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장 지로두 '옹딘'

clint 2016. 6. 25. 16:15

 

 

 

 

 

 

 

프랑스 연극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번영을 누렸다. 그것은 자크코포(JacquesCopeau)의 지도하에 탁월한 배우들이 배출되고 여러 전위극 극단이 설립되는 등극작가들의 창단의욕이 고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주의 극에 등을 돌리고 숭고하고 비장한 고전비극을 선호하게 된 관객 취향의 변화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

했기 때문이다. 고전극에서 널리 차용되었던 신화적 인물들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다시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신화 속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성행하면서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엘렉트라, 테세우스 등 고전비극의 주요 신화적 인물들 이야기뿐 아니라 정령이나 요정들의 이야기를 나타내 주는 작품들도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장 지로두의 <옹딘이라 할 수 있다.

 

 

 

서양 문학의 전통에서 그리스 신화나 켈트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님프, 세이렌, 멜뤼진 등으로 나타나는 물의 요정은 인간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과는 달리 영혼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인간과 물의 요정의 결합은 영혼이 없는 물의 요정들에게는 불멸의 영혼을, 인간에게는 최고의 여성 반려자를 허락한다. 하지만 자연의 신비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는 물의 요정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은 경탄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되며, 결국 이 결합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지로두에게 영감을 준 독일 낭만주의 작가 프리드리히 푸케의 동화 소설 <운디네>에서도 물의 정령 운디네는 기사 훌트브란트와의 결혼으로 영혼을 얻고 최고의 여성이 되지만,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있다.

프리드리히 푸케의 <운디네>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된 지로두의 옹딘은 루이 주베(Louis Jouvet) 연출로 1939년 아테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옹딘> 은 비평가들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어 성공을 거두었으나 전쟁 발발로 약 두 달 동안 68회 공연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지만 재공연이 기능해진 이후로는 루이 주베 극단이 공연한 지로두 연극 중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 되었다.

 

 

 

 

옹딘의 줄거리

방랑 기사 한스가 옹딘의 양부모인 어부 오귀스트와 외제니의 거처로 오게 된다. 한스는 그의 용맹성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는 약혼녀 베르타를 위해 숲으로 떠나 오랜 기간 방랑 기사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물의 요정인 옹딘은 한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른 물의 요정들은 한스가 옹딘을 저버리고 부정을 저지를 거라고 경고하면서 옹딘과 한스의 혼인을 반대한다. 한스와 혼인하기 위해 옹딘은 물의 요정들과 계약을 맺는데, 그것은 한스가 부정을 저지르면 물의 요정들이 한스를 죽이기로 하는 것이다. 한스와 함께 살면서 옹딘은 인간 세계에 난무하는 거짓과 배반 등을 알게 된다. 한스는 옹딘을 속이고 예전 약혼자 베르타와 부정을 저지르지만 그를 사랑하는 옹딘은 한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이 먼저 한스를 배신하고 바람을 피운 것이라고 소문을 낸 뒤 사라진다. 옹딘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재판하는 법정에 서게 되고, 그녀의 재판은 결국 사랑에 대한 재판으로 이어진다. 옹딘은 거짓 증언으로 한스를 구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한스의 죽음과 동시에 옹딘은 한스와 사랑했던 기억과 인간세계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

 

 

옹딘과 한스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지로두의 <옹딘>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준다.

<옹딘>에서 그려지는 인간 세계는 거짓과 배신과 불충실함의 세계로 표현된다. 한스와 결혼한 뒤 옹딘이 궁정에 소개되는 장면은 인간 세계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의와 공손으로 포장한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거짓을 말하고 행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세계가 드러난다. 이런 인간의 태도는 자연 자체이고, 온전하고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옹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거짓과 위선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옹딘에게 왕비 이죄는,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신들만의 영혼을 가지길 바라며 보편적인 공동의 영혼을 분할하여 보잘것없는 작은 영혼 단지'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빛이며 우아함이고 운명인 옹딘에게서 한스는 금발을, 장난꾸러기를, 하나의 연애 경험을 보고 그녀를 사랑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보잘것없는 작은 영혼 단지만을 지닌 인간과 자연 그 자체인 옹딘의 사랑은 애초부터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었을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불완전한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던가? 베르타와 약혼한 한스가 옹딘에게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그의 고백대로 옹딘이 세상이 지닌 가장 완벽한 존재이고 또한 사랑 자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옹딘이 이해하는 바대로의 사랑은 암컷과 수컷이 거의 한 몸인 것처럼 살아가는 작은 상어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한스는 그 이야기에 반박하면서 인간과 동물은 다르며, 암수가 늘 함께하는 작은 상어들과 같은 삶이 인간세계에서는 불능하다고 주장한다. 온전한 사랑 자체인 옹딘의 모습에 비하면 작은 영혼 단지의 소유자인 인간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 보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되는 게 완벽한 주부라고 생각하는 옹딘은 한스가 자신을 저버리고 부정한 짓을 저질러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베르타가 한스의 성에서 지낼 수 있게 배려한다. 이런 옹딘의 사랑은 왕비 이죄가 옹딘에게 사랑의 교훈'에 대해 감사를 표시할 정도로 인간세계의 사랑의 정도와 다른 것이다. 법정에서의 판결처럼 옹딘은 인간세계에 선함과 사랑을 가져왔지만 온전한 그녀의 사랑의 무게는 보잘것없는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이었다. 옹딘을 봉해 그려지는 사랑, 순수함과 충실함이 지켜지는 온전한 사랑은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어쩌면 오귀스트의 말대로 꿈에서나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옹딘의 꿈같은 이야기,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야기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지로두는 극중극 기법을 사용했다. 연극 속에서 또 다른 연극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시공간을 확장하면서 관객에게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보여 주고 이야기 전개속도를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대를 신비롭고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물의 요정 이야기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로두는 극중극을 총괄하는 연출가 역할을 보여줌

으로써 무대 공연에 대한 질문과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다. <옹딘은 다양한 연극 기법과 재치 있는 언어적 유희로 관객을 매료시키면서 초자연적이고 투명하며 순수한 세계와 단조롭고 평범하며 거짓과 불신의 세계 사이의 지속적인 갈등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타협적이고 불투명한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순수함과 충실함이라는 덕목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옹딘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온전한 사랑이 기능한 세계를 꿈꿔 볼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