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혼자 사는 남자의 거실이지만
4차원적인 유동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도둑은 혼자 사는 필우가 출장 간 것을 알고
그의 집에 몰래 들어온다.
그러나 가지고 갈 만한 것은 없고
집주인 필우까지 돌아오자 급히 숨는다.
필우는 밤 1시에 돌아와서 옷을 벗고 있는데
상관과 여비서가 나타난다.
상관과 비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필우를 비난하고 비웃는다.
상관과 비서에게 화가 난 필우는 그들을 혼낸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상상일 뿐이다.
다시 상관과 비서가 나타나고
서너 명의 남자들도 나타나서는 필우를 괴롭힌다.
필우는 애써 그들을 외면하면서 애타게 도도를 찾는다.
도둑은 몰래 필우의 옷을 뒤진다.
소년이 나타나 도도를 찾아달란다.
요즘 자주 나타나는데….
그 소년은 자신의 어린 모습이다.
필우는 잠에서 깨고 도둑은 경계하지만
필우는 그에게 현금과 통장, 비밀번호까지 알려준다.
필우는 마지막으로 도둑에게 믿음을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도도를 내놓으라고 하자
당황한 도둑은 필우를 찌르고는 도망간다.
필우는 절망적으로 도도를 외친다.
그러나 도도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도도는 어디 있습니까?”
현대는 광포한 시대이다. 현대문명은 인간들에게 많은 이기를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기계와 조직에 종속시키고 공격성만을 조장해 왔다. <마지막 손짓>은 이러한 후기산업사회에서 상실된 되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한 남자의 4차원적 환상여행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필우는 어릴 적부터 새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그것은 날지도 싸우지도 못하기 때문에 멸종된 새로서, 남을 해치지도 못하고 이 사회에서 '싸우는 법'을 터득하지 어느나 못한 '필우'의 자화상 같은 것이다.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온 밤, '필우'는 기억속의 인물들의 방문을 받는다. 아니, 자신의 잠재된 의식속으로 4차원적 간다.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문명이 폭력과 갈등이 난무하는 그 밤에 필우는 첫사랑의 애인, 집을 나간 아내의 방문을 받고, 죽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시절의 자신도 만나지만 결국 그들은 투쟁한 줄 모르는 '필우'를 탓하기만 할 뿐, 모두들 그를 현실의 패배자로만 남겨둘 뿐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외로운 성자의 모습으로 그는 마침 찾아온 도둑을 구원해주려 하지만 도둑 역시 인간세상의 한 대변자일뿐, '필우'의 손길을 거부하고 그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도도를 찾으셨습니까? 윤정선 작가의 말
내가 도도새를 만난 것은 벌써 오래 된 일이지만 뉴욕의 한 자연사박물관에서였다고 기억된다. 자연의 거대한 힘이 그것을 파악하고 분류하고 지배하려드는 인간의 연출로 화석과 박제와 미니어츄어의 정지된 시간 속에 굳어있는 그곳에서 이상한 나라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어슬렁거리고 있던 나는 한 유리상자 앞에 멈추어서게 되었다. 투명하게 네모진 그 공간 안에는 한 마디로 좀 우습게 생겼다고 말할 밖에 없는 박제의 새가 들어있었다. 뭉툭하게 구부러진 방망이꼴 부리에 멍청해 보이는 얼굴, 몸집에 비해 어색스럽게 작은 날개 와 꽁지가 빠진 것 같은 궁둥이 깃털, 땅딸막 짧고 두툼한 발, 마치 삐에로의 그것처럼 표정 아닌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유리의 눈알... 상자 앞에 조그맣게 붙여 있는 이름 또한 그 새의 모습 만큼이나 묘한 울림을 주었다. dodo. 도도?
그 이름 딱지는 인도양의 섬에 살고있던 그 새가 어떻게 멸종되었는가에 대하여 짤막한 역사적 기술을 하고 있었다. 생명을 위협할 아무런 적이 없는 평안한 삶 속에 빨리 뛰어 달아날 필요도 날아 올라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기에 날개마 저 퇴화시키고 한가로이 살고 있던 그 새들은 어느날 그곳에 상륙한 백인들과 그들을 따라온 동물들의 너무나 손쉬운 사냥감이 되어 하릴없이 멸종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미 삼백 년 전에 그들을 지상에서 지워버린 인간의 손은 다시 과학사의 이름으로 상상과 실제를 뒤섞은 박제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하여 그 유리의 원은 지금은 영원히 사라진 그러나 한때 지구 위를 뚱싯 뚱싯 돌아다녔던 한 종족의 몽타주 시선을 담고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시간의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또한 실제와 상상의 모든 유희가 뒤범벅으로 어우려져 있었다.
