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해제 '달토끼가 말했어'

clint 2025. 1. 9. 06:58

 

 

'일에 얽힌 인간과 인생'이란 주제로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구직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백수, 평생 영안실에서 시체를 닦아온 노인,

맨홀 속에 갇혀버린 일용직 노동자 등 총 일곱 색깔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연극은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일과 평범한 삶 속에 담겨진 인생의 참맛과 진실을 담고 있어

여러 시각에서 다양한 직업을 재미있게 느껴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작가 겸 연출가인 이 해제의 새로운 시도!! 2005’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혜화동 1번지 3기동인, 2000’ 내일을 여는 젊은 작가 등 많은 수상내역을 갖고 있는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이 해제. 빛나는 보석이 아닌 숨은 원석 같은 그의 작품이다.
각 장면에는 적절한 상징들이 쓰였다. 고달프지만 자신의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배우들로 대변된 그들은 실제로 무대 위 러닝머신에서 장면이 끝날 때까지 땀 흘리며 뛰는 남자, 쉴 새 없이 만담처럼 어려운 대사를 퍼붓는 주부기계 등으로 등장해 관객에게 말을 건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무대에 나타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긴장감보다 다소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시체의 손금을 보는 시체 닦는 노인이 등장해 던지는 후반부 대사는 관객들에게 잊고 있었던 달토끼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동시에 반전으로 다가온다.
"달 토끼가 말했어." 무대엔 달 토끼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보름달이 뜰 때면 ‘어김없이’ 그 안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를 거론하며 그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당신도 현재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며 말이다.

 

 

Episode 1. 늙어지면 못 노나니
집에 노인이 없다면, 이웃에서 하나 빌려오게!
세 명의 노인이 일을 하는 모습... 다들 일을 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분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 같았다.
돈이 없어 일을 하고 돈이 있어도 일을 하고...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
이런 노래를 부르지만... 젊었을 때도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일이 있어서 즐거운 노인들을 능률이 안 올라 닦달하는 젊은 관리자와 대비시킨다.

 

 

 

Episode 2. 기계부인의 하루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정성을 다하는…다들 저를 인간 취급하지 않죠! 혹자는 저를 스팸걸이라고 부르죠! 예쁘게 메이드 복을 입으신 분이 등장한다... 홈쇼핑에 나오는 말투.... 한참을 보면서... 정말 기계부인....집안일을 하는 로봇인가...하고 생각 든다... 한참을.... 알람시계도 하고 유모차도 하고 계산기도 하고....
주부를 기계로 표현해 주부의 고충과 외로움을 전하고 있다. “당신들과 아이들이 저를 봐주지 않으면 저는 그냥 쓰레기통입니다”라는 기계의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쓸쓸함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Episode 3. 곱사등이들의 웃음
세상에 더러운 일이 어딨냐? 등만 안 굽히면 되지!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서 세 명이 신나게 일을 하는 장면이고 대화가 없고 율동과 음악으로 표현되는 막이다..
좁은 공간에서 허리도 못 펴고 일을 하는... 아니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어느새 곱사등이가 되어 버린... 항상 일에 치여 있는 직장인들의 모습 같다..

 

 

 

Episode 4. 날마다 프러포즈
연애하는 기분으로 면접을 봅니다. 저, 예쁘잖아요! 내용은 예쁜 얼굴만 믿고 내면에 충실하지 못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나이 30세까지 항상 착각에 빠져 사는 아가씨의 모습이다.. 면접관역할을 하는 남친의 노력과 멘트가 재미있게 조화를 이루지만 취업난에 있는 이 세태와 타성에 젖어버린 구직 여성의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Episode 5. 그 남자의 신기록
까짓것 잘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네! 시작부터 끝까지 열심히 뛰어야만 했던....
자신의 삶을 다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달렸는데 남은 건.... 얼마의 돈과 운동기구... 일이든 삶이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잠시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지는 않은지....
최고도 좋지만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Episode 6. 맨홀에서 소리치다
이 몸뚱어리는 평생 일에 갇혀 살았다! 평평한 남자가 어느 날 맨홀에 갇혀 버린 사건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남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의 심리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공포와 분노와 체념....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게 된다. 살아감에 대한 감사함...

 

 

 


Episode 7. 지상에서의 손금
바쁘기는 해도, 이 손금 봐주는 건 건너뛸 수야 없지! 염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
염에 대해선 어렸을 적부터 해온 분과.. 막 들어온 신입...
염쟁이는 시체의 삶을 다시 되돌려 주고 가는 길을 깨끗하게 닦아준다.
염을 하면서 시체와 대화를 하고 시체가 사람이었음을 소중히 해주는..
누구라고 첨부터 선뜻하기 힘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