을 다 겪게 되는데 그런 극적인 모티브는 전혀 활용되지가 않는다. 따라서 출분해서 40여년이 흘러 해광을 다시 만나고 왕굴에게 죽음을 당하는 과정까지가 전혀 그려지지 않음으로써 조신의 내적 세계가 극적 갈등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직 안무에 의한 간접적 표현으로 형상화된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우선 연극이니까 반드시 극적인 표현술로 줄거리를 선명하게 하는 것만이 능사냐 하는 문제와 그런 극적인 효과를 다른 공연예술 형식으로 분담시키는 방법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조신의 꿈>은 이미 줄거리 전달이라는 사실주의 연극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극적인 효과를 다른 공연예술 형식에다 분담시키는 방법이 남는데 그 점에 있어서 연출은 총체적인 축제극의 형식을 빌리고 줄거리 자체보다, 혹은 파계승 조신의 개인적 세계보다 불교적 대학 축제극으로 주제를 확대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됨으로써<삼국유사>의 작은 예화는 불교 선교극의 작은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보다 보편적인 축제봉납극 형식으로 승격되어 단순한 선교 의식에서 총체극으로서의 즐거움을 창출해 낼 수가 있게 된다. 즐거움의 창출에 있어서 실패한<조신의 꿈>은 보다 대담한 축제극의 모형을 도입하지 못함으로써 엉거주춤한 상태로 막을 내리는데 그것은 안무의 극화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안무의 연극적 기여는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함께 그 세계의 형상화에 미쳐야 할 것이다. 의상과 의물(儀物)마저 그만큼 갖추었으면 그 극화는 인물상의 개체적집단적 조형까지 갔어야 했고 특히 지옥 장면의 카오스 상태와 요녀들의 에로티시즘에서 가장 극적으로 고양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불교 선교극의 차원을 넘어 이른바 종교극의 총체예술화 및 시조(始租) 전승극의 극화에 한 시범이 됨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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