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 가문의 8대 독자인 황수남은 딸만 다섯을 낳았으며, 지금도 대를 잇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 그런데 다섯 째 딸을 낳으러 산부인과에 갔으나,
공교롭게도 사내아이들이 모두 죽어서 태어나는 해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수남의 모친은 자신의 단골 무당인 홍장군을 찾아가 그 연유를 물으니,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낙태를 당한 미연이라는 낙태귀가, 있는 대로 한을 품고
그 원한을 풀기 위해 해꼬지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기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매도
자신이 할 일을 사람들이 다 해버리는 바람에 세상으로 뛰쳐나와 지하철역에서
애타게 미연이를 찾고 있으며, 자신의 일을 허락 없이 멋대로 해버리는 미연이를 잡기
위해 염라국 사신까지 세상으로 내려온다.
이러한 와중에도 아들을 낳기 위한 수남 모친의 노력은 계속되고
홍장군의 처방대로 합방할 것을 아들 며느리에게 명하는데,
수남 아내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수남의 누나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한 토막씩 꾸게 되고, 그 내용을 맞추어 본 즉슨, 아들을 낳으면 집안 전체가 패가망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 임신한 아이를 낙태해야 한다고 하지만, 수남 모친만은
그대로 아들이라면 낳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마침내 산부인과로 가게 되는데...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한 재고찰과 낙태수술과 같은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경고가 이 작품의 큰 테마라고 할 수 있겠다.
20세기 말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미연이라는 여자아이가 여러 번 낙태되면서 맺힌 한을 풀기 위해 낙태귀가 되어 산부인과 병원을 전전하면서 태어나는 남자아기들을 족족 죽인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미연이가 앉아있는 산부인과에 8대 독자인 수남과 이미 딸을 여섯이나 낳은 그의 부인 수진, 그리고 ‘손자 꼬추 만져보기 전에는 절대로 못 죽는다’는 수남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곧이어 홍장군이라 불리는 무당이 등장해 남자아기들이 죽는 이유가 낙태귀 때문임을 밝힌다. 이 낙태귀의 횡포를 막기 위해 삼신 할미와 저승사자가 동원되고, 미연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수남 내외는 무사히 아들을 얻는다. 결국,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얻는다는 흔한 줄거리다. 이 낯익은 줄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줄거리 속에 성 감별에 따른 낙태를 반대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한국의 낙태실태에 관한 충격적인 기사를 접한 것이었다고 한다. <고추말리기>에 인용된 1999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한 해 동안 성 감별을 통해 낙태되는 여아의 수가 10만 명이라고 한다. 작은 도시의 인구 규모다. 또한, 한국학자 사샤 햄프슨이 한국여성의 인권에 대해 쓴 기사에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1991년 한국에선 100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동안 76명의 태아가 낙태됐다. 또한 남녀 출생비율이 1998년엔 115:100이었으며, 2010년엔 123:100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2040년이 되면 대략 결혼적령기인 남성 5명 중 1명은 한국여성과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장군은 남자아기들을 죽이는 낙태귀를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남의 어머니는 아들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린다. 대여섯 명의 여성들이 홍장군을 기다리며 아들 낳는 비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에서도, 수남이 그의 처와 함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번에도 딸을 낳으면 씨받이를 구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도, 왜 등장인물들이 이토록 아들을 원하는지에 대한 통쾌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 외에 제사와 연관된 이유가 있으나, 그 외엔 남아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예가 거론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로, 극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인 수남의 어머니를 들 수 있다. 수남의 어머니는 수남을 낳기 전에 딸을 열 둘이나 낳은 여성이다. 절대로 미소를 짓지 않았다는 시어머니 밑에서 딸을 줄줄이 낳으며 시달린 끝에 수남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남의 처에게 자신이 치른 것과 같은 곤욕을 치르게 하면서까지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출산할 것을 요구한다. 극중 대사를 보면, 제사상 차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 외엔 아들을 원하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수남의 처가 아들을 임신한 사실을 알아낸 수남의 아버지는 저승에서 그 열두 딸들과 홍장군에게 찾아와, 이번에 낳을 아들이 재산을 말아먹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나 수남의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아무리 괴로워도 열두 딸들 중 한 명도 죽이지 않고 키웠는데, 심지어 아들인 태아를 어떻게 죽이냐는 것이 그녀의 논거다. 다소 감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장면에서, 수남의 어머니는 자신이 손자를 많이 사랑해주면 착한 사람으로 잘 자랄 것이라며 낙태를 반대한다. 태아가 딸이었어도 이토록 낙태를 반대했을까? 한편, 미연은 태어나지 못하고 인형이 되어버린 태아들이 죽 늘어선 노점상에서 인형들과 대화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이 아니어서, 경제적인 형편이 받쳐주지 못해서, 그리고 별다른 이유 없이 낙태된 아기들은 일제히 다 남자들 때문에 주어진 삶을 살지 못했다는, 논리에 어긋나는 결론에 도달하곤 남자아기들을 다 죽이라며 미연을 부추긴다. 대책 없는 증오심에 불타오른 미연은 결국 홍장군에게 습격을 당해 ‘고추 말리기’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연극 평론가 김유미씨는 <고추말리기>에 대해 평하며 대부분의 여성등장인물들이 현실을 반영하기는 하나, 극장에서까지 이런 답답한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남성희곡작가로부터 나온 몇 안 되는 여성주의적(?) 작품이 될 뻔했던 이 희곡은, 종국에 가선 ‘여자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현실은 피할 수 없으니, 낙태하지 말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낳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그쳐버렸다. 선욱현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낙태에 관한 한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와 더불어 ‘수천 년이 지나도 강산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 수남 어머니의 남성우월주의적 발언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쌓아온 한 사람의 체념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다. 겁 없이 낙태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작가는, 굳이 아들을 낳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세상을 상상해낼 만큼 용감한 연극인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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