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매일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심사평 - (사)한국극작가협회 안희철 이사장...
올해 신춘문예는 전국 각지에서 응모된 희곡과 시나리오를 예심과 본심, 최종심을 통합해 진행하는 방법으로 심사했다. 먼저 예심을 통해 총 5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린 후, 그 작품들을 본심에서 다시 심사하고, 마지막으로 2편의 작품 중 한 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최종심 과정을 거쳤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살펴보면 먼저, '안녕'은 자동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딸과 아빠의 이야기인데 상대를 볼 수 없는 사람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이 눈길을 끌지만, 전개가 단조롭고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평이했다. '창문 열면 벽'은 여성의 내면 트라우마를 보여주려 했지만 자신의 외면과 화해할 계기가 없다는 단점을 드러냈다. '유령들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에 한 모텔에서 펼쳐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는데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과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결말로 가는 과정이나 주제의 제시가 설명적이었다.
'도깨비'는 베트남 출신 부인과 지적장애인 남편의 이야기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추리극 형태로 극을 풀어가고 있다. 대화나 상황설정이 탄탄하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베트남 부인과 장애인 남편에 대한 편견을 깨는 반전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신춘문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함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횡단보도에 끝이 있긴 한가요?'는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형식이 어느 작품보다 특이했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더해보면 굉장히 풍성한 이야기들이 살아서 움직였다. 이러한 다양한 시적 상상력의 여백은 작품의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으로도 보였다. 심사위원은 본심 5편의 작품 중 전통적인 극작법으로 풀어낸 '도깨비'와 형식미를 앞세운 새로운 실험과 도전의 '횡단보도에 끝이 있긴 한가요?' 두 작품을 최종심 대상으로 두고 고심했고, 두 작품 중 신춘문예의 신인 정신에 더 어울리고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하여 무대 위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 '횡단보도에 끝이 있긴 한가요?'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하되 극작품의 기본기를 더 쌓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낙선자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모든 예비 작가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힘든 겨울을 잘 이겨낸 모든 이에게 행복한 봄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당선소감 - 해서우
아주 멋지고 대단한 당선 소감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 때문인지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어서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동료들과 '만약에 당선되면' 대화를 가끔 나누었는데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욕심 없이 써보겠습니다. 욕심 없기가 어려워서 감사 인사를 먼저 전합니다. 부모님께. 강단과 넉살 좋은 웃음을 물려준 정숙, 예민함과 이야기꾼의 자질을 안겨준 홍섭. 언제나 나의 선택을 믿고 응원해준 덕에 뭐든 겁 없이 시도할 수 있어요. 선생님들께. 누리 언니, 언니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단국대학교 교수님들, 4년 동안 배운 문학을 기반 삼아 희곡을 썼습니다. 선생님들의 은혜에 존경을 표합니다.
멀리서 늘 다정을 보내는 은빈, 하영, 하은, 현정. 희곡 쓰는 동력이 되어준 선민 선배님, 경현 님, 시시프트. 갚을 수 없는 애정을 주는 채윤, 민경, 인.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동엽. 함께 문학 공부하고 희곡 쓰고 공연하고 공연을 찾아준 모든 분께, 고맙습니다.
공연이 좋습니다. 나 살아있는 게 맞나, 열네 살 가을에 생각한 이후로 딱 1cm 몸이 떠 있습니다. 테두리 벗어나 색칠한 그림처럼 영혼이 나오려다가 만 것 같은 느낌. 자꾸만 사람들이 죽어서, 나만 두고 사라져서, 아직 죽지 않은 당신 죽을까 봐, 나도 죽을까 봐 겁이 나는데요. 공연에 속하는 동안은 지면에 발이 닿습니다. 꼭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저 무대의 한 귀퉁이에 나도 있고 싶다, 그렇게 희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다 보니 공연보다 희곡이 좋아요. 즐겁고 자유롭고 무엇보다 편안합니다. 기억과 기록과 계승과 멸종, 몸과 축과 영혼과 꿈, 죽음과 장례와 애도와… 너 살았던 흔적을, 나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분명 찾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발견이 곧 위안이리라는 바람으로, 현시와 과거를 희곡 언어로 보존하는 극작가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과 매일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약력〉
- 2000년 충남 서산 출생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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