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인호 '달리는 바보들'

clint 2024. 12. 13. 18:28

 

 

 

지난해까지 연약한 모습의 여인 나부를 조각해서 연거푸 특선을 했던 여인이 
이번에는 강한 이미지의 남성상을 조각해보려고 모델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다. 
신문을 보고 모델을 지망한 사나이는 모델의 경험도 없이 이 집을 찾아온다. 
집에 들어선 사나이는 오는 국전에 출품할 달리는 시지프를 조각할 모델임을 안다. 
이 여인들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본다. 그래서 몸이 둔한 이 사나이의 옷을 벗긴다. 
여러 가지 기묘한 수단으로 옷을 벗지 않는 이 사나이는 이번 국전에 세 사람이 
합동으로 작품을 만들어 출품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모델이 되기를 바라며 달리는 비너스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오히려 사나이는 여인들의 옷을 벗기면서 조각을 해나간다. 
서로 자신이 예술 속에 뛰어들어 작품을 완성하려 하지만 
결국은 모두 달리는 바보들이 되고 만다.

 



일반적으로 조각가/모델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조각가에게 있고 모델은 피동적이다. 
사나이 역시 모델의 역할이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여인1은 “화가들이 그리고 싶어 하는 이미지에 꼭 알맞은 내면적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여인1과 여인2는 사나이를 모델대에 세워 
일정한 자세를 취하게 하고 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상의를 하나씩 모두 벗긴다. 
여기까지 보면 이 관계는 그런대로 평범하다. 
그러나 여기부터 사나이의 태도가 달라진다. 작가는 이런 지문을 쓰고 있다− 
“(태도를 바꾼다. 이후부터의 사나이 행동 템포는 빨라지고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실제로 사나이는 행동이 빨라지고 무대를 넓게 쓰면서 ‘기술’을 쓰기 시작하고, 
여인들은 그런 그에게 휘둘린다. 이들은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 
조각가이던 자신들이 왜 ‘달리는 비너스’가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웃지 못할 불안과 공포에 잠식되어 있다. 마침내 여인들은 모델
대에 서서 옷을 벗는다. 이제 조각가는 사나이다.
이 연극에서 남는 것은 조각가/모델의 轉倒다. 

 


소설가 최인호 1971년 <현대문학> 7월호에 발표한 첫 희곡이 「달리는 바보들」이다
문인극회에서 초연공연을 카페 테아트르에서 올린 최인호의 첫 희곡 <달리는 바보들>은 어떤 작품일까?
작가 최인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자들은 스타트라인에 서지도 못했는데 사회 모든 부문에서 당돌한 바보들은 벌써 뛰고 있고 그것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현세대의 전위적 예술의 허위성을 풍자한 작품”이라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최인호의 연극 이야기

작가 최인호의 연극 이야기는 고교 시절에서 시작된다. 월간지 <한국연극> 1981년 7~8호 특집 ‘소설가와 연극’에서 최인호는 연극에 미쳤던 학창시절을 이야기한다. 그가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때는 서울고교 2학년 때다. 가을예술제에서 제임스 콘라드의 연극 <빌리 버드>가 올려졌는데, 여기에서 선원 역할을 맡았다. 연극의 매력에 빠졌던 그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연극부에 입단, 소도구나 조명부 따위의 스태프에서 일을 했고 손톤 와일더 작 <우리 읍내>의 신문팔이 역을 맡았다. 그리고 그는 연극에 미쳐 여러 대학 연극부 학생들과 모여 본인이 직접 창작한 <메리 크리스마스>를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 Y.M.C.A 강당에서 4회 공연되었다. 그런데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본인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면서까지 의욕적으로 공연을 올렸으나 적자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는 군대를 마치고 학교에 복학한 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대생들과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연극 연출을 하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이후에 작가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몰리에르의 <수전노>, 유진 오닐의 <고래>, 손톤 와일더의 <결혼중매>, <유식한 이 아들>  등을 연출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 몇 편의 연출 경험 때문인지 작가에게 연출은 매우 각별했던 것처럼 보인다. “연극을 연출할 때면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열정과 정열과, 의지와, 힘과, 기쁨이 솟아올라서 나는 조금만치의 허점도 용서할 수 없는 독재적인 연출가였음을 자부하고 있었다. // 만약 글을 쓰지 않고 연극을 계속했더라면 나는 제법 개성 있는 연출가가 되었으리라고 감히 건방진 결론을 내려보곤 한다.” 본인 스스로 ‘독재적인 연출가’, ‘개성 있는 연출가’를 언급할 정도로 연출에 관한 한 자신만만함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성향으로 볼 때, 최인호 작가에게 연극은 매우 친숙한 예술영역이었고, 굳이 소설과 구분하여 경계를 지을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도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고 활동하였다. 작가는 1969년 2월 극단 ‘전진극회’ 창단 발기 동인으로 참여했다, 연출가 권오일, 극작가 김용락 등 문인과 연극인들이 참여하였는데, 연극 심포지움과 살롱드라마 발표회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971년 6월 작가가 처음으로 창작한 희곡 <달리는 바보들>이 문인극회에서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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