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도후 '상간(相姦)'

clint 2016. 10. 26. 14:53

 

 

 

이 작품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각종 난치병의 근원을 비정상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고 이를 반추(反芻)하는데 있다. 사실 올바른 관계는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올바른 질서를 만들어 주는 등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잘못되거나 변태적인 관계는 우리를 엉뚱한 혼돈 속으로 몰아갈 뿐이다. 예를 들어 강이나 바다의 물 속엔 고기나 거기에 필요한 것들만이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폐수나 각종의 쓰레기들이 물 속에 들어가 관계를 맺음으로서 더 이상 치유하기 힘든 오염의 근원으로 변했고 이러한 현상은 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정치 . 경제 . 문화 . 교육 등-에서 조차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관계로 인하여 폭발 일보 직전의 상태로 이미 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근친상간의 문제를 통하여 우주적이고 근본적인 혼돈의 문제를 파헤친 작품으로 페미니즘 연극인 마샤 노먼의 원작 '잘자요, 엄마'를 완전히 번안, 각색하여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과 며느리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극단무연시극단, 한샘극단 공연으로 부산 연극계에 대단한 화제를 모았던 연극이다.

 

작가 겸 연출의 글:
동이 틀 무렵, 언제부턴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자리했을 범어사 기슭에 오른다. 아직은 그런 대로 맑아 보이는 계곡 물의 음률을 벗삼아, 낙엽이 뒹구는 산길을 따라, 풀숲에서 간간이 들려 오는 산 친구들의 노래에 맞춰, 매서운 바람을 등에 지고 그렇게 오른다. 멀리서 피를 토하듯 솟아오르는 붉은 해에게서 미쳐 피하지 못한 가련한 몇 개의 별만이 마지막 숨을 내뱉듯이 아른거리다 사라져 간다. 난 일상에 지치고 차일 때마다, 일상을 향해 몸부림치며 탈(脫)할 때마다, 육신들의 부대낌 속에서 멀미할 때마다, 이런 하늘을 쳐다보며 그냥 그렇게 한참 동안을 휑하니 있는 버릇이 있다. 한참 전에 난 사라져 가며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어린왕자의 별을 만나는 행운을 가졌고 우리는 밤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어린왕자의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기하던 너무나 무서운 검은 물체들이 우리를 방해하려고 발광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 슬퍼져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빗물이 되어 훼방꾼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며 돌진한다. 비가 승리하고 다시 환한 밤을 가슴에 맞이하려면 검은 물체들은 다시 배로 증가해 그 수를 뽐내며 하늘을 점령한다. 이제 더 이상 밤하늘에서 어린왕자를 만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밤마다 만나고 있다. 검은 무리들은 너무 검해 우리의 영혼 깊숙이 각인 되어 있는 정말로 투명한 밤하늘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난 얼마전 누군가에게 '연극을 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한참을 망설이며 명확한 답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나에게 그는 웃으며 "미쳤으니까......!"라고 대신 말을 끝내더니 날 측은히 쳐다보고는 술잔을 권했다. 그날 밤 난 심한 두통과 허탈로 뒤척이는 내 자신을 보았다.
A.D.1981년, 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연극의 신(神)인 '박카스'의 신도가 되었다. 그후 5년간, 난 '박카스교'의 광신도로 변해 버린 내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후 3년간, '박카스교'의 한 분파로 광신도 10여명과 개척을 위해 독립해 서양의 '박카스교'가 아닌 토착적인 우리만의 '한국적 박카스교'를 만들려고 몸부림치다 '박카스교' 기층 세력과의 마찰로 와해됐다. 그후 6년간, 수도승처럼 폼잡으며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후 2년간, 속세로 돌아와 기층 세력과의 타협을 위해 아부하는 지치고 외로운 몰골의 나를 보았다. 그후 오늘, 난 부산의 한 귀퉁이 범어사 입구의 이름 모를 지하실에서 그놈 '박카스교'의 실체와 본질을 밝히기 위해 신음하고 있다.
혼돈.......!
삶...............!
평등...............!
죽음....................!
그리고 자유...........! 그리고 혼돈..........! (199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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