내게 무엇보다도 충격을 준 것은 망나니 인간이 자연에 행사하는 직접적 폭력이었다. 수없는 생명체들 가운데 다만 한 가지에 불과한 인간의 손이 온 생명계의 자연환경을 함부로 파괴함으로써 매일처럼 수많은 종족이 사라지고 있는 지상에서, 도도새의 박제는 무섭게 발달한 지능으로 온 지구를 덮어버린 호모사피엔스의 무지스러운 야만성을 증거하는 씁쓸한 유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다시 그 멍청해 보이는 얼굴, 슬프게 희극적인 그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이후로 도도를 사냥하는 유럽인들의 모습으로 그린 판화 같은 걸 대하게 되거나, 너무 쉽사리 잡혀준다 해서 바보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남게된 "dodo: 얼간이"를 사전에서 다시 발견하게 된다든가 할 때마다 나는 "악하지 못함", "무방비함", 그리고 "바보스러움"의 슬픈 일련 관계를 씹어보며 우울한 몽상에 빠져들곤 했다.
도도의 멸종은 내게는 어느 과거의 시간대에 지구를 뒤덮고 있던 저 유명한 공룡의 멸종과는 다른 의미의 충격이었다. 공룡의 멸종이 우리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상기시킨다면, 도도새의 멸종은 바로 인간 종족이 자연 앞에 마구 행사하는 위험한 힘을 아무런 완곡어법 없이 증언하는 때문이었다. 그 가여운 도도새가 내 의식 위로 또 한번 얼굴을 내민 것 내가 <마지막 손짓>을 쓰고 있는 동안이었다. 우울한 일상에 갇혀 매일 매일 더욱 절망하고, 더욱 외로워지는 필우, 서로를 공격하고 짓밟고 속이고 위협함으로써 자신을 지켜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피로와 분노와 고독을 삭이며 홀로 허우적거리는...... 그의 숨통을 조르고 있는 혼탁한 세상에서 필우가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도도는 물론 도도새는 아니다. 그러나 싸우기보다 물러서는데 더 익숙한 필우는 싸울 줄 모른다는 것이 죄악이 되는 세계 속에 도도새와도 같은 절망적인 종족이 되고 있다. 자연이, 사회가, 문화가 오염되고, 인간의 정신마저, 더구나 정서마저 오염된 환경에서 순수한 긍정적 감정이나 정신적 가치, 생명의 의미를 잃은 인류는 물질의 지배 아래 어떠한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그들이 지켜가고 있는 모든 믿음은 다만 망상의 덩어리일 뿐이다. 그렇게 말초적이거나 물욕적인 관심속에 뒤엉켜 아우성치며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진정한 믿음, 사랑, 아름다움,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은 다만 의심받고 경멸받고 무시될 따름이다. 제도든 권력이든 문화는 현대사회의 수많은 것들이 무절제한 즉물적 문명의 칼날로 순진한 온유함을 한 속성으로 삼고 있는 인간의 고귀한 심성들을 그처럼 하나 하나 멸종시켜가고 있다. 물질문명과 금력과 기술과 편의와 파라의 폭력적 유희를 가운데 모두에게 참생명을 주는 것들, 우리 삶의 참 의미 자체가 죽어가고 있는 이 시대, 그럼에도 아직도 사랑하는 인간, 아직도 믿음을 구하는 인간, 아직도 구원을 꿈꾸며 절멸의 위협 앞에 목이 매는 인간이 있다면.... 인간의 지능이 죄없는 지상의 다른 종족들 위에 얼마나 극악한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는가 강조할 필요는 없으려니와, 노아의 방주를 내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찾아내어 보호하는 것이 오늘 인류의 한 급선무이듯, 인간의 심성세계에 있어 소중한 것들을 종족보존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절실한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그 무방비한 것들을 지금 우리가 구해내지 못한다면 이 지상의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은, 무엇이 될 것인가. 생물학적인 보전만이 아니라 참된 인류의 보전이 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급박한 오늘,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바로 지금이 다시 순수를 소망하고, 다시 믿음을 구하고, 다시 사랑을, 다시 아름다움을 찾아 보호하러 나서야 할 마지막 순간이 아닌가?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며, 그럼으로써 구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의 손은 그것을 잡아줄 다른 손을 원한다. 혼잡한 서울 거리의 한 구석에 따뜻한 무대를 차려주는 연우무대에 감사한다. 자신이 각색했던 <해질녘>을 공연할 때와는 또 다른 어려움들을 겪으며 애쓰고 있는 박상현 연출, 연기자, 스텝 여러분, 그리고 이 복잡하고 힘겨운 일상의 한가운데 마지막 손짓에 귀한 시간과 관심의 손길을 주는 관객 모두에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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