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사촌간인 안티포와 페드리아가 자신들의 사랑에 대한 양가 부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두 젊은이들은 내숭스러운 식객인 포르미오와 극적인 우연의 도움을 받게 된다. 플롯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과 전형적인 인물의 사용 등은 플로투스의<메내크미>와 흡사하지만<포르미오>는 훨씬 덜 소극적이고 야단법석도 덜하다. 대부분의 유머는 말로 이루어지며, 신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요소는 축소되어 있다. 말다툼이 많은 관계로 테렌티우스의 작품은 플로투스의 그것보다 덜 연극적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플로투스의 대화의 대부분이 노래로 처리되는 반면 테렌티우스의 대화는 말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포르미오〉는 그리스의 아폴로도토스가 쓴 〈고발자〉를 번안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청년 안티포는 아버지가 여행하고 없는 사이에 의지할 곳 없는 한 처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식객인 포르미오가, 고아인 처녀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당시의 법률을 적용하여, 재판관에게 안티포가 그녀의 친척이라고 거짓 증언을 해서 그들을 결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으며 그녀를 쫓아내라고 한다. 한편 안티포의 사촌 형인 페드리아는 여자 노예에게 반해 노예 상인으로부터 그녀를 빼낼 돈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 그런 와중에서 페드리아의 아버지는 렘노스 섬에서 얻은 첩의 딸을 조카인 안티포와 짝지어 주려고 딸의 행방을 찾고 있다. 식객 포르미오는 노인 형제의 그러한 속셈을 알아채고 그들에게서 안티포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조건으로 30미나의 돈을 받아 낸다. 포르미오는 이 돈을 페드리아에게 주어 노예 상인으로부터 애인을 빼내도록 한다. 결국 안티포의 아내는 백부의 딸로서 페드리아의 이복 여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페드리아의 그 여자 노예도 사실은 돈 많고 지체 높은 가문의 딸로서 자유 시민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가 쓴 〈스카팽의 흉계)는 이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렌티우스
테렌티우스(B.C. 195?~159>는 로마의 희극 작가로 북아프리카에서 출생했다. 그는 로마에 노예로 팔려갔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남달리 현명하여 주인인 원로원 의원 테렌티우스 카르누스의 호의로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며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그의 성까지도 물려받게 되었다. 그 후 당시 귀족이며 지식인이었던 소(小) 스키피오의 문학 서클에 참가하여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기원전 166년에 상연한 최초의 작품 〈안드로스의 여인〉은 호평을 받았으며 당시 노대가(老大家)인 케킬리우스도 이 작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6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기원전 159년경 그리스에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테렌티우스는 시인 라에리우스나 소스키피오와 가깝게 지냈는데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극장의 관객을 위해 썼다기보다는 이런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썼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이들이 써서 테렌티우스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말까지 나돌았으나 이것은 물론 사실과 다르다. 그의 작품은 그리스 원전에 충실하여 번역과 창작의 중간쯤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리는 인물은 희화화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친절한 주인, 충실한 노예, 인자한 부모, 착실한 아들, 얌전한 창녀 등으로서 우리에게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동시에 그는 명상적이며 감상적인 인생 비평가이기도 했다.
테렌티우스의 작품 특성은 그 이야기의 줄거리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성격 묘사나 감정 표현에 있다 하겠다. 따라서 아버지나 식객, 창부와 같은 평범한 등장인물의 성격이 생생하게 묘사되면서 전면에 부각된다. 그는 문장이 미려한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이처럼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문장은 라틴 문학사상 처음 있는 일로 키케로나 케사르도 칭찬하고 본을 삼았다. 후세 사람들이 극작의 기교를 터득한 것은 플라우투스나 메난드로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테렌티우스에 의해서였다. 이처럼 테렌티우스는 현대 서구의 연극에 큰 영향을 준 작가였다. 테렌티우스는 생존 시에는 그다지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그 명성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때때로 재연되거나 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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