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문진영 '자목련 필 무렵'

clint 2025. 1. 7. 06:25



오랜 전통의 한 지방 사립 여학교 문학반이 낡은 강당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이에 문학반 회장인 서연은 문학반 선배이자 
자신의 이모, 정희가 쓴 연극대본 '자목련 필 무렵'을 기념극으로 올려 
동문들의 지지와 호소를 얻어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대본은 미완성으로 중단되어 있고, 
설상가상 문학반 선생님의 이해할 수 없는 반대에 부딪히는데, 
서연은 무사히 연극을 완성하고 문학반을 사수할 수 있을까?



광주 최초의 여학교인 수피아여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폐쇄 위기에 처한 문학반 소녀들의 문학반 살리기 프로젝트를 다룬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이듬해인 1930년과 1980년 5월, 현대의 여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광주의 시대정신과 소녀들이 어떻게 조응하고 성장하는가를 그린다. 작품은 2018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극장 기획대관 공연작으로도 선정됐다.  

 

연습사진

 


작가의 글 - 문진영
「자목련 필 무렵」은 내가 광주의 소녀였던 시절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자목련'은 모교였던 수피아 여자고등학교의 교화이자 교내 시문학 동아리의 실제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나 역시 '자목련'의 멤버였다. 사실 자목련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시를 좋아해서가 아닌 자목련이 동아리방으로 쓰고 있던 '수피아 홀'에 반해서였다. 학교 뒤편 언덕 위에 자리한 '수피아 홀'은 광주 최초의 2층 양옥집으로 이국적인 회색 벽돌과 박공을 두른 현관 포치가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학교를 세운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1911년에 지어졌는데 당시엔 학교 교사(校舍)로 쓰였다고 한다. 
「자목련 필 무렵」은 처음엔 드라마 대본으로 쓰였다. 하지만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스토리 공모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공연을 위한 희곡으로 각색되었다. 이번에 작품집을 묶게 되면서 함께 담을지에 대해 오래 고민했는데, 연극이 라는 장르를 만나게 해준 첫 작품이란 의의를 생각해 함께 수독하였다. 
사실 「자목련 필 무렵」은 광주의 소녀들이 어떤 방식으로 시대와 조응하고 성장하는가를 역사적 사건과 결합해 담아내겠다는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포부를 잘 풀어냈는가에 대해선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자목련 필 무렵」은 앞으로 내가 써나가고 싶은 '광주와 소녀' 시리즈의 뿌리가 되는 작품이라 애정이 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광주 스토리 ZIP 공모를 통해 만들 게 된 시나리오 <소녀비밀독서회> 역시 '광주와 소녀' 시리즈 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소녀비밀독서회>는 「자목련 필 무렵」에서 담고 싶었으나 아쉽게 삭제되었던 일제강점기 광주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 확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1980년, 광주의 아이로 태어나 광주의 소녀로 자라났으며, 이제 광주의 시민이자,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광주가 지닌 역사성과 지역성은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의 뿌리이자 자양분이며 나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때 나는 광주를 벗어나는 게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자장 안에서 조금 더 나아진 글을 쓰며 광주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서 만들고 함께 나누는 일, 그것은 어쩌면 광주의 아이로 태어나 글을 쓰게 된 나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 나는 이 길이 내 길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이 길에서 어 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움 속에서도 열심히 써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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