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영진 원작 이철희 재구성 '맹'

clint 2025. 1. 9. 12:36

 

 

돈으로 산 ‘진사 자리’도 성에 안 차 더 높은 지위를 탐허는 맹진사.
급기야 사우(사위) 얼굴두 보지 않구 김판서와 사돈을 맺는디.
이에 한 번 다녀온 돌씽 딸 갑분이는 들뜨구, MZ하녀 입분이는 
갑분이가 시집가는 이 마당이 서운허기만 허다.
혼롓날이 점점 다가오는 한 날, 한 나그네가 맹진사 집에 방문하여 허는 
귓속말이 사우(사위) 삼을 김판서댁 아덜(아들)에게 심히 중대헌 하자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클났네. 클났어.” 놀라 자빠진 맹진사는 부인 한씨와 함께 요상스런 
꾀를 꾸미는디...
맹진사 부부는 딸을 “짝짝이 아들”과 혼인시킬 수 없다며 하녀 입분을 
갑분으로 둔갑시키고, 갑분은 부산 외가로 피신시킨다.
결혼식 당일 훤칠한 청년이 자신을 김미언이라 소개하고 미언은 결국 
입분과 결혼하게 된다. 
이 모든 사실을 예상하고 김미언이 입분을 선택한 것이다.
모든 게 틀어지자 조나단(말)을 타고 권력의 욕망으로 달려가는 
맹진사의 마지막 장면은 권력에 줄을 대려는 그의 웃픈 결말이다.

 



연극 ‘옛 전통의 새로운 움직임! 맹’은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이철희가 재구성하고 연출했다. 마당극과 판소리 요소를 연극에 흡수시켰다. 
작품은 2023년 서울예술상 연극 부분 최우수상을 받고 인기몰이한 바 있다. 



다분히 권선징악적 의도를 가진 원작 희곡은 동시대의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비판받아 마땅하다. 본디 이 희곡은 지금의 관점에서 결코 권선징악이 될 수 없다. 착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 장애 없는 남성과의 혼인이라는 점, 권력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성이 하층 여성을 구제하는 서사, 장애를 결함으로 보는 시각 등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이 희곡이 동시대에 공연되려면 상기의 문제들을 의식적으로 전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맹>은 어떤가? 무대 의상이 서구식 의복이었다는 점을 볼 때 작품의 배경은 원작 희곡의 배경인 1940년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대사 곳곳에는 21세기의 흔적이 묻어있다. 김판서의 집을 두고 “사이즈가 청와대”라고 말하다 “아차 이때 청와대 없었지” 하고 정정하는 등, 자유자재로 전환되는 공연의 시공간과 현실의 시공간은 유머로 기능한다. 이 공연은 기본적으로 웃긴다. 배우들의 치밀한 호흡과 능숙한 연출이 결합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위트가 아주 조화롭다. 촌철살인의 언어들은 배우들의 충청도식 억양으로 발열되고 느릿느릿하면서도 날카로운 현대식 풍자언어로 된다. 사회현상을 베어내는 칼날은 이 작품에서는 웃음이 무기다. 한국 사회 현실을 풍자로 돌려치는 배우들의 대사로 95분 동안 관객들이 몸을 뒤틀거나 딴짓하는 시선 한번 돌릴 수 없도록 몰입을 시키고 있다. 장면전환도 '똑똑' 거리면 방이 되고 두 손을 들고 달리며 속도감을 주면 말에 올라탄 장면이 된다. 놀이성은 다양한 연극들에서 활용되지만, 이철희의 <맹>에서 만큼은 배우들의 놀이성이 캐릭터로, 극적인 장면으로 다변화된다. 정과 동의 경계를 왕복하고 웃음과 비극성을 섞으며 달리는 무대는 생동하는 마당의 공간이 된다. 이 작품은 1940년대 초반 발표한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를 이철희 특유의 코드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의 글 - 이철희
<맹진사댁 경사>는 극작가 오영진이 1943년 이조 말기를 배경으로 쓴 희곡으로 당시의 정치(세도가와의 야합), 계급(양반과 노비), 유교사상(3대의 가족 질서) 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독특한 것은 이러한 사실주의적 풍경을 풀어내는 극작술이 직설을 비껴 희극적 풍자와 해학을 무기로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것은 희곡의 문학적 가치를 증명하는 매우 중요한 핀포인트이다. 뿐만 아니라 하녀인 입분이가 맹진사의 딸 갑분이를 대신해 세도가로 시집을 간다는 설정은, 당시 사회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사회제도의 부당함을 펜으로 전복시켜 버리고마는, 민중을 위한 작가의 통쾌한 한방인 것이다. 이렇듯 작가 오영진은 '민중을 위한 연극'을 위시함과 동시에 연극의 메커니즘을 문학에 적극활용한 이 시대에 다시 한번 주목해 봐야할 극작가이며, 젊은 극작가들이 빛바래 덮어버린 책의 머리말인 것이다. <맹진사댁 경사>를 원작으로 하는 희곡 「옛 전통의 새로운 움직임 맹」은 동시대성이라는 구호 아래 잃어버린 한국의 예술적 미학을 다시 성취하기 위해서 과연 오늘의 한국연극이 어떤 미래를 지향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옛 전통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작가의 유효한 질문이다.

 

이철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