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안톤 체홉 '상자속의 사나이'

clint 2016. 6. 23. 15:34

 

 

 

 

 

 

 

 

미로노시츠코예 마을의 이장 헛간에서 사냥꾼들이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반과 불킨은 베리코프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스어 교사인 베리코프는 날씨가 좋은 날에도 솜을 넣은 두툼한 외투 차림에 방수 덧신을 신고 우산을 챙겨든 채 외출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틈만 나면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라고 걱정하고 자잘한 걱정과 의심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또한 의무감으로 동료 교사의 집에 가서 한 시간씩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곤 한다. 그런데 베리코프가 있는 학교에 코발렌코라는 지리·역사 선생님이 부임하고 코발렌코 선생의 누이인 바렌카도 같이 마을에 왔다. 바렌카는 매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다. 교장의 명명일에 베리코프는 바렌카를 보고 그녀에게 빠지고 마을 사람들은 둘을 결혼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베리코프는 결혼의 책임과 의무 때문에 걱정이 되어 머뭇거리고 점점 자신의 상자 속으로 들어박힌다. 한편 코발렌코는 베리코프 선생의 사고방식을 못견뎌하고 그를 혐오한다. 아마도 체홉은 에니어그램을 아는 듯이 그의 작품에는 확실한 유형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전형적인 어떤 한 가지 유형을 대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상자속에 든 사나이>는 안전을 추구하는 형인 불건강한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이런 유형의 사람을 극단적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했는지 놀랍기만하다.이 상자속에 든 사람은 바로 안전에 무척이나 집착을 하는 사람이다. 잘 외출도 하지않고, 외출을 하더라도 우산을 늘 준비하며, 모든 사고에 대비하듯 사는 이남자는 신문도 무엇을 하지 말라는 공고문을 유심히 보며, 무언가를 금지한다는 문구를 유난히 좋아한다. 결국 사방이 막힌 자신만의 방에 갇혀서 지내며, 혼자의 사고속에 묻혀서 산다. 결국에는 마지막 네모난 상자인 관속에 묻히면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그 남자의 일생은 그렇게 끝이난다.

 

 

 

작품의 주인공은 라틴어 교사인 벨리꼬프이다. 그는 여러모로 보아 괴상한 인물이다. 아주 화창한 날씨에도 외출할 땐 항상 고무덧신을 신고 우산을 들고 다니며, 솜이든 방한 외투를 걸치는데, 높다란 옷깃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 겉으로 보기엔 자루 속에 들어있는 것만 같다.
또한 검은 안경을 쓰고 자켓을 입은 데다 귀까지 솜으로 싸고 마차를 타면 꼭 휘장을 두른다. 그의 침대는 흡사 상자처럼 작고, 휘장을 쳐놓았으며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써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현실은 그를 초조와 공포 속에 몰아 넣었고, 끊임없는 불안에 허덕이게 만든다.
자신의 지나친 조심증과 현실에 대한 증오를 변호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사나이는 언제나 과거를 찬미하고 하찮은 일을 칭찬했다.
어쩌면 라틴어 또한 현실생활을 도피하기 위한 한낱 수단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그는 가끔 "아아, 라틴어는 얼마나 듣기 좋고,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하고 달콤한 표정으로 말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의 관심거리는 무엇을 금지하는 공고라든가 신문의 논설같은 것이었으며, 해방이니 허가니 하는 말은 의아스럽고 모호한 것으로 여겨졌다. 거리의 연극써클, 독서회, 다방 같은 것이 허가되면 고개를 저으면서 "여하간 좋은 일이긴 해, 그렇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말아야 할텐데!" 하고 몹시 마음을 태우는 것이었다. 그의 융통성 없는 사고방식, 꼼꼼함, 의심증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으며, 그가 연방 내쉬는 한숨과 울상을 한 찌푸린 얼굴이며, 고양이처럼 조그만 얼굴에 걸친 안경이 여지없이 사람들을 제압하곤 했다. 15년 동안 그가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뿐만 아니라, 읍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하마터면 결혼할 뻔한 적이 있었다. 새로 부임해온 지리선생 꼬발렌꼬에게 바렌까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에다 눈썹은 짙었고 얼굴빛은 붉어서 홍당무 같지만 목소리는 아름다운 노처녀였다. 벨리꼬프에게는 그 처녀가 참된 사랑을 기울인 첫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갔고 얼굴에는 핏기조차 없었다. 결혼에 대한 결심은 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장래에 무슨 일이 생길까봐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장난꾸러기가 그와 바렌까가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을 신문의 만화삽화에 게재한 것이 그에게 큰 충격을 준다. 또 그는 꼬발렌꼬와 누이 바렌까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파랗게 질려버려 처음으로 결근을 한다. 다음날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꼬발렌꼬에게 이렇게 충고를 한다. '교사가 자전거를 타도 좋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들은 거꾸로 서서 다니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일단 공고로 금지된 일을 하시면 안됩니다. 당신 누이를 봤을 땐 정말 눈앞이 캄캄했어요. 부인네에다 그것도 처녀가 자전거를 타다니,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신사상에 젖어있는 꼬발렌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말싸움 끝에 지리선생은 벨리꼬프를 층계 밑으로 밀어버리는데, 이때 바렌까는 상황파악도 못하고 벨리꼬프가 실수로 떨어진 줄 잘못 알고 집이 떠나갈 듯이 웃어댄다. "하하하... 호호호" 이 천둥 같은 웃음소리는 구혼도, 지상에서의 존재까지도 운명을 결정짓고 말았다. 벨리꼬프는 이 사건이 온 읍내에 퍼져 웃음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휘장 속에 말없이 누워 보드까만 마셔대더니
한 달 후에 죽어버렸다. 그는 마침내 모든 사람의 믿음처럼, 영원한 상자인 관과 죽음으로서 자기이상을 완전히 성취한다.
그의 장례식에서 친구 불낀은 이렇게 말한다. 관 속에 든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고 명랑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드디어 상자속으로 들어가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것을 기뻐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 이상을 달성한 셈입니다.
또 불낀은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탄식을 하고 있다. 우리들이 벨리꼬프 한 사람의 장례를 치른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벨리꼬프와 같이 상자 속에 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사나이들이 얼마나 많이 나타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